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사람. 지극히 평범한 두 단어가 만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애인은 아니지만 성별이 여자인 친구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고민했던 수많은 남자들에게 ‘여자사람’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신조어였다. 이 단어는 웹툰 <와라! 편의점>의 ‘45화 짝사랑 편’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누나에게 고백하려던 연하남이 우연히 만난 이성 친구를 ‘여자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순식간에 유행어로 퍼져 나갔다. 가려운 등을 긁어주듯 편의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를 소소한 웃음으로 그려내던 <와라! 편의점>이 ‘빵’ 터지는 순간이었다.

“웹툰 작업을 하면서 일본 노래를 종종 듣는데, 여자 사람이라는 가사가 나오더라고요. 재밌는 단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어요.” 2년 넘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지강민 작가는 지난 2008년 “제가 가장 잘 알고 쉽게 얘기할 수 있는 편의점”을 주제로 한 <와라! 편의점>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모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300개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끄집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왜 담배 한 갑을 사면서 카드로 계산하는 손님을 좋아하지 않는지는 단순히 아르바이트 경험만으로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점장님께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은 반드시 메모해뒀어요. 한 번은 아빠가 담배를 사러 왔는데, 딸이 과자를 사 달라고 조르는 거예요. 그런데 300원이 모자라서 담배를 포기하고 딸 과자를 사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더라고요. 그게 ‘7화 아빠와 딸’ 편이에요.”

‘이런 알바생, 이런 손님 꼭 있다’는 평범한 에피소드로 시작해 유통기한 전에 팔려야 하는 우유들의 상황극까지 확대된 <와라! 편의점>은 애니메이션, 단행본, 각종 편의점 상품 등을 통해 웹툰의 인기를 증명했다. 하지만 “중학교 3년 내내 만화 <윙크> 잡지를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샀던” 그가 만화가로 데뷔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래전부터 소년 혹은 명랑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군대 다녀와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망설이다가 일찍 데뷔하지 못했어요. 그게 아직도 후회가 돼요.” 그렇게 서른 살 늦은 나이에 꿈을 이룬 그에게 ‘나를 응원해 주는 음악’들에 대해 물었다.




1. Michael Jackson의 < Bad >
“마이클 잭슨은 가장 성공한 팝스타이자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라고 말한 그는 첫 번째 추천곡으로 < Bad > 앨범의 ‘Smooth Criminal’을 선택했다. “멜로디나 가사가 중독성이 있어서 작업할 때 흥이 많이 나는 음악이에요. 이 곡을 처음 접하자마자 너무 좋아서 밤새 들었거든요. 듣다 보니 해가 뜨더라고요.(웃음)” 마이클 잭슨의 < Bad >가 얼마나 잘 만든 댄스 앨범인지 더 부연할 필요가 있을까. 그의 말처럼 한 번 들으면 계속 듣게 만드는 그 힘은 바로 빠른 속도의 비트에서 나온다. 게다가 다리를 고정시킨 채 몸만 앞으로 기우는 린 댄스는 마이클잭슨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문워커>에서도 화제가 된 장면이었으니, 시각과 청각 모두 만족시키는 명곡으로 꼽힐만하다.



2. MC 스나이퍼의 <4집 How Bad Do U Want It ?>
“만화가를 준비하면서 나태해질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저를 채찍질하기 위해 많이 들었던 노래에요.” 채찍질보다 이 곡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MC 스나이퍼 ‘Better Than Yesterday’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스피드에 비장한 기운마저 느껴지는 곡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달려 달리고 달려 지쳐 쓰러져 모든 걸 잃어 빌어먹어도 후회할 일은 없다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듯 올라’라는 가사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가사에 집중해서 들으면 제 꿈을 좀 더 불태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는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3. Nakashima Mika의 < True >
“이런 가사가 있어요. 나는 몇 개의 꿈을 꿔온 것일까, 나는 몇 개의 자유를 유지해온 것일까, 그걸 선택한 건 나의 의지. 결국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인데, 그게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초심을 잃지 않도록 버팀목이 돼 준 노래죠.” 잔잔한 선율 아래 나지막이 속삭이는 보컬이 인상적인 ‘Will’은 KBS <미안하다 사랑한다> OST ‘눈의 꽃’의 원곡자로 알려진 나카시마 미카의 곡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0월 데뷔 10주년 라이브 콘서트를 앞두고 ‘양측 이관 개방증’이라는 이유로 현재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바다 건너의 만화가에게 노래로 꿈과 희망을 주었던 이 가수는 꿈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4. Jason Mraz의 <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 >
‘그의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사랑받는 팝스타 중 하나인 제이슨 므라즈의 밝은 감성의 노래 역시 지강민 작가에게 힘이 되는 노래로 꼽혔다. 콜비 카레이와 함께 남녀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낸 ‘Lucky (feat. Colbie Caillat)’이다. “제이슨 므라즈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에요. 그냥 듣고만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거든요. 목소리나 선율 모두 좋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행운에 감사한다는 노래인데, 저도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만화가의 꿈을 이룬 것은 실력뿐 아니라 운이 많이 따라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와라! 편의점>이 많은 분들한테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제 인생의 큰 행운이고요.”



5. 소녀시대의 < Gee (The First Mini Album) >
“소녀시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불끈 나는데, 힘내라는 얘기까지 해주니 얼마나 고마워요.” 소녀시대의 ‘힘내!’에 대한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남성 팬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복잡한 이 지구가 재밌는 그 이유는 하나 Yes it`s you’라는 가사의 you가 듣고 있는 me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와라! 편의점>의 점장을 ‘미소녀시대’ 팬으로 설정했던 그는 실제로 소녀시대 팬이다. “좋아하는 멤버는 매번 바뀌는데, 요즘에는 제시카에게 꽂혔어요. 목소리도 감미롭고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하잖아요.” 앞서 추천한 네 곡이 만화가로 데뷔하는 과정에서 힘을 북돋아 줬다면, 이 노래는 “만화가가 되고 나서도 자주 듣는 노래”라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한 곡이다.




“지금은 <와라! 편의점>을 300화까지 마치는 게 목표죠. 다음엔 강풀 작가님의 <당신의 모든 순간>과 같은 순정공포만화를 그려볼까 생각 중이에요. 제 나름의 감성을 가지고 순정과 공포를 잘 버무리고 싶어요.” 그가 전혀 다른 두 장르를 조합한 차기작에서 어떤 세계를 그려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와라! 편의점>을 통해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포착할 수 없는 일상의 풍경을 꾸준하게 담아냈던 작가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만화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전체 판도까지도 고민하는 만화가라면, 그것이 어떤 이야기가 됐든 뚝심 있게 풀어나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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