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뮤지션에게 20년은 ‘노장’을 지나 ‘전설’로 인정받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승환은 사라지는 전설보다는 청춘 같은 현역으로 살려는 뮤지션이다. 그는 곧 10번째 정규 앨범을 낼 예정이지만, 여전히 신나는 록 트랙 ‘슈퍼 히어로’를 부르고, 무대 위에서 ‘환장’한다. 그보다 20살 어린 후배들까지 참여한 20주년 기념 트리뷰트 앨범 의 곡들이 그가 직접 부른 신곡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동안 얼굴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젊은 이승환의 지난 20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벌써 20년이다. (웃음) 되돌아보면 어떤 시간이었던 것 같나.
이승환
: 망각을 잘 하는 스타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난다. (웃음) 그냥 큰 부침 없이, 피크 없이 잔잔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좋았고, 음악계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으니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20주년 앨범 를 들어보면 예전에 발표된 곡들하고 신곡 ‘Fair lady’나 ‘좋은 날 2’의 감성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더라. 여전히 20대처럼 부른다 싶었다.
이승환
: 팬들만 늙어간다. 새로 유입되는 사람은 없고. (웃음) 사실 4집 부터는 내가 앨범을 내면 늘 “이번 앨범 실망이야” 이러는 사람들이 나왔다. 어떤 기자는 그 때 ‘천일동안’ 말고는 들을 거 하나 없다는 말도 했었고.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됐던 것 같다. 그 사이 팬들은 나이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음악은 내 마음대로, 젊게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차피 이제 40대 대표가수는 이승철인데. (웃음) 그냥 내 마음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어딜 가도 나를 이승철로 착각한다. 그러면 소수를 위한 음악을 해도 될 거 같다.

“이번 앨범에선 희열이가 리메이크한 곡에 제일 마음에 든다”

그건 음악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당신의 음악은 갈수록 터프해지지 않나.
이승환
: 그래서 나보고 괴기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웃음) ‘슈퍼 히어로’ 부르니까 나이에 맞는 음악 하란 사람도 있었고. 그냥 “옛날에 하던 발라드 하지, 좋은데” 이러더라. 그런데 나는 지금이 완전 좋은데. (웃음) 인터넷도 하고 게임도 예약 걸어놓고 사서 하고. 고깝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에겐 20대 감성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반항심이나 자유로움도 그 때 그 시절처럼 남아있고.

에서 후배들이 리메이크한 당신 곡의 선곡도 그런 기준으로 이뤄졌나. 풋풋한 초기작들이 많던데.
이승환
: 꼭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플럭서스와 하는 첫 번째 작업이니까 대중에게 다가서는 부분도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 초기 곡들은 대중이 폭 넓게 좋아한 곡들이 많으니까. 그래서 음악 작업도 내가 직접 관여하기 보다는 후배 뮤지션들이 작업한 걸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2AM의 조권부터 드렁큰 타이거, 윤도현 밴드까지 참여한 뮤지션들이 당신 곡을 오마주했다기 보다는 자기들 방식대로 리메이크 했더라. 다만 유희열이 작업한 ‘내가 바라는 나’는 당신이 스스로 리메이크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원곡의 감성을 재해석했더라.
이승환
: 나도 그 곡이 무척 마음에 든다. 희열이가 직접 선곡했는데, 나를 잘 알아서 그런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다음에 이런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오면 그 때는 예전에 함께 했던 지누나 정지찬, 이소은도 참여시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붉은 낙타’를 부를 때는 “퍼렇게 온통 다 멍이든 억지스런 온갖 기대와 뒤틀려진 희망들을 품고 살던 나의 20대”라며 자신의 30대에 대한 선언을 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는데, 40대에 접어들면서는 무슨 생각이 드나.
이승환
: 그 당시에는 내가 뭘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용기도 있었고. 그런데 요즘 몇 년은 눈치를 봤었다. 내 지명도가 떨어지는 게 느껴지니까. 그런데 사람이 초조해지면 안 된다. 자기 색깔도 잃어버리게 되고.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된 거다. 난 뭘 해도 안 된다는 거. (웃음) 사람 인생에서 40대 중반에 접어들면 그리 큰 전환기 같은 건 없다.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 하지 않겠나. 김창완 선배님처럼 50대가 되고, 더 나이 들어도 락 페스티발에 섰을 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음악을 하고 싶다. 이제 물욕 같은 건 거의 없고. 사고 싶은 블루레이를 사거나 게임 같은 취미생활을 할 만큼이면 된다. 그래서 정규 앨범도 좀 더 자유롭게 할 거 같다. 다만 이번 20주년 앨범은 플럭서스와의 첫 작업이라 내 생각만 내세우지는 않았고.

“주변에선 이젠 사랑 노래 좀 만들라고 하지만”

플럭서스와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됐나.
이승환
: 작년 9월 30일에 드림팩토리를 접었다. 그 한 달 전 소속사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 달 사이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준비를 하라고 했고.

