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포맷 빌린 '가짜사나이'
메가 히트작되자 방송국이 재가공
"유튜브에 제작 능력까지 역전됐나"
시청자 비아냥 듣는 TV 방송
'가짜사나이'(위부터), '나는 살아있다', '집사부일체'/ 사진=피지컬 갤러리, tvN, SBS
'가짜사나이'(위부터), '나는 살아있다', '집사부일체'/ 사진=피지컬 갤러리, tvN, SBS
각종 TV 방송이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2’의 폭발적인 인기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화제의 출연진 모시기부터 유사 프로그램 제작까지 메가 히트작에 의존한 콘텐츠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유튜브 헬스 채널 ‘피지컬 갤러리’가 지난 7월 처음 선보인 ‘가짜사나이’는 유튜버, BJ, 가수 등 유명인들이 해군 특수전단(UDT) 특수 훈련을 받는 과정을 그린다.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 포맷과 제목을 빌려왔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이 펼쳐져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7월 9일 최초 공개된 1편 영상 조회수는 8일 기준 1613만 회를 돌파했다. 시즌1의 모든 영상 누적 조회수는 6천만 회에 육박할 정도로 대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이같은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피지컬 갤러리’는 시즌2 제작을 결정했고, 참가자를 선정하는 미팅 과정을 모두 공개해 본편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 결과 ‘가짜사나이2’는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다. 지난 1일 공개된 1편은 사흘 만에 1000만뷰를 돌파했고, 2편은 3일 만에 700만뷰를 넘어섰다.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도 ‘가짜사나이2’가 싹쓸이했다. 1, 2편 방송은 물론 출연자들의 리뷰 방송, 지난 시즌 출연자들의 합동 방송 등이 상위권에 줄 지었다. 이들과 비슷한 순위에 오른 건 그룹 방탄소년단, 크리에이터 펭수, 축구선수 손흥민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TV 방송국도 화제의 출연진을 섭외하거나 이를 차용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TV 예능의 포맷으로 시작한 ‘가짜사나이’를 오히려 방송국이 다시 쫓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장르만 코미디' 속 이근 대위/ 사진=JTBC 제공
'장르만 코미디' 속 이근 대위/ 사진=JTBC 제공
그 중심에는 시즌1 최고의 히로인으로 손꼽히는 이근 대위가 있다. ‘가짜사나이’ 교육대장으로 출연한 그는 남다른 카리스마와 "인성 문제 있어?" 등의 발언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방송국 섭외 1순위로 발돋움했다. 수많은 러브콜을 받은 그는 SBS ‘집사부일체’, JTBC ‘장르만 코미디’, 카카오TV ‘톡이나할까’ 등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 등 라디오에 출연했다. 지난 7일에만 MBC ‘라디오스타’, MBC 에브리원 ‘대한외국인’ 등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다.

초기에는 이근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군인으로서 사명감이 투철한 면모로 화제를 모았으나, 약 한 달간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소비된 탓에 피로감이 느껴진다. 앞선 방송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마치 새로 밝힌 사실인 것처럼 전파를 타는 경우도 잦아졌다. 무분별하게 화제의 인물을 데려가려는 방송국들의 욕심이 이근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빠르게 소진해버렸다.
'나는 살아있다' 티저 캡처/ 사진=tvN 제공
'나는 살아있다' 티저 캡처/ 사진=tvN 제공
여기에 tvN은 특전사 중사 출신 박은하 교관과 6인의 여성 출연진이 재난 상황에 맞서 생존하는 과정을 그린 ‘나는 살아있다’를 선보이겠다고 해 비난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군인 콘텐츠가 뜨자 특전사 교관을 섭외했다는 점과 티저 영상에서 통나무를 함께 들어올리는 등 훈련을 받는 모습이 ‘가짜사나이’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대다수의 네티즌과 언론들은 벌써 ‘여자판 가짜사나이’라고 명명했다. “생존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아내 색다른 정보와 볼거리를 선사하겠다”는 제작진의 각오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TV 방송국은 육아 예능, 관찰 예능, 먹방 등 하나의 대세 콘텐츠가 나오면 비슷한 방송들을 잇따라 제작해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의 포맷을 따라가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오랜 전통과 빛나는 역사를 가진 TV 방송국의 명예를 실추하고 구성원들의 자긍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일부 시청자들은 유튜브의 급진적인 발전으로 TV 방송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콘텐츠 제작 능력마저 추월 당하기 시작했다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더 이상 방송국에 창의적인 사람은 남아 있지 않다. 이미 다 유튜브로 떠났다”고 비꼬았다.

정태건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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