[최지은의 10 Voice] 노처녀들을 그냥 좀 놔둬라
[최지은의 10 Voice] 노처녀들을 그냥 좀 놔둬라
괜찮은 남자들은 30대 미혼여성을 외면한다고 한다. 많이 배운 여성은 결혼하기 어렵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의 30대 여성 미혼율은 전국 최고라고 한다. 유학파 여성과 전문대졸 남성이 만나는 ‘학력 파괴 커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연하의 남편보다 능력 있는 ‘누나 아내’도 늘고 있다고 한다. “30대 중반이 된 순간 갑자기 주변에 남자(결혼 대상)가 사라졌어요”라는 서늘한 고백도 있다.

언제부터일까. 납량특집보다 무섭고 도시괴담보다 끈질긴 ‘노처녀 일소 캠페인’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최근 몇 달 사이 특히 보수 언론의 지면과 포털 사이트 뉴스 홈의 인기 기사 자리를 빌어 ‘노처녀’들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이 유령의 목소리는 대개 이렇다. “너 시집 안 가니? 이것저것 따지다 여태 못 갔지? 벌써 늦었으니까 그만 재고 얼른 시집 가. 그러다가 진짜 평생 못 간다?”

2011년 핫 키워드로 떠오른 ‘노처녀’
[최지은의 10 Voice] 노처녀들을 그냥 좀 놔둬라
[최지은의 10 Voice] 노처녀들을 그냥 좀 놔둬라
하지만 ‘노처녀’라는 존재가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원래 결혼 시장이 아니라 드라마 시장이었다. 2004년 KBS 와 MBC 는 30대 초반의 주인공들을 통해 변화한 사회와 여성들의 욕망을 그려내며 큰 인기를 끌었고, 2005년에는 의 김삼순(김선아)이 노처녀의 대표 주자로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당시 스물아홉이었던 그의 나이는 2011년 현재 ‘노처녀’ 축에도 끼지 못한다. 2007년 시작된 tvN 는 예쁘지도 학벌이 좋지도 대기업에 다니지도 않는 주인공 이영애(김현숙)를 통해 판타지를 쏙 뺀 공감대를 얻어내며 시즌을 거듭해왔고, 2009년 의 장문정(엄정화)은 이미 혼자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30대 후반의 여성이었으며, 2011년 KBS 는 서른넷 이소영(장나라)이 “동안이라 재취업하기도 그렇고 시집가기도 쉬울 것”이라는 말과 함께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며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TV 다큐멘터리도 이 시대의 핫 키워드 ‘노처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방송된 < MBC 스페셜 > ‘노처녀가’는 세 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케이스의 30대 비혼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큐멘터리 방식으로 제작되었고, < tvN 스페셜 > ‘어쩌다 보니 노처녀’는 PD와 주인공이 모두 39세 비혼 여성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노처녀가’는 30대 초중반의 비혼 여성들을 ‘노처녀=결혼을 원하는 이성애자 여성’으로 한정짓고 단순화하며 다큐멘터리로서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지만 정작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만남의 자리에서는 까다로운 태도를 보이거나 싱글파티에서 짝을 구하지 못한 뒤 스스로를 자조하며 눈물짓는 주인공들은 드라마 속 노처녀 수난기와 다르지 않았고, 등록금 시위 장면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얻기 힘든 사회를 비판하는 엔딩은 ‘노처녀’를 징검다리삼은 비약에 가까웠다. 반면 ‘어쩌다 보니 노처녀’는 비교적 가벼운 톤으로 진행되면서도 70년대 이후 경제 발전과 함께 가정에서 비교적 아들들과 차별 없이 자란 딸들이 결혼보다는 직업적 성취를 추구하며 살아온 결과가 현재의 30대 비혼 여성 증가로 이어졌다는 사회적 맥락을 짚어내는 동시에 결혼에 대한 개인의 다양한 탐구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냈다.

노처녀들은 ‘저출산의 주범’이자 ‘망국의 원흉’?
[최지은의 10 Voice] 노처녀들을 그냥 좀 놔둬라
[최지은의 10 Voice] 노처녀들을 그냥 좀 놔둬라
결혼을 의무 혹은 달성해야 할 과제로 보느냐, 개인의 선택 혹은 성찰의 과정으로 보느냐는 두 프로그램의 제목이 주는 뉘앙스만큼이나 다른 지점이다. ‘노처녀가’는 “만혼과 낮은 출산율로 2100년에는 한국 인구가 절반이 되고, 2500년에는 나라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충격적인, 혹은 2100년이 되기 전에 사망할 우리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소식을 전했다. “25세에서 34세 사이 결혼적령기 여성 356만 명 중 173만 명이 미혼(2010년 기준)”이라는 통계도 전달했다. ‘어쩌다 보니 노처녀’는 “노처녀들은 ‘저출산의 주범’이자 ‘망국의 원흉’이라는 비난 속에 살고 있다”고 자조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인데 어째서 ‘노총각’ 아닌 ‘노처녀’만이 이토록 사회적 문제 집단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일까. 출산에 적합한 나이를 기준으로 한 ‘결혼적령기’가 개인에게 의미 있는 가치일까. 이토록 “얼른 시집가라”며 온 사회가 나서서 등짝 내리친다고 결혼할 마음이 정말 생길까. ‘노처녀’에게도 결혼을 미룰 자유, 결혼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걸 이제 그냥 좀 받아들일 때도 됐다. 안 그래도 노처녀들, 스스로 먹고 사느라 인생이 힘들다.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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