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아쉬울 것 없지만 단지 나이만 조금 더 먹었을 뿐인 SBS <골드미스가 간다>의 골드미스들은 단 한 번의 맞선 기회를 위해서 열정적으로 머리를 흔들고 망가진다. 심지어 그녀의 친구들도. 노처녀라면, 노처녀니까 당연히 결혼을 원한다는 상호암묵적인 합의 아래 이뤄지는 처절한 게임과 뒤이은 어색한 맞선 자리는 <무한도전>류의 쇼와 다를 바가 없다. 이미 결혼한 아줌마들의 상황도 그리 녹록하진 않다. 그녀들도 생활의 지혜보다는 걸쭉한 입담만을 강요 받는다. 이혼마저도 웃음의 소재로 삼는 버라이어티에서 결혼 혹은 결혼생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란 어불성설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정말 결혼을 원하는가? 아줌마들은 정말 망가지기만 하고 싶은 걸까? 정진아, 김교석 TV평론가가 그녀들의 수다에 한 마디를 보탠다. /편집자주

SBS <일요일이 좋다>의 ‘골드미스가 간다’(이하 골미다)는 6인의 미혼여성 전부가 결혼을 원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골미다’는 6명에게 맞선을 주선하고, 맞선을 위해 각종 게임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몇 주 전 MBC 에브리원 <무한걸스>에서 송은이는 자기 행복의 끝이 정말 결혼인 건가 고민스럽다 했고, 예지원은 ‘골미다’ 에서 사랑 얘기가 재미없다고 했다. 즉, ‘골미다’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연기하는 인위적 상황극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는 현실적 결혼 얘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혼직장여성들의 OT 이야기

‘골미다’에서 결혼이란, 판타지나 일상이 아니라 성취해야 할 미션이다. ‘골미다’를 지배하는 법칙이 게임의 룰과 닮아있는 건 그래서이다. 마왕과 대면하기 위해선 약속된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처럼, 6인의 출연자들도 결혼을 하기 위해선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렇기에 ‘양정아에겐 애교, 송은이에겐 여성성, 예지원에겐 평범함, 진재영에겐 돈’과 같이 그녀들에겐 자각하거나 고쳐야 할 하자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하자들이 바로 그녀들이 클리어 해야 할 하나의 단계로 기능한다. 맞선을 나갈 사람을 정하기 위해서 하는 게임이나 ‘1+1’과 같은 일종의 패자부활전도 그런 맥락하에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리얼리티를 가장한 상황극이고, 1등을 반복해서 뽑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출연자간 경쟁에 의한 갈등은 생겨날 수 없다. ‘골미다’ 가 리얼리티 쇼의 선정성 대신 6명의 출연진들 간의 따뜻한 관계를 포착해 보여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사랑과 결혼’을 소재로 내세운 ‘골미다’의 구성은 특이하게도 직장인의 OT 플랜을 떠올리게 만든다. 며칠 간 함께 합숙을 하면서 직장생활에 필요한 덕목을 배우고, 캠프파이어도 하고 게임도 하다 마지막으로 MVP를 뽑아 상품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골미다’ 에서는 그 상품을 갖기 위해선 그 상품과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여전히 유효한 편견을 깨고

‘골미다’ 는 출연자들을 결혼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게임의 소재로 결혼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언뜻언뜻 불편해지는 것은 게임의 세계관이 미혼여성을 바라보는 현실의 편견들을 그대로 담고 있곤 하기 때문이다. 양정아에게 나이가 들었으니 현실을 알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경제적 여유를 지닌 주체적 미혼 여성인 골드미스를 ‘남자가 결핍된 여자’처럼 단순히 치환시켜버린 것 등이 그런 예이다. 아무리 의도치 않은 일이라고 해도 여성의 결혼을 소재로 내건 프로그램의 태도치곤 너무 안이한 구석이 있다. 이 프로그램이 정말 부숴버려야 할 건 출연자들을 수치화한 ‘골드미스성적표’가 아니라 자기내부에 존재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안이하고 편견 어린 시선이다.
글_정진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세바퀴’의 콘셉트는 명확했다. 30대 이상을 타깃으로, 성역 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주부를 위한 오락 프로그램. MC 김구라의 말을 빌리자면 “송해 선생님이나 MBC 사장님이 컷을 넘겨야 방송이 진행될 판”이라는 왁자지껄한 스튜디오에서 패널들은 억척스런 모습으로 주부 시청자들에게 그들도 연예인이기에 앞서 ‘아줌마’라는 동질감을 깊게 심었다. 그 결과 ‘세바퀴’는 여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시간과 공을 들여 엮어가는 ‘맥락’ 없이도 1회 만에 시청자와의 친밀감을 만들어 냈다.

