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같이 웃을 수 있어 영화가 좋다”
홍상수│“같이 웃을 수 있어 영화가 좋다”
5월 5일. 그 날짜도 순수하고 푸른 어린이날에 개봉하는 는, 홍상수 감독의 열 번째 영화입니다. 그리고 감히 단언컨대 홍상수의 영화 중 가장 푸르고 재미있는, 그리고 용감한 영화입니다. 통영에서 보낸 한 철. 그 여름의 조각들을 스크린 위로 부지런히 주워 담고 돌아선 그를 겨울이 U턴 한 것 것처럼 비가 내렸던 어느 날, 따뜻한 유자차를 앞에 두고 ‘인터뷰 100’이 만났습니다.

100: 곧 개봉하는 영화 는 시사 후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하하하’ 라는 제목만큼 웃음이 끊기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랄까.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대중적인 흥행도 기대해 볼만 하지 않을까요?
홍상수: 어… 많이 웃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전 작품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많이 했어요. 그런데… 결국…. 안 들더라고요. 모르죠. 많이 들면 좋죠. 관객이 많이 들어서 조금이라도 이득이 나야 다음 영화 제작도 할 수 있고, 같이 일한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줄게 생기니까요. 물론 거의 준다고 약속은 한 적은 없지만 심적으로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배우와 만나야 비로소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된다”
홍상수│“같이 웃을 수 있어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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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는 출연한 배우들의 만족도가 유독 높은 작품 같더군요.
홍상수: 배우들이 서로 한 연기를 좋아하고, 서로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요. 진심으로 그런 것 같고, 보기 좋고, 마음이 좋아지더라고.
100: 도 그렇지만 홍상수 감독과 작업한 배우들을 만나보면 감독과 배우 사이에 관객이나 평단은 절대로 모를 교감이 오간 것을 느끼게 되요. 얼마 전 만난 이선균 씨는 홍 감독님에 대해 ‘최고의 액팅 코치’라고 말 하던데, 그 노하우는 무엇일까요? (웃음)
홍상수: 영화에서 배우에게 원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편한 것이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맞지 않고 편하지 않으면 배우가 움츠려 들거든요. 기억에 의존하게 되고 계산하게 되고. 결국 움츠려 들면 자연스러울 때 생기는 흐름이 끊기니까 감독은 그게 끊기지 않도록 최대한 상황을 마련해주는 거죠. 잡생각보다는 진정한 자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진짜 감정을 가지고 영화 안에 있을 수 있도록 그 상태를 제가 보호해주는 거죠. 코치는 아니구요. 뭘 코치래, 아무 것도 안 해요. (웃음)

100: 보통은 영화를 감독의 예술로 생각 하고, 무릇 영화란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배우라는 도구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하지만 홍 감독님에게 영화작업은 좀 다른 의미이고, 그 의미에 따른 다른 방식이 만들어 진 것 같군요.
홍상수: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라요, 시작 할 때는. 그저 이런 저런 생각의 덩어리를 모아보는 거고 그런 마음 옆으로 배우들이 모아지는 거예요. 그리고 내 덩어리와 살아있는 배우들이 섞이는 거죠. 그 안에서 나는 배우들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뭔가를 원하게 되고, 또 그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도 알게 되는 거죠. 그 섞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되는 거죠. 감독이 어떤 이야기 하고 싶어서 그걸 배우에게 시키는 게 아니라. 그게 좀 다른 것 같아요.

100: 그러네요. 그래서 배우들이 홍 감독님과의 작업을 즐기나 봐요. 뭔가를 주체적으로 혹은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 한 영화를 같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성취감 같은 걸 느끼게 해주니까.
홍상수: 100% 같이 하는 거죠. 나 혼자 머리 써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조형과정은 철저히 인터렉션을 통해 나오는 거고, 배우가 없으면 구상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이 없어요. 배우가 정해짐으로 해서 이야기가 정해지는 거죠. 만약 도 유준상이 아니었으면 그 인물이 그 인물이 아니었을 거예요. 모든 배우들이 그 배우가 아니었으면 딴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거예요. 그 부분은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100: 매 작품마다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는 게 아니라 그 날 그 날 현장에서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작업방식을 고수하고 계시잖아요.
홍상수: 예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큰 틀이 있었고 좀 더 짜여있었는데 그런 게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전엔 트리트먼트만 스무 장도 넘고 그랬는데 는 5장 정도 되나? 그것도 인상이라 던지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합쳐서 그 정도니까. 거의 정해진 것 없이 들어간 거죠. 대강의 장소, 인물들만 끼워놨던 정도에요. 저 역시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지 그날이 오기 전엔 거의 몰라요. 어떻게 보면 게으른 거고. 어떻게 보면 그게 제가 원하는 방식 같기도 하고.

