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랑 조권, 누가 더 뛰어난 육상 선수야?
민호랑 조권, 누가 더 뛰어난 육상 선수야?
이번 연휴에 MBC 하는 거 봤어? 난 보다가 너무 좋아서 월요일이 다가온다는 걸 잊을 정도였다니까.
봤지. 솔직히 말하면 별다른 기대 없이 그냥 봤는데 나도 너만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재밌어서 많이 놀랐어. 사실 명절에 아이돌 운동회 하는 건 좀 빤하잖아.

그치. 그런데 의외로 빤하지 않지 않아?
응, 그래서 놀랐어. 예능 욕심 안 내고 한창 육체적 능력이 물이 오른 십대 이십대들이 오직 스포츠로만 승부를 내려했다는 게 참 담백하고 좋더라. 편집에서 그런 부분을 잘 덜어낸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는데 기본적으로는 육상선수권대회 콘셉트로 나왔다는 것에서 이미 절반 이상 성공했다고 봐.

그건 또 왜?
이번 대회 2부 처음에 나온 표어 기억나?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힘차게. 올림픽 표어인 이 말은 사실 그 어떤 종목보다 육상에 가장 어울린다고 할 수 있어. 그만큼 육상은 순수한 힘 대 힘, 스피드 대 스피드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지. 구기 종목은 구기 종목 나름의 박진감과 재미가 있지만 개인 대 개인으로서 어떤 우연의 효과도 없이 운동 능력을 겨루기에 육상만한 게 없지.

그래서 그렇게 프로그램이 깔끔했던 건가? 그래서 네가 보기에 이번 육상대회에서 가장 뛰어난 운동 능력을 보여준 건 누구 같아?
그거야 종목 별로 다르겠지. 다만 개인적으로 육상의 꽃은 100m 달리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종목에서 정말 압도적이었던 조권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 이번 대회가 화제가 된 것도 그 많은 아이돌들이 예선까지 거쳐 가며 이 악물고 달리는 모습 때문이지 않을까?
민호랑 조권, 누가 더 뛰어난 육상 선수야?
민호랑 조권, 누가 더 뛰어난 육상 선수야?
그런 면에서 민호가 우승한 110m 허들도 있잖아.
물론 그렇지. 나 역시 100m 달리기와 110m 허들이 가장 재밌었어. 그런 면에서 민호 역시 MVP 후보로 손색이 없겠지. 전부터 운동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장애물 경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줄 줄은 몰랐어. 그래서 더더욱 조권과 민호의 100m 대결을 보고 싶었던 거고.

민호는 아예 100m에 나오질 않았지?
응. 대신 400m 계주에서 조권과 민호 둘 다 마지막 주자여서 거의 100m 맞대결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여기서 조권이 완승했잖아. 나는 처음부터 민호를 100m 우승 후보로 생각했고, 민호가 그에 준하는 능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 날 조권이 보여준 단거리 능력은 정말 ‘넘사벽’이더라.

그런데 조권은 왜 110m 허들에서는 예선 탈락했을까?
바로 그 부분에 있어서 조권 달리기의 비법이 있는 거지.

비법?
응. 정확히 말하면 조권은 100m를 잘 뛰는 바로 그 능력 때문에 허들에서는 저조한 성적을 보여준 거야. 기본적으로 조권은 굉장히 전형적인 숏 피치 타입의 스프린터거든.

알았으니까 지구 언어로 다시 얘기해볼래?
우리가 흔히 달리기를 잘하는 것에 대해 ‘빨리’ 뛴다고만 하지만 이건 아주 정확한 표현이 아니야. 빨리, 또 멀리 뛰어야지. 생각해봐. 같은 100m를 뛸 때 남보다 2배 더 빨리 들어오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남이 한 번 발을 뻗을 때 두 번 뻗거나, 남이 한 번 발을 뻗는 것보다 두 배 더 길게 뻗거나, 이 두 가지 방법뿐이야. 즉 발을 내딛는 속도를 높이거나, 보폭을 더 길게 하거나. 이 때 발을 내딛는 주기를 피치라고 하고, 보폭을 스트라이드라고 하는데 단거리 달리기는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최상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보통 보폭을 넓히면 발을 내딛는 속도가 줄어들고, 발을 빨리 내딛으면 보폭이 줄어드니까.

그런데 조권은 뭐가 어쨌다는 건데? 숏?
그 날 방송에서 조권이 뛰는 모습을 마이클 존슨이라는 육상선수와 비교했던 거 기억나? 마이클 존슨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200m 세계 신기록을 세웠던 선수인데 엄청난 실력도 실력이지만 특유의 달리기 자세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됐었어. 보통 단거리 달리기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다리 긴 흑인 선수가 보폭을 최대한 넓히면서 앞으로 튀어나가듯 몸을 숙이며 뛰는 거였는데 다리가 짧은 마이클 존슨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보폭은 짧게, 하지만 정말 엄청난 속도로 발을 내딛는 주법을 보여줬어. 나중에 스타카토 주법이라고 불리게 된 주법인데 아까 말한 달리기의 방법 중 발을 내딛는 속도만을 극대화한 거라 할 수 있지. 이걸 숏 피치 타입이라고도 하는데 민호나 택연에 비해 키가 작은 조권은 자신에게 특화된 숏 피치 방식으로 경쟁자들을 따돌리더라고.
민호랑 조권, 누가 더 뛰어난 육상 선수야?
민호랑 조권, 누가 더 뛰어난 육상 선수야?
그런데 그게 허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렇지. 조권은 발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가속하는 타입인데 허들 경기에서는 가속을 하기도 전에 허들을 넓은 보폭으로 넘어야하거든. 그러니까 달리기의 리듬이 계속 끊기고, 가속 역시 되지 않지. 그런 면에서 허들과 허들 사이를 넓은 보폭으로 뛰면서 거의 그 리듬 그대로 허들을 넘을 수 있는 타입이 유리한데 민호 같은 경우는 그걸 아주 잘해냈지. 물론 이것 역시 말처럼 쉬운 건 아니야. 허들을 넘고 착지할 때의 충격은 생각보다 큰 편인데 그 때 흔들리지 않고 스피드와 보폭을 유지한다는 건 굉장한 능력인 거지. 전에 구하라의 달리기 실력에 대해 말하면서 밸런스 잡힌 자세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었는데 허들을 넘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민호나 엄청난 속도로 가속이 붙은 상태에서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는 조권 모두 뛰어난 밸런스의 소유자라 할 수 있을 거야.

대체 그 밸런스라는 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글쎄? 따로 좋은 코치에게 수업을 받은 게 아니라면 타고난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 다만 확실한 건 튼튼한 다리 근력이 뒷받침되었기에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100m랑 110m 모두에서 두 번이나 넘어졌던 씨야의 이보람 기억나?

아, 일등 하다가 넘어졌던?
이보람 같은 경우가 밸런스와 하체 근력이 부족한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지. 허들에서는 어땠는지 몰라도 100m 예선에서 넘어진 건 다리 근력 부족 때문이 아닌가 싶어.

아니 그렇게 잘 뛰는데 무슨 근력 부족이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뛰는 속도를 제어할 만큼의 근력이 부족하다는 거지. 몸이 가속됐을 때 그 속도를 유지해주는 동시에 앞으로 쏠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줄 근력이 없다면 밸런스가 흐트러지거든. 이보람 본인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단순히 운이 없었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건 그래서야.

그런 만큼 조권이랑 민호가 정말 잘하는 거구나. 이런 얘길 들으니 더 좋아지는데?
나?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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