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은│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영화들
고운 목소리로 자작곡을 부르던 중학생 여자아이. 방과 후 교복을 입은 채로 참가한 < EBS 청소년 창작 음악의 밤 >이 이소은의 첫 방송 무대였다. 그 무대로 이소은은 윤상에게 발탁되었고, 2년 후 첫 앨범을 낼 수 있었다. 소녀만이 낼 수 있던 맑고 단단한 소리는 빠르게 사람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소은은 로스쿨에서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미국에서 보낸 3년. 그러나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본 이적은 그녀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소은은 처음 봤던 중학생 때 그 모습 그대로예요. 자신의 꿈에 대한 확고한 자각이 있었고, 무엇보다 티 없이 맑았죠. 다만 꿈을 향해 가는 하루하루를 통해 좀 더 강해지고 깊어지고 있습니다.”



‘모금 행사의 얼굴마담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싶었던 꿈을 위해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강해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로스쿨의 나날이 이어졌다. 하루 3시간을 넘기지 못하는 수면시간과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만점을 받은 토플 실력에도 불구하고 따라가기 벅찬 수업 등 그녀의 무릎을 꺾는 일들은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심지어 인생 최초로 받은 꼴찌 성적표는 긍정으로 무장한 이소은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좌절이었다. “처음 성적표를 받고선 티슈가 산더미가 될 만큼 펑펑 울었어요. 그러다가 은희경 작가의 소설 <새의 선물> 한 대목이 생각났어요.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꼴찌 성적표를 받은 일도 어쩌면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때론 시험에서 실패하고, 치명적인 실수를 할지라도 그 때문에 내가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건 아닐 거예요. 바람의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내일은 또 다른 바람이 불 테니까요.” 강해질 수밖에 없는 터프한 환경 속에서 소녀는 강해졌고, 용기를 낼수록 소녀는 깊어졌다. 전혀 다른 환경에 겁을 먹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잡고 결국엔 꿈에 가까이 다가간 이소은. 그래서 그녀에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 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영화들을 물어보았다.

이소은│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영화들
1.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
2006년 |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영화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작가는 죽을 때 삶을 돌아보면서 고통스러웠던 시절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는 생각을 했대요. 힘겨운 시간들이 그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반대로 행복했던 시절은 “완전한 시간 낭비”라고 했대요. 이 영화를 볼 무렵, 전 로스쿨을 왜 왔나 생각하며 괴로워하던 때였어요. 제게 있어 고통스러웠던 시절인 셈이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 분명하고, 100% 공감 가는 대사예요. 우리는 늘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어해요. 그건 다시 말하면, 매일 매일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미스 리틀 선샤인>은 제목처럼 캘리포니아의 태양이 입 맞춘 듯한 햇빛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햇살처럼 밝은 미래로 가득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자식에게 별 관심이 없는 부모, 마약을 끊지 못하는 할아버지, 자살 시도 이후 마음의 문을 닫은 삼촌, 비뚤어진 아이들까지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을 종합세트로 갖춘 가족들의 좌충우돌 극복기에 가깝다. 아비게일 브레스린의 사랑스러움과 스티브 카렐의 우울증 환자 연기가 발군이다.



이소은│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영화들
2.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1년 | 스티븐 달드리
“빌리는 춤을 출 때면 모든 게 사라지고 몸에서 전기가 흐른다고 새처럼 날고 있다고 말하는 아이죠. 무언가를 깊게 사랑해야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열정 아닐까요? 가족의 반대, 부상, 가난도 이겨내는 주인공을 보면서, 열정과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느끼게 돼요. 남녀 간의 사랑에도 어려움이 있고 양보와 희생이 필요하며 끊임없는 노력이 따르잖아요. 빌리의 여정을 보면서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분야에서 열정을 발견한 지금의 나에게 어려움과 희생 그리고 노력이 있어야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영화였어요.”



꿈은 전염된다. 춤을 추면서 날게 된 빌리가 꾸는 꿈은 탄광촌의 거친 사람들에게도 전해진다. 희망은 없다고 말했던 이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푼돈이 모이고, 춤을 추는 아들을 부끄러워하던 아버지가 빌리의 손을 잡고 런던으로 떠날 때 이미 한 아이의 작은 꿈은 세상을 감동시킬 준비를 끝냈던 것이다.



