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도 없다. 풋풋한 연하남도 없다. 하지만 SBS (이하 )는 로맨스 소설 못지않게 여심을 흔든다. 복수만을 꿈꾸는 백홍석(손현주)은 여전히 선한 눈빛을 잃지 않고, 최정우(류승수)는 한 번 시작하면 물불을 안 가린다. 권력으로 사랑까지 쟁취한 강동윤(김상중)과 인생의 철학이 담긴 온갖 비유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서 회장(박근형), 알고보면 여동생에게 약한 오빠 서영욱(전노민)도 그렇다. 속 깊은 배려와 깨알 같은 유머를 담당하는 박용식(조재윤)도 물론 빠질 수 없다. 이제 오늘만 사는 원빈이 아니라도 좋다. 아내에게 시달리고, 자식과 세대 차이를 겪는 쓸쓸한 현실의 가장을 벗어나 저마다의 매력으로 아저씨 칭호를 탈환한 ‘진짜 아저씨’들을 사심 가득 담아 소개한다. 땀 냄새 가득한 드라마를 로맨스 소설로 바꿔버린 아저씨들, 사…사…아니 좋아합니다.

내 마음을 앗아간 <추적자>의 절대 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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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홍석
“난 영원히 네 편이야”
하늘 위에 큰 원을 그려본다. 그 원을 빼고 남는 하늘을 모두 감쌀 만큼, 그는 푸근하고 넉넉한 남자였다. 가진 것 없어도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를 쓸어주고, 두툼한 손으로 고기를 싸줄 때 까만 눈동자는 빛나곤 했다. 하지만 복수에 잠겨 버린 이 남자, 고요하고 까만 자신의 눈동자를 잃었다. 간신히 절규를 짓누른 듯한 눈가에는 항상 습기가 어리고 오늘만 사는 듯 위태로울 뿐이다. 멍해지는 눈빛, 까칠해진 수염도 끝없이 혼자 걸어가는 이 바보를 멈추진 못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네 편이다, 손을 내밀며 한사코 다른 사람을 챙기는 남자이기에, 쉽게 곁을 떠날 수 없다. 이제 그가 기댈 수 있는 지팡이가 되고 싶다. 언제나 다치고 땀 흘리고 한 곳만 보고 사는 이 남자만을 위한 희생 번트 선수가 되려 한다. 파란 하늘도 그의 앞날을 축복하는 것 같다. 가끔 먹구름도 밀려오겠지? 하지만 두렵지 않다. 이제, 그와 함께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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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윤
“난 널 필요해서 사랑하는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그에겐, 쿨워터 향이 난다. 가느다란 눈, 다부진 입과 듬직한 턱 선을 가진 그 남자. 한 길만을 걸어온 이 남자는 저 넓은 태평양과 같아 좀처럼 속을 헤아릴 수 없다. 수트를 잠그는 손길에서 전장에 나가는 검투사의 외로움을, 조금 깊게 패인 눈가의 주름에서 밑바닥부터 하나씩 올라온 역경을 짐작할 뿐이다. 끝을 모르고 달리는 이 남자에겐 대한민국 최고 재벌 사위의 자리도 한낱 껍데기에 불과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사랑조차 권력에 의해 선택하는 그에게서 짙은 블루 빛 애상이 느껴진다. 자신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어느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그가 가증스러운 인간이 아닌 피 끓는 남자로 느껴진다면, 아마 천벌을 받겠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한 여자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이, 그의 어깨가 고독해 보인다. 그는 절대 먼저 오지 않을 사람이란 걸 안다. 그래서 그가 어렵게 내민 손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와 함께 끝까지 가고 싶다. 그것이 돌아올 수 없는 지옥의 레이스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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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회장
“니는 가만히 있으래이. 되고 안 되고는 내가 결정할꾸마”
수수께끼, 알 수 없는 미로를 헤매는 듯한 느낌. 시간이 흘러도 그와의 대화는 여전히 낯설다. 빈틈없는 말, 단호한 목소리가 한동안 말을 잃게 한다. 애초에 돈과 명예, 권력만 가졌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왜 타들어갈 듯한 강한 눈빛이 젊음과 함께 사라졌을 거라고 지레짐작했을까. 그렇게 방심한 사이, 그가 메운 지혜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깊고 깊은, 그 스모키 바이올렛의 늪에서 헤어 나오려고 처음엔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늪은 강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연륜의 향기는 짙어졌으며, 자존심은 정신을 잃은 불쌍한 여자가 꽂은 꽃처럼 나뒹굴었다. 이제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기꺼이 그가 놓는 주판의 나무 알이 되려 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서 팔순이 되도록 굴리는 주판인데, 감옥으로, 해외로 가는 형제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주판인데 그 수명이 오죽 길까.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의 모든 결정을 따라야지. 오늘 밤에도 추어탕 내음이 코끝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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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우
“니가 싫어도 나랑 끝까지 간다. 어이, 고개 끄덕이지?”