100: 사전적인 합의 혹은 트리트먼트의 분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활자를 통한 구체적 전달을 통하지 않고도, 감독의 의도를 배우들이 이해하고 표현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예전보다 더 커졌기 때문일까요?
홍상수: 배우들이 저와 만나서 뭘 끄집어내고 그 안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를 해 내는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고요. 트리트먼트가 줄어들고 있는 건, 좀 다른 부분이죠. 그건 아마 새롭게 다가오는 신선한 덩어리들을 더 많이 받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그걸 받아들이고 조직 하는 부분은 조금 더 능숙해져 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이왕이면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거죠. 예전엔 50을 가지고 시작했다면 지금은 20을 가지고 시작해도 뭔가 신선한 게 올 거라고 믿는 거죠. 그런데 20정도가 미니멈인 것 같아요. 그것도 없으면 무너질 것 같고.

“유준상도 예지원도 천사 같은 사람들”
홍상수│“같이 웃을 수 있어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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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는 통영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순신 장군의 존재가 영화 전체가 묵직하게 서려있는데, 인터뷰 하는 오늘(4월 28일)이 공교롭게도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더라고요. (웃음) 어쩌면 이제는 동전에 박제된 영웅 같은 이순신이란 사람에 대해 새롭게 생각 할 계기가 있었나요?
홍상수: 보통 사람들 아는 만큼 상식적인 수준이에요. 영화를 준비하려고 통영을 갔더니 그곳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이순신 장군을 영화에 등장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훌륭한 분이죠. 외로웠을 것 같고. 진짜 외로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걸 견뎠을까 싶기도 하고. 정말 좋은 분 같아요… 귀한 사람.

100: 아름다운 이별도 아닌데, 헤어지는 순간에 성옥(문소리)이 정호(김강우)를 업어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뜬금없는 행동이 어쩐지 멋있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이별의 의식을 그렇게 하다니 신기하기도하고.
홍상수: 헤어지는 상황에서 업어줬다는 건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성옥은… 이 여자는 사람 일반에 대해 실망을 가지고 있지만 건강하고 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업어주다가 결국 남자 무게에 자기가 넘어지잖아요. 딱 보기에도 자기에게 넘치는 일이라고 해도 그걸 하려고 하는 여자인 거죠.

100: 문소리 씨는 대본을 보고 이 여자 왜 이런 행동을 하느냐고 묻지 않던가요? (웃음)
홍상수: 못 이해할 것도 없잖아요. 설명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대신 배우들이 대본을 줬을 때 눈빛이 답답해 보인다거나, 먼저 물어보는 경우엔 설명을 해주죠. 그런데 소리 씨가 아무것도 안 물었어요.

100: 홍상수 영화에 대한 논리적이고 다양한 분석은 많이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거지만, 오히려 홍 감독님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직관이나 직감이 지배하는 세상인 것 같아요. 앞서 말한 헤어지는 순간에 여자가 남자를 업어주는 의식처럼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순간에 놓았을 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식으로요.
홍상수: 그냥 제가 아침에 뭘 쓰고, 그걸 배우들이 읽고, 킥킥거리면서 웃고, 한 30분쯤 외우고, 한 30분쯤 맞춰보고, 그리고 촬영을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사람에 대해 잡고 있는 인상 같은 게, 그 배우의 어떤 부분을 영화에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 같은 게 있어요. 그게 섞여서 대사가 나오고 행동이 나오는 거죠.

100: , 등 그간 홍상수 영화에 등장했던 인물, 관계, 상황 혹은 감정들에 대한 대중들의 분명한 호불호가 존재했던 것 같아요. 그 모든 것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들추어서 보고 싶지 않은 면들을 홍상수의 영화는 결국 보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런 것에 대한 고됨, 혹은 거부감 같은 게 있었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특히 에서는 “난 좋은 것만 본다”는 극중 대사처럼 홍상수의 눈이 보는 세상, 혹은 그 시야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상수: 글쎄요. 언제부터인가 그런 말, 그런 생각이 맴돌더라고요. 타고나길 사람도 잘 믿고, 세상의 밝은 면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저런 사람들이 세상에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나 자신은 전혀 못 그런 사람으로 타고난 거죠. 대신 나도 살아야 하니까 나름 순화 시키고 정화 시키며 살아왔고 그러다가 조금 나아 진 거고. 사실 아직도 힘든 게 많고, 앞으로도 생기겠죠. 저를 억압하는 사고의 극단성, 그 밑 뿌리들을 보게 되니까 점점 나아지는 거죠. 그래도 아직도 버거워요. 좋은 것만 보고 산다는 거. 그저 이제는 그렇게 사는 삶을 지향한다, 그쪽이 좋아 보인다 정도죠. 아직 감히 그렇게 산다고 말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에요.

