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의 신] #2. 내가 끓인 북어국
[독거의 신] #2. 내가 끓인 북어국
마실 때는 좋았지. 새벽 내내 축구 중계를 보며 들이킨 맥주 덕에 뱃속이 쓰리지만 아내는 엄마처럼 북어국을 끓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도 없다는 게 함정. 사실 혼자 살면서 해장만큼 절차가 귀찮은 작업도 드물다. 먼저 한 숨 더 잘지 말지 결정해야 하고, 눈을 뜨더라도 저 멀리 있는 냉장고까지 걸어가서 생수를 마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뉴를 선정해야 한다. 가장 간편한 건 냉동고에 미리 준비해둔 설*임이지만 배가 고프다면 라면과 국으로 좁혀진다. 둘 다 좋은 선택지지만 이번에 북어국으로 부드럽게 속을 달래는 이유는, 첫째 내 위장은 소중하기 때문이고, 둘째 놀랍게도 이게 라면보다 더 간편하며, 셋째는 좀 뒤에 밝히겠다.

라면도 그렇지만, 인스턴트 식품에 있어 가장 중요한 레시피는 물과 시간이다. 이런 종류의 국들은 미역국이든 북어국이든 다 모두 1인분씩 두 개의 액상스프와 건더기가 있고, 물은 1인분에 300㎖다. 계량은 어렵지 않다.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필스너 우르켈 전용잔에는 정확히 300㎖ 지점에 눈금이 있다. 혹시라도 이 잔이 없다면, 가정용 필수품인 하이네켄 잔에 가득 따르면 거의 300㎖를 맞출 수 있다. 둘 다 없다면 마트에서 잔 추가 행사 상품을 그냥 지나쳤던 본인의 무절제한 소비 행태를 1분간 자아비판하자. 이렇게 300㎖를 맞추면 한 번 두 번, 냄비에 붓는다. 잊지 마라. 두 번이다. 600㎖로 물을 맞추고 제품 안에 들어있는 1인분 두 개를 모두 넣는다. 북어국이 라면보다 간편한 이유는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료를 넣을 필요가 없이 그냥 넣고 끓이면 되기 때문이다. 이때 직사각형으로 고체화된 건더기는 젓가락으로 풀어주면 각 재료의 원형을 유지하기에 좋다. 물이 끓고서 1분 30초만 기다리면 되는데, 계란 하나를 물이 끓기 시작한지 1분 즈음에 투하해 잘 섞으면 더 맛있다. 자, 이렇게 맛있고 간편한 북어국이 만들어졌으면 1인분어치만 그릇에 잘 담자. 그러면 냄비에는 이미 완성된 북어국 1인분이 고스란히 남는다. 이것으로 내일 아침 해장국까지 완성됐다. 왜, 설마 오늘 밤은 안 마실 거였어?
[독거의 신] #2. 내가 끓인 북어국
[독거의 신] #2. 내가 끓인 북어국
오늘의 교훈: 가장 간편한 레토르트는 어제 먹다 남은 국이다.

글, 사진.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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