이소은│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영화들
3. <왕의 남자> (King And The Clown)
2005년 | 이준익
“로스쿨 유학 생활 3년,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은 똑같아요. “하루하루 해야 할 일만 생각하고 그것만 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어요.”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버거워서 혹은 불확실해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면에서 <왕의 남자>에 나온 광대들의 인생관은 속 시원한 교훈을 제시해 줬어요.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 나게 놀다 가면 그뿐.’ 각자 현재 처한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면 그만이라는 거죠. ‘징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로 용기가 나게 해주는 통쾌한 메시지였죠.”



<왕의 남자>는 2005년 개봉 당시 한국영화 사상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 한 편으로 신인이었던 공길 역의 이준기는 스타가 되었고, 이준익 감독은 천만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8년이 지나도 강렬하게 남는 것은 이 영화가 세운 기록이 아니다. 풍자와 해학으로 둥글려 양반님네들에게 던졌던 광대들의 날카로운 메시지는 1,200만 명에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이소은│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영화들
4. <굿` 바이: Good & Bye> (おくりびと)
2008년 | 타키타 요지로
“블록버스터 같은 클라이맥스 없이도 가슴에 묶은 끈을 놓지 않고 잡아당길 수 있는 스토리에 감탄했고, 백 마디 말보다 눈빛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한 남자 주인공의 연기에 감동을 받았어요. 사람이 죽고 난 후, 깨끗하게 아름답게 품위 있게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타인이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 살아있는 동안에도 우리 스스로 자신을 위해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음의 숭고함을 보여줌으로써 살아있는 순간들을 더 소중히 다루고 감싸 안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구인광고로 시작하게 된 납골. 첼리스트였던 다이고에게는 갑자기 잃어버린 직장을 대신 할 짧은 아르바이트일 뿐이었다. 그러나 죽은 이에게 정성스럽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는 납골 일을 지켜보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누구나 언젠가는 겪게 될 죽음 역시 삶의 일부분임을 보여준다.



이소은│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영화들
5. <타인의 삶> (The Lives Of Others)
2007년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세상을 바꾸는 것이 거창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영화에서 보여줬어요. 정치적인 스토리를 배제하더라도 한 사람의 행동이 타인의 삶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었죠. 어떤 이가 다른 이를 도와주는 단순한 ‘기브 앤 테이크’의 공식이 아닌, 서로를 통해 각자 변화하고 마음이 움직이고 삶이 바뀐다는 것. 사람들이 모여 세상이 이뤄진다면 결국은 한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 되는 것 같아요. 저의 거창하면서도 소박한 꿈은 지금도 이룰 수 있는 것이 되고요. 그래서 용기가 납니다.”



예술가 부부의 삶을 도청하던 비밀경찰은 이들을 감시할수록 점점 더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열정이나 사랑이 아닌 허무와 공허로 채워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의미 있는 것으로 채우기 위해 그가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은 이전의 모든 과오를 덮을 만큼 숭고하다. 이렇게 섬처럼 떨어져 있는 각자의 삶이 만나서 이루는 경이로운 순간을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소은│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영화들


이소은이 데뷔했던 1998년 당시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고등학교 때 가수로 발탁되는 이들도 한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2013년에는 초등학생도 아이돌이 된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십대 참가자가 화제의 중심이 되고, 아이들만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따로 있을 정도다. 다음은 가수를, 스타를 꿈꾸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건네는 이소은의 진심이다. “가수가 평생 이루고 싶은 꿈인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서 제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럽기도 해요. 다만 한 가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도 스스로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연예계라는 곳은 기획사, 매니저, 방송국, 그리고 대중만을 믿고 중심을 잡지 않은 채 살아가기가 너무 쉬운 곳 같아요. 화려하고,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고, 매력이 철철 넘치는 곳이죠. 하지만 자칫 진짜 자신을 발견하고 알아갈 기회를 놓치기도 쉬운 곳 같아요. 어리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흐르는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늘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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