100: 에서 발견한 아주 새로운 풍경이 있었어요. 예전 작품에도 늘 섹스를 하거나,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남녀가 등장했지만 그들의 감정이란 것이 대부분 엇갈리거나 타이밍이 빗나가거나 온도의 차이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는 서로 같은 시기와 박자와 온도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날 때만 만들어지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지더라고요. 홍상수의 영화에서 만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광경이라 조금 놀랍기도 했고요. (웃음)
홍상수: 저한테는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데, 과거에도 물론 알았죠. 그런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걸. 하지만 그렇게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인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영화에 끌어들여 전체 그림 속에 배치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 같아요. 유준상 씨와 예지원 씨를 커플로 묶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그 커플이 만들어 낼 온도를 대강 예상했던 것 같아요. 지원 씨도 준상 씨도 천사 같은 사람들이거든요.

“용기있게 산다는 건 틀린 것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
홍상수│“같이 웃을 수 있어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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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의 모든 배우들이 저마다 최선 혹은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지만 특히 배우 유준상에 대해서는 관객들이 놀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에서 약간은 예고되긴 했지만. (웃음) 유준상 씨에 대한 홍상수 감독의 특별한 인상은 어떤 것이었나요?
홍상수: 유준상 씨는…착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 하는 거 참 재미없는 것 같아요. 말로는 항상 부족해요. 누구 만나서 인상이 어땠냐, 하면 몇 마디로 정의를 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느낀 것에 백분의 일도 안 되거든요. 그리고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그러니 이렇다 저렇다 말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어차피 나는 그 100을 가지고 영화 만드는 건데 그 정확하지도 않은 1을 정의하고 매달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100: 배우들의 특징을 뽑아내는 걸 보면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나 기억력이 좋은 것 같아요.
홍상수: 모르겠어요. 어떤 부분은 창피할 정도로 기억을 못해요. 일상적인 거, 사람 얼굴 같은 거요. 기억력이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에도 장난처럼 썼지만 유전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어머님이 몇 십 년 같이 일한 사람을 몰라보고 그런 경우도 있었거든요. 저도 비슷한 민망한 경우도 많았고. 사실 기억해야지 하는 것은 기억을 잘 못해요. 뭔가 기억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뭐가 되었건 간에 기억하는 것, 붙잡고 있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거 있잖아요. 몸으로 체화되어 안으로 녹아 들어간 게 아니라면 기억으로 붙잡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침에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희한한 곳에서 기억이 튀어나와요. 몇 십 년 전 꼬마 때 봤던 것, 잡지에서 봤던 거, 며칠 전에 누가 한 이야기라 던지, 오만가지가 갑자기 들어와요.
홍상수│“같이 웃을 수 있어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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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의 인물들은 시를 쓰고 시를 낭송하고 시를 선물해요. 어제 이창동 감독의 신작 를 봐서 그런지 시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시라는 것이 학교 다닐 때 쓴 걸 제외하면 이제는 참 생소하고 먼 행위 같은데 말이죠.?
홍상수: 그래요? 사람들이 시, 안 쓰나?
100: 시, 쓰세요?
홍상수: 예, 가끔. 음… 시가 별건가요. 예를 들어 첫 줄, 재떨이가 투명하다. 둘째 줄, 테이블이 노랗다. 아니면 재떨이가 서있다, 테이블이 누워있다. 그렇게만 해도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100: 음… 뭔가 행간에 의미가 생기는 것 같네요.
홍상수: 예, 그래서 시가 좋은 것 같아요. 시란 게 누구든 쉽게 돈 안들이고 공부 안하고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논리적으로, 언어적으로 완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자유로워져서 실체에 도달하는데 더 도움이 되고.

100: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늘 여행을 떠나잖아요. 강원도로, 경주로, 제주도로, 파리로, 이번엔 통영까지. 원래 여행을 좋아하세요?
홍상수: 마음은 항상 떠나고 싶은데 게을러서 잘 못 가요. 제가 다닌 데는 거의 다 영화에 썼어요. (웃음) 가끔 일이 한가해지고 날이 좋으면 충동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갈래, 하고 가는데 그것도 많은 횟수는 아니고, 그냥 회 한 접시 먹고 오는 수준이죠 뭐.
100: 계획 잡고 어디가 맛있다더라 그런 거 알고 가는 스타일도 아니시겠어요.
홍상수: 예. 안 그래요. 계획 잡고 가면 재미도 없고, 사실 뭐가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겠어. 같이 간 사람들하고의 분위기가 중요한 거지.

