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지오(현빈)가 병원에 입원 중인 엄마(나문희)에게 작별의 뽀뽀나 한 번 하자고 덤비는 장면을 보다가 “오옷, 현빈이 우리 아들이면 좋겠다”하자 우리 딸아이도 곁에서 “나두, 나두, 현빈이 내 동생이면 얼마나 좋아!”하며 난리법석이었다. 그런데, 순간 뒤통수에 싸늘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더니 마침 휴가 나온 아들 녀석이 우릴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엄동설한에 자기는 군대에서 생고생인데 집에선 이러고들 있으니 기막히기도 하겠지. 하지만 우리 가족은 원래 허구한 날 이러고 노니 어쩌겠나. 아들 녀석도 전에는 MBC <에덴의 동쪽>의 작은 엄마(전미선)같은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더만. 사실 누구나 농으로든 진심으로든 ‘가족의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다들 해보지 않나. 웃자고 한 얘기지만, 가수 윤종신도 KBS <해피투게더>에서 어릴 때 미아가 됐을 때 자신을 잠시 맡아준 가정의 부유한 생활에 가족이 자기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특히 우리 어릴 때는 살기 어려운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만화 <유리의 성>이나 드라마 <사랑과 진실>처럼 부자 생모가 나타나 신데렐라가 되길 꿈꾸는 애들도 많았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법이야”

요즘 유행하는 가상의 가족 만들기 프로그램인 MBC every1 <가족이 필요해>의 출연자들도 이런 식의 상상을 했던 듯하다. 이왕이면 절세 미녀 아내라든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몸짱 오빠라든지 하는 상상 말이다. 보통 가족들도 그런 상상을 할진데, 연예인들끼리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니 오죽했겠나. 하지만 <가족이 필요해>의 시즌 2는 일단 그런 기대를 깨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여성 아이돌그룹 카라의 한승연은 첫 회에 오빠로 정해진 사람을 만나러 가며 아이돌 그룹의 훤칠한 미남을 기대하지만, 정작 그의 앞에 나타나는 건 ‘죄민수’ 조원석이었다. 게다가 <가족이 필요해>의 가상 부부인 이홍렬과 금보라는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걱정될 만큼 최악의 커플. 꼼꼼하고 보수적인 이홍렬과 시원시원하지만 대차고 자기중심적인 금보라는 단지 방송을 위한 티격태격을 넘어 실제상황으로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금보라는 이홍렬과의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을 당시 “역시 안 맞는 사람이랑 산다는 건 참 고난이다. 고난의 가시밭길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이런 가시밭길을 헤치고 나가야 되는 건지, 아니면 가시를 다 치고 가야 되는 건지”라며 속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니 <가족이 필요해>는 오히려 가족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 필요해>는 오히려 그런 이상한 조합으로 가족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조원석은 한승연을 처음 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법이야.” 그러게, 자식은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고를 수 있는 게 아니고, 입양을 한다 한들 어떤 아이로 성장할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사람의 마음이 처음 만날 때와 같을 리 없고 속속들이 다 아는 줄 알았다가 뜻밖의 돌발 상황에 마음 상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가족이니까 함께 간다

<가족이 필요해>는 그 갈등의 과정을 끈질기게 보여주면서 갈등이 봉합되고, 그들이 가족이 ‘필요’한 순간들을 보여준다. 한승연은 그럭저럭 조원석과 어울리기 시작하고, 이홍렬과 금보라는 실제로 불화설이 돌기까지 했지만, 결국 함께 출연하고 있다. 누가 봐도 안 맞는 사람들끼리 가족이 된다는 건 끔찍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가족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데엔 이보다 효과적일 수 없다. 어느 누구든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보면 마음에 안 맞는 구석은 다 있기 마련이 아니겠나. 가족이란 어차피 운명공동체이니까. 그리고 아들, 현빈 운운한 엄마가 순간 마뜩치 않았겠지만 이 엄마 마음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부디 마음에 안 차는 구석일랑 너그러운 네가 덮어주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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