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를 먹어요.” 언제나 특유의 활기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윌 스미스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씨익 웃으며 “집에 있는 아이들은 절대 따라하면 안됩니다”라고 덧붙여 농담을 완성했다. 의 월드 프리미어를 위해 내한한 베리 소넨필드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기자회견은 시종일관 유쾌했고, 떠들썩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이끈 것은 단연코 윌 스미스였다. 단상 앞으로 등장해 사진을 찍는 순간부터 농구선수처럼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고, 대답에는 언제나 유머가 곁들여 졌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질문에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태도를 보였으며, “를 개봉할 당시 한국을 방문 했을 때는 월드컵이 한창이었다”던지 “(외계인으로 생각되는 사람은)원더걸스”라고 대답할 정도로 방문한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을 준비한 흔적이 엿보였다. 한 시간 남짓, 그는 한 공간에 모인 모든 사람을 웃게 만들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만족감을 줬다. 심지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말이다.

덴젤 워싱턴도, 제이미 폭스도 가지지 못한 윌 스미스의 것
윌 스미스│이토록 유쾌한 클래식
윌 스미스│이토록 유쾌한 클래식
윌 스미스의 이러한 모습이 놀라운 것은, 그것이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늘 영화를 통해 보아 오던 그의 캐릭터와 지극히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1995년 로 인기를 얻은 후 윌 스미스는 한 번도 악당으로 기억된 적이 없다. 특유의 장난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나 에서도 그의 건들건들한 태도는 불량스러움이 아닌 에너지로 표현된다. 웃음기를 거둔 , , 에서는 개인적인 욕망이 아닌 사회 질서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로 등장했으며 심지어 이나 에서는 일종의 구루와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점잖지 않지만 적당히 보수적이고, 활달하지만 엇나가는 법이 없다. 덴젤 워싱턴이 진중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악역으로 폭을 넓히고, 제이미 폭스가 아무리 멋진 연기를 보여줘도 바람둥이의 인상을 벗지 못하는 할리우드에서 윌 스미스는 가장 건강하고 가장 건전하며 가장 믿음직스러운 흑인배우인 것이다.

그러나 한결같음에도 불구하고 윌 스미스를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10년이 넘도록 매년 작품을 발표하면서 윌 스미스는 언제나 윌 스미스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실존 인물을 연기한 에서조차 그는 배우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지워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장 확실하게 흥행을 보장하는 배우 중 하나이며, 이것은 다만 배우의 매력이나 성실함만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운 위치다. 요컨대, 윌 스미스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대중을 이해할 줄 아는 배우다. 의 성공 이후 그는 의 캐스팅을 거절했다. 대신 그가 선택한 영화들은 줄줄이 흥행에 실패 했지만, 윌 스미스의 고유한 이미지는 훼손되지 않았으며 이를 발판으로 과 은 성공적인 후속작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힘과 그것이 발휘 될 수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배우이며, 이것은 “의 시나리오는 윌 스미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는 베리 소넨필드 감독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는 바다. 시리즈는 더 화려한 것을 보여주는 대신 캐릭터의 근원을 탐구하며, 윌 스미스는 제작에 몰두하는 동안 만들어진 배우로서의 공백을 가장 단련된 특기로 뛰어넘어 버린다. 시리즈의 컴백이자 배우의 컴백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대중의 기억을 일깨우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웃게 하리라
윌 스미스│이토록 유쾌한 클래식
윌 스미스│이토록 유쾌한 클래식
그래서 다시 주목할 사실은 지금 윌 스미스가 선택한 영화가 다름 아닌 이라는 점이다. 큰 흥행 기록을 남긴 시리즈이기도 하지만, 의 요원 J는 그동안 윌 스미스가 보여준 인물의 종합이자 핵심이다. 동료를 구하고, 지구를 지키지만 뉴럴라이저 덕분에 세상은 그의 활약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입은 수트는 말 그대로 검은색 수트일 뿐, 요원 J에게는 다른 영웅이 가진 초능력이나 어마어마한 배경이 없다. MIB 요원이 되기 위해서 J가 갖추어야 했던 것은 관찰력, 체력, 근성과 같이 일반적인 능력일 뿐이었으며, 이것은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윌 스미스가 보여준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는 이러한 윌 스미스의 특징을 유일한 생존자라는 극적인 상황에 대입한 덕분에 비장하되 처절하지 않은 분위기를 조율해 내는데 성공 한 작품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더라도 미간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것이 윌 스미스가 보장하는 감정의 마지노선이며, 이것은 윌 스미스의 영화가 예술, 구도, 탐구가 아닌 오락으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기묘했던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었다. 유일하게 윌 스미스에게 초능력을 부여했던 이 영화는 오히려 초능력 때문에 방황하고 불행한 인물을 그렸다. 필요 이상의 능력을 가진 주인공은 이것을 올바로 사용할 줄 몰랐으며, 세상은 그를 밀어냈고, 결국 그는 사랑을 얻지 못한다. 직접 영화의 제작에 참여한 윌 스미스에게 은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영역 밖의 일에 대한 확인이었던 셈이다. 공격적인 랩을 구사하지 않아도 그래미를 수상하는 뮤지션, 스캔들 없이 가정적인 모습만 보여도 인기를 유지하는 스타, 무리하게 연기 변신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롱런하는 배우에게 초능력은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질 필요가 없는 힘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초능력자들이 스크린에서 환생할 때, 윌 스미스는 다시 사람의 힘으로 인간의 일을 이야기 한다. 그의 영화에서 우주는 결국 인간사와 같은 원리로 움직이며, 외계인 역시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친구가 될 수 있다. 힘차게, 그는 지금 할리우드의 트렌드를 역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윌 스미스는 대중을 웃게 하고 만족시킬 것이다. 이제 그는 우리가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일종의 클래식이니까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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