‘브레인 서바이버’를 잇는 퀴즈쇼의 부활 혹은 망령

상승세를 한창 이어가던 9회까지 ‘세바퀴’는 양희은, 선우용녀, 이경실의 막무가내 트로이카와 조형기를 중심으로 한 연륜 있는 패널들이 시청자들도 관심 가질만한 주부상식퀴즈와 같은 현실침투형 퀴즈를 풀며, 시청자들과의 친밀감을 높이고 호감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 30분 내외로 시작한 이 퀴즈쇼는 이후 50분에 이르는 방송 시간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것이 과욕이었을까. 지난주 23회를 방영한 ‘세바퀴’는 초반과 비교하면 몇 바퀴 구른 듯 한 모습이다. 늘어난 방송분량을 매번 색다르게 채우려다 보니, 신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댁 주부와 고참 주부의 포진은 무너졌다. 격주로 한쪽을 아예 남자 패널로 등장시키더니 급기야 아이돌 스타와 버라이어티의 대표 저니맨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미 초기 기획 의도는 희미해졌다. 주부를 위한 프로답게 지난주의 이야기를 철저하게 복기하며 시작하던 오프닝 멘트는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의 비굴모드를 차용했고, 대세는 리얼버라이어티의 캐릭터라며 ‘4차원 승신’ ‘백치 임예진’ 등 다양한 캐릭터를 내세워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선수의 등장, 맥거핀이 되어버린 퀴즈쇼

퀴즈도 사라졌다. ‘가장 닮고 싶은 부부’와 같은, 이미 타 방송사에서는 하다하다 질린 나머지 프로그램 자체를 개편한 앙케이트 결과나 신조어 맞추기가 태연하게 나온다. 오후 라디오 방송에서도 가끔만 한다는 드라마 속 대사 맞추기와 같은 문제를 후다닥 풀고 패널들에게 재연시키며 웃음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패널들의 변화는 심각하다. 김신영, 이광기, 김태현, 장영란, 성대현, 솔비, 김현철 등등의 토크 선수들이 연륜 있는 주부 패널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젠 주부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원더걸스는 ‘딸’ 이미지로 두 번이나 등장했고, 지난주에는 동방신기가 출연했다.

사실, ‘세바퀴’는 ‘아줌마’의 이미지를 너무 극단적으로 정형화시키고 있다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제작진은 이 의구심을 의도치 않게 해소해 버렸다. ‘아줌마’는 보내버리고 독하고 재밌는 버라이어티 토크선수들만 남겼다. 주부들의 생활 상식과 아주머니들의 찰진 수다로 시작한 퀴즈쇼는 ‘라디오 스타’의 독함과 빈곤함을 정서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를 불러들여 KBS <스타골든벨>, SBS <야심만만> 등 여러 오락 프로그램에서 봄직한 상황들로 채워졌다. 여기저기서 본 듯한 인물들이 펼치는 집단 토크쇼의 재림. 재미가 영 없는 것은 아닌데 다음 주를 기다리게 하지는 않는다. 어디서든 언제든 볼 수 있을 테니까. 대한민국 아줌마들을 위한 ‘세바퀴’는 지금 그저 그런 토크쇼로 굴러가고 있다.
글_김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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