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심형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티라노의 발톱>부터 <용가리>를 거쳐 <디 워>, <라스트 갓파더>에 이르는 과정 안에서 한국 특수효과 인프라를 이끈 장인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쥬라기 공원>, <반지의 제왕> 등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도전하는 파이오니어로서 받든다. 반대로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를 애국심에 호소해 반사이익을 얻은 선동가 혹은 자기만족에 빠진 아마추어로 받아들인다. 심형래에 대해서라면, ‘말의 홍수’라는 빤한 관용구는 가장 완벽한 수사가 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말이 많다는 것과 그에 대한 이해가 풍성해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날카로운 비판과 배려 있는 옹호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는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에서 너무 쉽게 소비된다. <디 워>가 스토리 구성에 무척 취약한 작품인 건 사실이지만, 그를 특수효과에만 경도되어 스토리에는 무관심한 연출자로 평가하는 건 조금 성급하다. 이것은 그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실수다. 상당한 수준의 CG를 구현해내고, <라스트 갓파더>에서 하비 케이틀을 캐스팅한 건 대단한 일이지만, 이를 할리우드를 정복해가는 진군가로만 받아들이는 것도 어딘가 미심쩍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 아닌, 심형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말과 욕망이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

이번 ‘테마 영화 추천’에서 심형래가 추천하는 영화들은 그래서 흥미롭다. “생각이 다 다른 사람들의 최대 공약수를 찾아서 모든 사람들이 재밌어 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 말하는 이 파란만장한 영화 연출자는 고전 중의 고전을 비롯해 관객의 보편적 취향을 만족시키는 여러 작품들을 추천했다. 이것으로 심형래에 대한 호불호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를 오직 <쥬라기 공원>과 <트랜스포머>의 꽁무니를 쫓거나 대결하는 사람으로만 보던 사고의 틀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그것이 그에 대한 유일한 진실은 아니더라도, 진실들에 이르는 한 이정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1.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
1952년 | 진 켈리

“<라스트 갓파더>에서 영구가 아버지 라이벌의 딸 낸시(조슬린 도나휴)와 거리에서 춤을 추는 신이 있어요. 상상 장면인데, 뮤지컬 영화인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그 느낌을 가져온 게 있죠. 조금은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을 통해 보는 사람도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잖아요. <라스트 갓파더>를 ‘Feel Good Movie’라고 하는데, 이런 요소가 중요한 같아요.”

영화 전편을 보지 않은 사람도 제목 그대로 빗속에서 영화의 동명 주제곡인 ‘Singin` In The Rain’을 부르는 진 켈리의 모습은 몇 번씩 봤을 것이다.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대에 벌어진 혼선을 다룬 이 영화가, 유성영화만의 특징적인 요소, 즉 노래와 음악의 힘을 극대화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 작품 속의 노래는 단순히 대사를 담는 그릇이 아닌, 그 스스로 영화적 힘과 의미를 갖는다.



2.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
1953년 | 윌리엄 와일러

“옛날 영화들을 보면 참 반성을 많이 하게 되요. 잔잔하지만 진짜 이펙트가 강한 영화들이 많거든요. 오히려 요즘 영화들보다 더 세련되었고. 동시대에 이런 영화들이 나와 주면 어떨까 싶어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보여주는 로맨스는 지금 봐도 가슴이 설레잖아요. 그러면서 자극적이지도 않고. 둘 다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참 잘 만들었다고밖에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명작들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흑백 화면 속에서 순진한 표정으로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의 장난에 속아 넘어가는 앤 공주를 연기할 때만큼 그녀가 빛났던 적은 없을 것이다. 왕실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도망친 공주가 로마 거리 곳곳에서 벌이는 해프닝은 귀엽고, 그런 공주와 동행하며 특종을 노리는 조 역시 매력적이다. 연애 이전의 설렘에 대한 가장 뛰어난 고전.



3.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1965년 | 로버트 와이즈

“<사운드 오브 뮤직>도 말이 필요 없는 고전 중의 고전이죠. 그 유명한 ‘도레미송’을 비롯해서 여주인공과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는 모습은 언제 봐도 흐뭇해요. 젊은 수녀와 아이 많은 홀아비의 사랑을 다루지만 그게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정말 밝고 순수하게 그려지는 것도 기분 좋고요. 이렇게 옛날 영화를 요즘도 재밌게 볼 수 있는 건, 그만큼 누가 봐도 재밌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동명의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앞서 소개한 <사랑은 비를 타고>처럼 고전이라 불릴만한 작품들은 영화 전체를 환기시키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는데 <사운드 오브 뮤직> 역시 그렇다. 넓은 초원에서 주인공 마리아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 속 풍광과 영상의 분위기, 그리고 스토리가 어떻게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하는지 보여준다.



4. <마음이…> (Heart Is)
2006년 | 박은형, 오달균

“<라스트 갓파더>를 보면 영구가 했던 바보짓들이 의도치 않게 지역을 발전시키잖아요. 그걸 보며 미소를 짓게 되는데, 그 미소 역시 웃음의 한 종류라고 봐요. 꼭 폭소가 아니더라도. <마음이…>도 그래요. 이 영화를 코미디로 분류할 수는 없겠죠. 이펙트가 강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예쁜 이야기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도 웃음을 주는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소년보다는 아이에 가까웠던 시절의 유승호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 TV 동물농장 > 같은 프로그램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동물과 사람 사이의 우정만큼 빤하면서도 보편적으로 가슴을 울리는 소재는 드물다. 집에서 기르던 마음이 때문에 동생을 잃게 되었다고 믿는 찬이(유승호)와 그런 찬이를 찾아 떠나는 마음이의 화해는 조금 작위적인 구성 안에서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힘을 발휘한다. 아무 영화나 속편이 나오는 게 아니다.



5. <슈퍼배드> (Despicable Me)
2010년 | 피에르 꼬팽, 크리스 리노드

“개인적으로 재밌으면서도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영화를 대표하는 건 역시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것 같아요. 사실 <슈퍼배드>는 디즈니 영화가 아니지만, 그런 따뜻한 애니메이션의 좋은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고 봐요. 보면서 진짜 많이 웃었어요. 달을 훔치려는 상상력도 기발하고. 그러면서도 세계 최고의 악당을 꿈꾼다는 주인공이 고아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모습은 참 사랑스럽잖아요. 가족 영화란 이런 거죠.”

히어로와 악당의 관계를 비트는 건, <슈렉> 이후 <몬스터 주식회사>를 거쳐 최근의 <메가마인드>까지 21세기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한 경향이다. 그 중 세계 최고 악당을 꿈꾸는 주인공이 결국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슈퍼배드>가 눈에 띄게 잘 만든 작품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 그루의 부하들인 미니엄과 그가 맡게 된 세 소녀, 특히 셋째 아그네스는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할 정도로 귀엽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지난 1월 개봉했던 <라스트 갓파더>가 심형래의 추천 영화들만큼 잘 만든 영화는 아니었다. 영구 특유의 슬랩스틱은 웃겼지만 스토리와 상관없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고, 마피아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을 고아원에 몽땅 기부하는 결말은 착하되, 별다른 맥락이 없었기에 감동적이진 않았다. 좋은 의도가 작품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라스트 갓파더>는 <디 워>에 비해 진일보한 구성을 보여주었고, 영구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토니(마이클 리스폴리)가 그에게 우정을 느끼는 장면은 제법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대단한 성과는 아닐지라도 어쨌든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나름대로는 베스트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는 그의 의지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호들갑을 떨 것도 폄하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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