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들을 통해 ‘우리’를 들여다보는 드라마다. 방송국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람들의 갈등과 화해를 보며, 또는 그 사이에 사랑과 우정, 만남과 이별 사이 어디쯤에 있는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는 바로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어떤 극단적인 사건 없이, 그리고 연속적인 스토리 없이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만으로 2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인생을 조망하는 <그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을까. “사랑이 귀찮아질 만큼 사는 게 버겁다”는 사람들을 통해 오히려 삶에 대한 위안을 던져주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10 FOCUS’의 첫 번째 기사로 소개한다. 노희경 작가와 6년 만에 함께한 표민수 감독의 인터뷰, 그리고 모든 솔로들을 연애하고 싶게 만드는 현빈과 송혜교의 모습이 담긴 현장 취재도 함께한다.

매일 아침, 밥을 먹으며 울었던 날들이 있었다. 누구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첫 숟갈을 목에 넘길 때마다 눈앞이 뿌예졌고, 그러면 상 너머의 아버지에게 눈물을 들키기 싫어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다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딱 5분만. 그러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로 다니던 회사에 늦었으니까. 그 때 정말 지랄 맞았던 건, 이불 밖으로 나온 20분 뒤에는 태연한 얼굴로 지하철을 타야 했다는 거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회사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울고, 그치고, 먹고, 일하고, 잡담하고, 잡담하다 웃고. 그러다 언젠가 부터는 집에서 울다 나와 지하철에서 서서 졸기 시작했다. 그래서, KBS <그들이 사는 세상>의 준영(송혜교)을 싫어할 수 없다. 그렇게 좋아했던 준기(이준혁)와 헤어진 뒤 보름 만에 감정을 정리한 준영을. 어쩌면 준영은 혼자 TV를 보는 밤이면 준기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번째 4부작 특집극을 준비하는 드라마 감독이 옛 애인을 그리워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몇 분이나 될까. 준영이 연애를 하든 실연을 당하든, 그가 하루에 2시간을 자며 드라마를 촬영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준영의 선배 지오(현빈)가 연희(차수연)와의 길고 질긴 연애를 끝낸 뒤 집에서 울 수 있었던 건 그가 미니시리즈를 끝내가던 시점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매 달 꾸역꾸역 월급을 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울 수 있는 시간도, 눈물을 받아 줄 사람도 넉넉지 않다.

눈치 채라, 그리고 조용히 이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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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이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 />
준영은 “사랑이 귀찮아질 만큼 사는 게 버겁다”는 서우(김여진)의 대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 질문에 이미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고 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톱스타 윤영(배종옥)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도 촬영을 위해 베드신을 찍는다. 삶이 힘든 건 힘든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들을 안은 채 누군가와 부딪치며 살기 때문이다. 방송 10분 전까지 미니시리즈의 편집이 끝나지 않은 드라마 국에서 내가 힘든 사랑을 하고 있다고,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아프다. 하지만, 아무도 아플 수 없다. 연인과 헤어진 날의 준영과 지오도, 15년 전 윤영과의 사랑 때문에 아내에게 이혼당한 민철(김갑수)도.

더욱 힘든 건 이 버거운 삶을 서로 온전히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민철의 15년을 힘들게 하는 윤영과의 로맨스는 드라마국 사람들에게 술자리 잡담거리다.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드라마는 길을 잃는다는 지오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도 서로의 인생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수많은 비극의 주인공들이 모여 만든 소소한 일상의 드라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에서는 온갖 드라마를 찍지만, 방 바깥의 ‘그들’의 세상에서는 누구도 감정을 다 쏟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기에 어느 순간에는 그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전날 밤 윤영에게 다시 만날 것을 허락받은 민철은 걸음걸이부터 달라지고, 준영은 이제 자신의 연인이 된 지오가 옛 연인 연희와 만나는 것을 본 뒤부터는 촬영장에서 까칠하다. 그래서 그들의 세상은 서로 그 감정들을 눈치 채고, 적당히 이해할 때 무리 없이 돌아간다. 이성적으로는 촬영감독이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영상을 찍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판 싸우고, 술 마시며 서로의 입장을 알아야 제대로 드라마를 찍을 수 있듯이. 준영이 스턴트맨의 부상이 왜 자기 책임인지, 촬영장에서 배우와 스태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이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괜찮다” 다독거려주는 눈물 같은 그들

