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노엘 갤러거(가운데)가 지난 1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자신의 밴드 하이 플라잉 버즈와 공연을 열었다. /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노엘 갤러거(가운데)가 지난 1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자신의 밴드 하이 플라잉 버즈와 공연을 열었다. /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남자는 괴짜였다. 그의 옆집에는 남자 사진사와 여자 모델이 살았다. 둘은 커플이었다. 남자는 벽에 난 구멍으로 이 커플을 매일 관찰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모델을 깊이 사랑하게 됐다. 모델은 남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이를 수 없는 존재였다. 실체는 없지만 그가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누군가였다. 영화 ‘원더월(Wonderwall)’의 내용이다.

‘원더월’은 남자가 구멍을 뚫은 그 벽을 가리킨다. 자신이 선망하는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통로 혹은 그 세계 자체를 말한다. 밴드 오아시스의 멤버로 활동하던 노엘 갤러거는 ‘원더월’의 개념을 따와 같은 제목의 노래를 만들고 이런 가사를 붙였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냐면 어쩌면 당신이 날 구원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당신은 나의 원더월이니까요.’

‘원더월’의 주인공 노엘 갤러거가 자신의 밴드 하이 플라잉 버즈와 함께 한국 팬들을 만났다. 지난 16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를 통해서다. 멋들어진 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른 노엘 갤러거는 2시간여 동안 21곡을 연주했다. 얼굴엔 주름이 제법 깊었고 피부도 탄력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그는 여전히 록 스타였다. 반백의 나이에도 청춘이었다. 공연장에는 4700여 명의 관객들이 몰렸다.

한국 팬들이 그리웠다는 노엘 갤러거. /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한국 팬들이 그리웠다는 노엘 갤러거. /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지난해 발매된 하이 플라잉 버즈의 음반 ‘후 빌트 더 문?(Who Built the Moon?)’의 수록곡 ‘포트 녹스(Fort Knox)’로 공연은 막을 열었다. 환각 상태를 연상시키는 현란한 기타 연주와 비장한 코러스가 단숨에 현장을 달궜다. 노엘 갤러거는 쉴 틈을 주지 않고 ‘홀리 마운틴(Holy Mountain)’ ‘킵 온 리칭(Keep on Reaching)’ ‘잇츠 어 뷰티풀 월드(It’s a Beautiful World)’ ‘인 더 에드 오브 더 모먼트(In the Head of the Moment)’ ‘이프 아이 해드 어 건(If I Had a Gun)’ ‘드림 온(Dream On)’을 연달아 들려줬다. 간혹 악기 소리를 확인하느라 정적이 흐를 때면 관객들은 어김없이 ‘노엘 갤러거’를 연호했다.

“굿 이브닝, 서울. 다시 이곳에 오게 돼 기쁘군요. 선물도 고마워요. 이것들을 어떻게 영국으로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음… 오아시스의 팬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을 위해 바칩니다.”

노엘 갤러거가 밴드 오아시스로 활동하며 발표했던 ‘리틀 바이 리틀(Little by Little)’을 연주하자 공연장은 요동쳤다. ‘떼창’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터져 나왔다. 노엘 갤러거는 친형제인 리암 갤러거와 1991년 오아시스를 결성했다. 밴드는 ‘제2의 비틀즈’라는 별명을 얻으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형제는 서로를 ‘디스’하느라 바빴지만 그래도 밴드는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2009년 8월 28일 오아시스는 해체했다. ‘2년 안에 재결합할 것’이라는 항간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지만 형제의 화해를 바라는 팬들의 염원은 10여 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노엘 갤러거는 3년 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노엘 갤러거는 3년 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사진제공=라이브네이션코리아
팬들의 마음을 당사자가 모를 리 없을 게다. 이날 노엘 갤러거는 예정에 없던 ‘수퍼소닉(Supersonic)’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들려주며 아쉬움을 달래줬다. ‘왓에버(Whatever)’ ‘하프 더 월드 어웨이(Half the World Away)’와 희대의 명곡 ‘원더월’, 영국에선 국가만큼이나 유명하다는 ‘돈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도 빼놓지 않고 들려줬다. 짧고 명료한 멜로디를 써내는 노엘 갤러거의 감각 덕분에 익숙지 않은 노래도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노엘 갤러거가 “노래에 대한 열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칭찬했던 국내 팬들의 기세는 이날도 대단했다. 서정적인 분위기의 ‘데드 인 더 워터(Dead in the Water)’가 불릴 땐 휴대전화 플래시로 공연장을 밝혔고, 앙코르를 연호하는 대신 오아시스의 ‘리브 포에버(Live Forever)’를 합창했다. 한 관객이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고 외치자 노엘 갤러거는 “아이 노우(I know)”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다시 한 번 돌아와서 정말 기뻐요.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군요. 아 참. 월드컵에선 정말 잘 했어요. 우린 3년 뒤쯤 다시 만나자고요.”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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