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은 여러모로 그 정체가 궁금한 사극이다. 이 작품은 드라마에서 좀처럼 시도되지 않았던 구한말을 다루고, 거기에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을 중심으로 메디컬 드라마적인 요소를 접목 시켰다. 여기에 메디컬 드라마 MBC 의 이기원 작가와 법정 드라마로 많은 팬의 지지를 받았던 SBS 의 홍창욱 감독의 조합은 이 드라마에 대한 섣부른 예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 의 촬영이 진행 중인 SBS 일산 탄현 스튜디오에 찾아갔다. 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아직 일주일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 이 드라마에 대한 가장 빠른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제중원> vs <추노>│고치고 살리는 구한말의 남과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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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사내가 한 여자의 방 앞에 앉아 있다. 한 쪽 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호스 같은 것을 꽂고 있다. 사내 옆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사내가 말한다. “목 아래 한 치에서 왼편으로 한 치쯤입니다.” 그러자 방문 건너편의 여자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자의 손에는 청진기가 쥐어져 있었고, 그는 옷고름을 풀어헤친 어떤 여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댄다. 여자가 조선 사내의 말에 따라 여자 환자에게 청진기를 갖다 대면, 미국에서 온 금발의 사내는 문 밖에서 환자의 병세를 진단한다.

한 컷에 담긴 시대와 의학, 그리고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

양가집 규수를 진찰하기 위해 세 명의 미국과 조선, 혹은 남자와 여자가 매달리는 풍경은 이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지 짐작케 했다. 시집간 양가집 규수가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던 구한말, 폭행당한 여자의 친구이자 영어와 의학을 배우는 신여성 유석란(한혜진)은 “전하께서 이젠 신분의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신분의 자유를 허락지 않는다. 그건 미국에서 서양 의학을 전파하러 온 이방인 알렌(션 리차드)이나 백정의 신분을 숨기고 알렌에게 의학을 배우는 황정(박용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은 그렇게 한 컷으로도 시대와 의학, 그리고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그려내고 있었다.

“정말 한 쪽에만 귀를 갖다 댄 거야?” “네” “그걸 어떻게 알아?” “박물관에 그런 사진이 있어요.” “그럼 난 할 말 없어. 하하.” 홍창욱 감독은 스태프에게 알렌이 한 쪽에만 청진기를 꽂은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신분과 성별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을 끌고 가는 가장 큰 동력이라면, 철저한 검증을 통한 디테일은 을 현실에 발붙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드라마 속의 모든 의료 기구와 의료 행위들은 모두 철저한 고증을 거친다. 이 날 촬영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훗날 황정의 라이벌이 될 백도양(연정훈)이 인간의 장기를 확인하기 위해 보는 서책 역시 그 당시의 자료를 통해 재현한 것이라고.

빠르고 정확한 외과의사의 수술 같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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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꼼꼼한 디테일은 촬영 현장 전체의 분위기이기도 했다. 홍창욱 감독은 박용우와 한혜진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연기를 하자 “편집의 흐름을 생각해야 하니까” 두 명이 함께 문을 열 것을 주문한다. 홍창욱 감독이 “예쁘고 굳세고 똑똑한 석란의 이미지에 완벽하게 어울려” 캐스팅하고 싶었다는 한혜진은 환자로 만난 자신의 어릴 적 친구와의 재회에 가벼운 포옹을 집어넣으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말한다. 의학이 소재가 된 은 그만큼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대신 장면마다 수술을 집도하듯 꼼꼼한 연출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작은 방을 “이 곳이 병원”이라고 말하는 홍창욱 감독은 정말 병원에 온듯 조용하고 차분하게 만든다. 드라마를 찍을 때 흔히 들리는 우렁찬 큐 사인도 의 촬영현장에는 없었다. 한 컷의 촬영이 끝날 때마다 스태프들이 조용히 움직이면 어느새 조명의 위치가 바뀌어 있고, 몇 번 뚝딱뚝딱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 하나가 새로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이 제작진과 스태프가 한데 섞여 나누는 대화는 의 지금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촬영장에 등장한 박용우는 스태프가 “여기 웬일이야?”라고 농담을 던지자 웃으며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고 해서”라고 응수한다. 또 다른 스태프는 한혜진이 출연한 영화 의 흥행 성적을 두고 내기를 하기도 한다. 각각의 신 촬영은 지루하게 늘어지는 법 없이 일관된 호흡을 유지하며 진행됐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분위기와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촬영은 마지막 신을 마쳤다. 시계를 보니 다른 드라마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정말 빠르고 정확한, 그리고 여유까지 있는 외과의사의 수술을 보는 것 같은 기분. 짐을 꾸리던 스태프 중 한 명이 스튜디오를 나서는 다른 스태프에게 “내년에 보자!”는 말을 던진다. 내년에도 이 이런 분위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그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년에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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