박신혜도 그 과정에서 소속사를 옮긴 건가.
이승환
: 그렇다. 그 때 신혜가 울면서 뛰어나갔는데, 그 때 복도에서 울리던 발자국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보통 박신혜 같은 연기자는 어떻게든 잡지 않나. 박신혜도 인터뷰에서 드림팩토리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대해 얘기하던데.
이승환
: 나는 그 당시에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제작하고 매니지먼트를 한 뮤지션과 연기자들을 생각하면 행복했지만, 하루하루 생기는 사건 사고들에 대한 불안이 심했다. 그리고 나는 소속 연기자들에게 정말 잘 해준다고 생각했었다. 신혜에게도 잘 해줬지만, 다른 친구들도 고민거리가 생기거나 우울해지면 회사 사람들이 달려가서 위로도 하고 영화도 같이 보고. 그런데 연기자에겐 그것만이 전부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뭔가 강력한 매니지먼트를 해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었으니까. 신혜도 누군가 ‘만년 유망주’라는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신혜도 더 잘 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앞으로 음반은 어떻게 내나.
이승환
: 플럭서스와 같이 할 생각이다. 다만 는 플럭서스가 제작 투자를 했지만, 내년 상반기에 낼 10집 앨범은 내가 제작 투자를 할 생각이다. 이제 회사를 내가 책임지지 않으니까 더 여유로운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내가 버는 수입을 다 회사에 넣어도 회사가 힘들었으니까. 작년 10월부터는 굉장히 평화로웠다. 끝까지 잔잔한 삶을 사는 게 인생의 목표다. (웃음)

그런데 잔잔한 삶치곤 사회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 용산 참사 관련 공연에도 참여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다
이승환
: 이젠 잃을 게 없다. (웃음) 나 건드리면 확 목 메달 거야. (웃음) 농담이다. 글쎄, 내가 옛날에는 어려서 세상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게 보이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세상이 순리대로 가야지, 역행하면 모두가 죽으니까.

그런 생각의 변화가 음악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나. 앨범 제작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는 게 음악에 반영될 텐데.
이승환
: 물론이다. 나는 언제나 정규 앨범을 낼 때 그 사이에 생긴 일들과 들은 음악에 영향을 받는다. 이번에는 특히 가사가 그런 것 같다. 가사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메모하는데, 그 중 상당수가 그런 얘기더라. 그래서 주변에서 걱정한다. 사랑 얘기 써야 잘 된다고. (웃음)

“누군가 내 음악이나 언행에 좋은 영향을 받길 바란다”

그렇게 살면 점점 쓸쓸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은 안 드나? 당신을 이해할 친구가 많지는 않을 텐데.
이승환
: 별로 안한다. 외로움을 잘 타긴 하는데, 집에 워낙 혼자 있길 좋아하니까. 외로움을 잘 타는 건 관계를 맺다가 단절 되는 건데, 난 요즘 관계를 안 맺는다. (웃음) 음악 활동 안하면 집에 있는데, 집에 있으면 너무 재밌고 할 것도 많다. (웃음)

정말 인생이 잔잔하겠다. (웃음) 그러면 공연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예정인가? 당신에게 공연은 음반 못지않게 중요한 인생의 한 부분이지 않나.
이승환
: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다만 예전처럼 정기적으로 공연을 할 생각이긴 하다. 일단 12월 5일에 부산에서 공연하고, 1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펜싱경기장에서 할 예정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공연 일정을 유동적으로 잡을 생각이다. 이젠 내가 책임져야할 회사가 없으니까. 올해 <착하게 살자> 공연을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내가 회사를 접고 나서 나와 로드 매니저 한 명만 있으니까 대기실 관리도 내가 하고, 게스트 뮤지션들 서로 인사시키고, 무대에 가면 내가 큐 사인하고. 그러니까 기진맥진해서 무대에 올라갔다가 네 곡째에 목이 상했다. 내가 착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웃음) 무대에서 더 잘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공연의 형식을 찾고 있다.

특별히 해보고 싶은 공연이 있나?
이승환
: 얼마 전 공연 업계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적> 공연 같은 걸 다시 하면 안 되겠냐고.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물어보니까 얼마 전 스태프들끼리 모임을 가졌는데, 가장 자극 받은 공연이 <무적>이었다고 하더라. 그 공연을 보고 공연 업계를 떠나려고 하다 희망을 보고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고 하고, 공연 업계에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그 때처럼 현재의 공연을 뛰어넘는 뭔가를 하고 싶다. 문제는 그럴 려면 정말 자본이 필요한데, 이젠 내 공연에 사람들이 전처럼 많이 안 오는 게 문제다. (웃음) 그리고 공연 전에 내년 초에 녹음하러 미국에 갈 거고.

지금 이승환이 바라는 ‘내가 바라는 나’는 뭔가.
이승환
: 그런 얘기가 있다. “부딪치되 흔들리지 않고, 조용하되 침묵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내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고. (웃음) 요즘 세상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싫어하는 시대인데, 누군가 내 음악이나 언행에 좋은 영향을 받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도 않고. 다만 아주 소수에게, 그들에게 뭔가 자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냉담하게 대하긴 하지만, 팬들에게 좀 고맙다. (웃음)

사진제공_ 플럭서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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