ㄲㅠㄹ
1. 꿀처럼 단 귤
2. 한 망에 삼천 원 정도로 거래되는 서귀포산의 편구형 황적색 과실

MBC ‘녹색특집 : 나비효과’ 편에서 하하는 “꿀처럼 단 귤을 한글자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퀴즈를 출제했다. ‘꿀처럼 달다’는 형용을 더하기에 한글자의 제약은 불가능의 장벽처럼 보였지만, 정형돈은 ‘ㄲㅠㄹ’이라는 정답으로 점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문법적으로 ‘ㄲㅠㄹ’이 꿀이나 귤에 대해서 어떤 설명도 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퀴즈에 참여한 다른 출연자들이나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정답에 대해 특별한 반발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꿀과 귤의 의미가 아닌, 문자의 형태적 교집합을 절묘하게 혼합해 낸 ‘ㄲㅠㄹ’의 외양이 오히려 꿀과 귤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기이한 구조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와 파롤, 즉 본질과 현상으로 분석하였다. 사회 안에서 언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약속과 같은 랑그가 존재하고, 파롤은 이를 바탕으로 각자 발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ㄲㅠㄹ’은 이러한 언어의 특성에 역행한다. 정형돈에 의해 ‘ㄲㅠㄹ’이라는 파롤이 발생하고, 심지어 그것이 문자로 시각화 되고 나서야 이 단어는 비로소 ‘꿀처럼 단 귤’이라는 랑그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디 ‘ㄲㅠㄹ’의 출처가 아무 설명 없이 게시된 과일 행상의 안내판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더욱 유의미하다. 또한, 사회의 랑그를 배반하여 독자적인 파롤에 의지해 대중의 혼란을 야기하는 어른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시대에 이와 같은 선문답은 더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러니 SBS ‘런닝맨’에서 ‘대통령 선거의 반대말은 대통령 앉은 거’라는 단순한 개그를 발표한 후, 불과 한 달 사이에 기민하게 트렌드를 수용하여 참신한 유머를 소개한 하하는 자연산 ‘ㄲㅠㄹ’ 좀 드시면서 힘 내셨으면 좋겠다.
현상이 본질을 생산하는 사례
* 장인 K. will이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만든 카오스의 드라마
* 이러다 정말 화낼지 모르는 그저 무대 위의 퍼포먼스
* 나에게 경고한 것도 아닌데 왜 내게 브이텍을!

글. 윤희성 nin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