그래서, <그들이 사는 세상>은 연인들의 절절한 눈물 없이도 아름답게 반짝인다. 이 드라마는 누구도 서로의 삶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할 그들 각자의 삶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며 ‘업계의 룰’을 깬 윤영은 전형적인 악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의 윤영의 모습은 또 다르다. 드라마국에서 악독하기로 소문난 감독인 규호(엄기준)는 동생이 사경을 헤매는 날에도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한다. 각자의 개인사가 조금씩 공개되면서, 이해 받을 수 없었을 것 같았던 각자의 삶은 타인에게 수용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한 남자를 3개월 이상 사랑하지 못하는 마녀의 애정행각을, 15년 동안 한 여자만 바라보고 사는 이혼남의 순정을. 사랑에 대해 ‘너무 쉽다’던 준영은 지오에게 순정을 다하고 싶어지고, 한 때는 목숨 바쳐 연희를 사랑했던 지오는 그녀와의 결별 직후 준영의 미소에 설렘을 느낀다. 사람들은 늘 이성과 도덕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그들이 부대끼는 삶은 이성과 감성, 도덕과 욕망의 경계에서 이해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부산물들로 돌아간다. 왜 지오의 어머니(나문희)는 사사건건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남편이 사준 모자를 애지중지 할까. 과연 지오는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규호는 나쁜 드라마를 만드는 걸까. <그들이 사는 세상>은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거나, 재단하는 대신 모든 이의 삶을 그대로 껴안는다. 우리가 상사에게 깨진 날 밤에 필요한 것이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심드렁한 모습으로 “술 마시고 잊어 새끼야”라고 말해주는 친구인 것처럼.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대신 받아들이는 순간,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사랑은 “손만 들면 택시가 서는” 드라마처럼 일상을 치장하지 않아도 아름다워진다. 방바닥에서 뒹굴 거리는 지오와 준영을 보며 연애를 하고 싶어졌다면, 그것은 당신이 이미 같은 공간에서 부담 없는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집 바깥의 수많은 ‘아킬레스건’들을 벗어나 연인과 함께 있는 32시간의 의미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들도 서로를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지오와 준영은 서로의 부모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서로 “그게 뭐 그렇게 힘드냐”는 투로 말한다. 그 소통의 오류는 준영과 지오를 헤어지게도, 혹은 규호와 어떤 여배우처럼 ‘아쉬울 때를 대비한 잠재적 연인관계’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다가선다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 사랑이 귀찮을 만큼 사는 게 버거운 사람들일수록 사랑이 필요하다. 딸에게 미움 받고, 드라마국의 숱한 문제에 시달리면서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 편하게 지내자며 다시 한 번 윤영에게 다가서는 민철처럼, 그리고 그가 건넨 과자를 오독오독 씹으며 “11시 전에는 전화하지 말라”며 그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윤영처럼.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하여,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들이 왜 꾸역꾸역 각자의 방 안에서 나와 애써 함께 사는지 보여준다. 누구나 어려워할 만큼 꼬장꼬장한 연기자 민숙(윤여정)도 생일날 아침에 홀로 식사하는 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즐겁든 슬프든, 언제나 마주하는 그들과의 삶은 서로를 힘겹게 하지만, 언제나 반복되는 것이기에 위안을 준다. 그들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그들은 내일도, 다시 또 그 다음날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삶을 함께 살아갈 것이다. 지오가 연희와 헤어진 뒤 홀로 눈물 흘려도 드라마국의 골치 아픈 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도 쉽게 서로의 상처를 내보일 수 없는 삶의 반복이 오히려 각자의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긍정. 삶에 대한 이 역설적인 긍정을 깨닫는 순간, ‘그들’이 사는 세상은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드라마국의 사람들처럼 가족이, 연인이, 직장 동료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그들과 함께 산다는 믿음이 있기에 살 수 있다.

<거짓말>부터 <고독>까지, 표민수 감독과 노희경 작가는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개인이 사랑하고, 상처받고, 좌절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6년 만에 재회한 그들은 개인의 ‘상처’에 집중하는 대신, 버거운 삶을 안고 가는 어떤 ‘방식’을 보여준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복잡하고 정의할 수 없는 삶 그 자체를 통해.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은 그들 혹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삶 안에서 어쨌든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때론 사랑이 귀찮을 만큼 버거울지라도. 당신은 어젯밤 방에서 무엇을 했는가.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다음날에도 아침은 찾아오고, 당신은 누군가와 같이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때론 아침밥이 목에 메일지라도.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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