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MBC ()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통해 이경규는 데뷔 10년 만에 화려한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 20년 동안 그는 언제나 톱5 안에 드는 코미디언이자 MC였고, 다양한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과연 무엇을 통해 그는 2010년까지도 최고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걸까. 그의 전성기를 연 ‘몰래카메라’의 김영희 PD부터 가장 최근에 시작한 KBS 의 김광수 PD까지 이경규와 현장에서 함께 했던 PD들에게 답을 구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MBC ‘몰래카메라’ ‘이경규가 간다’ 김영희 PD
처음 ‘몰래카메라’에 캐스팅하기 이전부터 난 이경규가 코미디언 가운데 가장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의 생활이나 방송 그 자체가 너무 코미디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능력은 하늘이 줘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전체 상황을 아우르고 곳곳에서 재미를 뽑아내는 능력은 연습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몰래카메라’, ‘이경규가 간다’는 이경규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능력을 과신한 당시의 이경규는 너무 자신감에 차있었다. 선배들한테는 말 안 듣는 후배였고, 후배들한테는 무서운 독불장군 같은 선배였다. 그런데 양심냉장고를 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장 돈 3000원 없어서 벌벌 떨면서도, 콩 한 쪽도 나눠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거지. 자기가 잘난 척하고 살았구나, 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조금씩 성숙해졌고, 겸손을 배우면서 코미디에 대한 철학도 바뀌어 갔다. 거기에 내가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60세 때 함께 프로그램을 하자고 약속했는데, 지금부터 위기관리 잘해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 (웃음)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MBC ‘상상원정대’ 여운혁 PD
‘상상원정대’는 초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 방향을 못 잡고 시행착오만 하다 끝냈다. (웃음) 때 교수로 출연했고, 때는 ‘위기의 이경규’로 놀림 받던 시기에 함께했다. 이경규의 장점이라면 슬럼프를 잘 극복하는 요령을 안다는 것이다. 소나기가 오면 오는 그대로 맞는 사람이다. 연예인의 인기가 늘 지속될 수 없는 건 당연한데도, 그게 막상 자기 일이 되면 못 받아들인다. 슬럼프 때 무리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는 건 그가 가진 장점이다. 딴 짓 안하고 원래의 기초로 돌아가는 정공법으로 기다린다. 그러면 분명 좋은 작품이 나온다.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그걸 못 기다린다. 처음 보면 엄청 뻣뻣하고 거칠고, 직선적인 고집쟁이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이 지금까지 생존해 온 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유연하게 자신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자기관리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좋은 케이스다. ‘무릎 팍 도사’에 섭외했던 것도 바로 그런 점들에서 보고 배울 것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SBS 박상혁 PD
당시 이경규는 제작진과의 아이템 회의나 구성 회의에 언제나 참여했다. 아이디어도 많고 무엇보다 촬영과정에서 벌어지는 변수나 돌발 상황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스타일이다. PD 입장에서는 힘든 촬영이라도 든든했다. 촬영 중간에도 항상 다음 상황을 준비하고 생각했고, 프로그램의 선장의 역할을 해줬다. 때로는 카리스마 있게 행동하지만 정이 많아 제작진 하나하나 챙기는 다정한 성격이었다. 이경규는 코미디에서 버라이어티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최고의 MC로 자리 잡았다. 세대를 아우르는 역할로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이렇게 나이와 상관없이 온 몸을 던지는 연예인과 함께 예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PD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경규와 통화하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항상 지금까지보다 더 높은 곳으로 도전하려는 힘을 갖고 있는 이경규가 앞으로도 항상 한국 예능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질 것이라고 믿는 이유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tvN 이근찬 PD