100: 영화에서처럼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거는 편이세요?
홍상수: 맨 정신엔 못 그러고, 술 먹으면 잘 그래요. 얼마 전에도 부산 시네마테크에 갔다가 밤 바닷가를 걷는데 외국 애들이 기타 치면서 놀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섞여서 기타치고 술 먹고 놀았어요.

100: 그래서 계속 술을 드시는 거군요. 용기 있게 사시려고. (웃음)
홍상수: 에이, 그게 뭐 용기 있게 사는 거예요? 용기 있게 사는 건 백배 더 어려운 일이죠.
100: 그럼 용기 있게 사는 건 어떤 걸까요?
홍상수: 자기에게 습관적인 것, 달라붙어 있는 것,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회피 할 수 있는 것, 그걸 회피하지 않고 계기가 생겼을 때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네가 틀렸지, 라고 쳐다 볼 수 있는 것, 그걸 겪어내는 것, 그게 용기 있게 사는 거죠.?

100: 회피하거나 도망가거나 무책임하거나 아예 뻔뻔했던 남자들과는 달리 의 중식(유준상)은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 되려고 용기를 낸 것이 가상하더라고요. 물론 아직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완전히 바꿀 용기나 자신은 없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변화고 발전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홍상수: 말로 꼭 집어 뭐가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같아요. 그 용기를 내는 장면 전에 중식이 침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침 맞을 때 사람이 좀 멍해지잖아요. 유체이탈 같은 기분도 들고 그 순간, 갑자기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그 사람을 얼마나 아프게 했나를 정말로 보게 되는 순간이었던 거죠.

“다음 영화의 촬영지를 찾으러 여수로 가볼까 한다”
홍상수│“같이 웃을 수 있어 영화가 좋다”
홍상수│“같이 웃을 수 있어 영화가 좋다”
100: 갑자기 너무 거대한 질문을 하나 하자면, 감독님에게 영화는 뭔가요?
홍상수: 저는 실체에 대해 남들의 말을 빌려서 보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는 것을 어떻게 하면 내 언어로 실체에 가깝게 구현해 볼 수 있을까 했죠.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되면 좋은 거니까. 그렇게 스크린 위로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과정을 통해 어떤 조각들이 떠오르고 그 조각들이 직감에 의해 배열되고, 그것을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은 벽을 쳐다보면서 보고, 그 중 어떤 사람들과는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같이 웃을 수 있다는 게, 그런 게 좋아요. 영화가.

100: 10여 년 전 인터뷰에선가 충무로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독립영화를 할 것이라고 했는데 결국 그런 방식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이런 작업방식을 계속 유지하게 될까요?
홍상수: 해보니까 내가 만든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보지를 않으니까 당연히 거기에 맞춰서 제작비를 낮춰야 한다고 생각을 하구요. 또 돈이 없다고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못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100: 2008년부터는 건국대 영화과 교수로 일하고 계세요.
홍상수: 벌써 5학기 째네요. 그저 그 친구들 가지고 있는 이야기 중에 내 생각에는 예쁜 거, 좋은 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걸 칭찬해주고 장려해주는 일을 하는 거죠. 좋은 게 분명 있는데 그게 다 섞여 있거든요. 그 중에서 아 이게 좋은 거구나 스스로 알게 만들고 격려에 힘을 내서 하게 해주는 거죠. 그럼 된 거죠. 뭘 가르치는 게 아니라.

100: 이선균, 정유미와 찍은 새 작품은 아직 제목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홍상수: 아뇨, 정했어요. . 영화과 학생인 옥희가 만든 영화라는 뜻이에요. 학기 중에 일주일에 이틀 정도씩 찍었어요. 고생 많이 했어요. (웃음) 다 완성했는데, 뭔가 이상한 게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웃음) 나중에 보세요. 모르겠어요. 보세요.

100: 또 계획 중인 작품이 있으세요?
홍상수: 예, 8월에 찍으려고요. 여름이 좋아서요. 이번 겨울은 너무 길었어요. 힘들었어. 더 젊었을 때는 꾸리꾸리한 날씨가 술 먹기 좋아서 겨울이 좋았고, 그 중간엔 여름도 좋고 겨울도 좋았는데, 이젠 그냥 여름이 좋아요. 여름에 반팔 입고 바람 부는 넓은 길에 시-원하게 다니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100: 이번엔 또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하실까요?
홍상수: 아직, 아무 것도 없어요. 배우도, 이야기도, 제목도. 6월 쯤, 그 때쯤 귀에 걸리는 어딘가로 떠나겠죠. 그 중에 한군데는 의 마지막에 예지원 씨와 유준상 씨가 버스 타고 향하던 여수도 한번 가볼까 해요. 여기 저기 다 나왔는데 아직 전라남도가 한 번도 없었더라구요.

글, 사진. 백은하 one@
편집. 장경진 thre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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