흰 와이셔츠를 접어 올릴 때, 그의 까만 눈동자는 유난히 빛난다. 심연을 닮은 검사의 그 눈을 애써 크게 뜨지 않아도 취조실 공기는 핏빛으로 물들어 버린다. 그때부터 시작이다. 큰소리치지 않고 주먹을 날리는 일 없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거침없이 타오르는 활화산처럼 몰입하는 이 남자를,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모르겠지. 활화산이 스스로를 뜨겁게 태울수록 외로워 보인다는 것을. 조용히 바람처럼 흘러가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건 다름 아닌 세상이었다. 자랑스러운 법관이었지만 한순간에 쓰러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차가운 의사 어머니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외로운 검사의 길을 가야 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무심한 듯 던지는 그의 명령이 짧을수록, 입가에 맴도는 미소가 차가울수록 가슴이 점점 아려온다. 그러니 어리광부리지 말라고, 위로해줄 수 없다고 몰아세워도 상관없다. 언제나 짓밟혀도 다시 시작하자는 그의 곁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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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욱
“걱정 많이 했지? 이제 오빠만 믿어”
그가 웃으면 온 세상이 밝아진다. 아이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남자. 이 남자는 바람을 사랑했다. 사람을 경영하는 것보다 낭만을 노래하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쉽게 웃을 수 없다. 뼛속까지 잡종이라 여겼던 푸들에게 물리고 매일 아버지가 비우는 그릇을 치우며 눈물을 흘릴 뿐이다. 그래도 그에게 중요한 건 좋은 오빠라는 자리다. 가만히 있어도 부와 권력이 제 손안으로 들어옴에도 끊임없이 불어오는 변수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게 비단 그의 무능력 때문일까. 아내도 잃고, 명예도 잃은 이 남자에게 이제 서릿발 같은 아버지 밑에서 여동생을 지키는 것만 남았기에 이 남자의 사투를 생각하면 속이 탄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해도 제 동생들을 힘들게 한다면 가만있지 못하는 이 남자의 순정을 누가 알아줄까. 노력했지만 항상 부족했던 이 오빠, 이제 조금씩 남자라는 이름의 날갯짓을 시작하려 한다. 긴 터널 끝에 웃고 있는 그가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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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식
“지나간 것은 잊으시요잉. 이제 찐빵은 나하고만 먹으면 되니께”
처음엔 별 볼 일 없는 양아치라 생각했다. 그냥 미운 정이 드는 것뿐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착각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항상 웃고 있었지만 그의 가슴 한구석엔 세상을 대한 설움이,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아로새겨 있었다. 빛나는 재치, 뇌리를 스치는 명석함도 수줍은 듯 숨어 있다. 늘 시끄럽다고 구박만 하고, 이름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사람들은 알까? 그의 변치 않는 웃음이 과거의 모든 상처를 덮기 위한 방패막이임을. 이 남자의 순정이 에메랄드 보석보다 빛난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 방황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스스로 일군 이 남자의 진심이 마음속에 알알이 박히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없으면 웃을 수도 없고 수북한 찐빵도 아무 소용없다. 과거는 상관없다고, 해맑게 웃어주는 그가 좋다. 박.용.식. 이름 석 자, 마음껏 불러 줄 테니 와라! 지금!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편집, 디자인.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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