토크쇼 MC로서 이경규가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호기심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독특한 일반인들을 초대하는데 그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가령 게임 중독에 빠진 사람이 출연했을 때, 젊은 나이에 일하지 않고 게임만 하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고 싶어 한다. 3년 동안 방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던 히키코모리 출연자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문자도 가끔 주고받는다. 물론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출연자에게 야단을 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결국에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 것이 출연자에 대한 마지막 조언에서 드러난다. 간혹 지인 중에는 이경규의 마지막 코멘트에 대해 작가가 참 잘 써주는 것 같다고 하는데, 100% 이경규의 애드리브다. 그건 시야가 넓어서인 것 같다. 사실 대본을 김성주나 김구라에 비해 꼼꼼하게 보는 편은 아닌데 전체 큰 흐름을 볼 줄 안다. 그래서 굳이 우리가 어떤 코멘트나 질문을 따로 부탁하지 않는다. 얼핏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본인이 가끔 농담처럼 밝히던 ‘날 방송’이 절대 아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KBS ‘남자의 자격’ 신원호 PD
‘남자의 자격’ 초기에 이외수 선생님을 비롯한 멘토를 넣었던 건, 이경규라는 1인자의 권위를 어느 정도 내려놓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이끈다기보다는 빅 플레이어로서 큰 형님 역할을 해주기 바란 거다. 그런데 같이 작업을 하니 이미 본인 스스로 리얼 버라이어티에 뛰어들면서 어느 정도 권위를 내려놓고 과거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보여줄 마음가짐이 있었다. 사실 선수들끼리 하는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이 이러이러한 정도로 스스로를 열어달라고 요구하긴 어렵다. 그런데 ‘남자의 자격’의 이경규는 ‘저렇게까지 보여주다니’ 싶은 게 있다. 과거에 볼 수 없던 소위 사랑스럽거나 귀여운 모습도 그렇고 미션 수행을 위해 체력적 한계에 도전하는 것도 그렇다. 사실 우리는 항상 미션에 대해 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 걸 드러내라고 말한다. 절대 체력적 한계를 넘어서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그런 면에서 이경규는… 말을 듣지 않는다. (웃음) 마라톤도 그렇게 끝까지 뛸 줄은 정말 몰랐다. 웨이크보드 도전도 그렇다. 나도 사전 준비를 하며 직접 타봤는데 한 4번 타니까 팔에 힘이 쪽 빠지더라. 그런데 이경규는 물 위에서 일어서기 위해 무려 11번을 도전했다. 그것도 편집되어서 그렇지 사실은 2번 더 시도했었다. 됐다고 그만 해도 된다고 말려도 끝까지 하더라. 큰 형님이 그렇게 나서니 다른 멤버들도 미션마다 더 남자의 오기를 부리게 되는 면이 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이경규 연구│“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KBS 김광수 PD
이경규라는 예능인만이 잘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가령 에서 같이 작업했던 유재석의 경우에는 뭘 해도 다 잘한다. 그런데 이경규는 이경규가 아니면 안 되는 뭔가가 있다. 우리 프로그램의 경우 말하자면 아기가 나오길 기다리는 건데,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느껴지는 설렘을 극대화시켜주는 능력이 있다. 포맷은 다르지만 과거 MBC ‘이경규가 간다’에서도 숨어서 횡단보도 정지선 지키는 운전자를 기다리지 않았나. 그런 기다림에 있어서는 최고인 것 같다. 이렇게 본인이 잘할 수 있는 포맷에 새 프로그램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질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스스로도 안 하던 걸 해야 신이 난다고 하더라. 그런 게 맞아 떨어지면 정말 열정적으로 한다. 사실 그 정도 수준의 MC면 안 해본 스타일의 프로그램을 좀 꺼릴 수 있다. 그런데 톱5급 MC 중에서는 그런 걸 가장 재지 않는 타입이다. 사실 과거 방송에서 스스로 녹화 길게 가는 거 싫어하고 까칠하게 굴었다고 밝히지 않았나. 그런데 직접 작업해 보니 그런 게 없다. 본인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더라. 이제는 PD에게 지기로, PD 말을 잘 듣기로 했다고.

글. 위근우 eight@
글. 원성윤 twel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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