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엔 뭐하고 지냈어? 뭐 별로 연휴랄 것도 없었지만.
뭐하긴. 간만에 가족 만나서 집에서 만든 밥이랑 명절 음식 먹고, TV로 씨름 경기 보고 그랬지. 네 말대로 연휴랄 것도 없어서 그다지 많이 쉬지도 못하고. 아, 대신 이번 연휴엔 역시 <여성 아이돌 서바이벌-달콤한 걸>(이하 <달콤한 걸>)이 있었지? 그나마 그거 보면서 명절 기분 냈던 거 같다.

예상대로구만. 추석 전부터 채널 사수니 어쩌니 하더니.
왜 그런 눈으로 봐? 내가 꼭 소녀시대 수영이랑 카라 한승연이 출연해서 그걸 ‘닥본사’한 게 아니에요. 혹시라도 ‘10관왕’에서 활용할만한 소재가 있을지 몰라서 없는 시간 쪼개가면서 본 거라니까?

오호, 그러셔? 그래서 뭐 좀 건진 거 있어?
물론이지. 지난 MBC 설 특집 <내 주먹이 운다>를 미처 ‘10관왕’에서 언급하지 못해 좀 아쉬웠는데 이번에도 카라 구하라의 활약이 대단하던데? 그 때도 근성이 대단했는데 이번에도 굉장한 끈기를 보여주고, 단거리 달리기는 정말 잘하더라.

아, 나도 추석에 난 기사 봤어. 구사인 볼트 어쩌고 하는 거.
그치. 설에는 바다 하라, 추석에는 구사인 볼트. 완전 명절형 아이돌인 셈이지. 이게 그냥 설레발이 아닌 게, <내 주먹이 운다> 방영한 이후에 디시인사이드 격투 갤러리 안에서도 구하라 캡처가 굉장히 화제가 됐었어. 상대방 주먹이 날아오는데 그걸 그대로 보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건 복싱을 따로 배우지 않으면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거거든. 특히 난타전 때는 그냥 냅다 휘두르는 것 같아도 한쪽 글러브로 상대 목을 감고 접근해 다른 한 손으로 치는 소위 더티 복싱을 보여줬는데 상대에 비해 키가 더 작고 팔이 짧은 상황에선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지. 그래서 K-1 최고의 신성 바다 하리에 비견되는 최고의 격투 센스라는 얘기를 들었던 거고.

그런데 이번에는 달리기까지 잘하셨다?
완전 잘했지. 대충 캡처를 보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2등과의 차이가 엄청나게 나잖아. 저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는 건 구하라가 제대로 뛰는 법을 알기 때문이야. 보통 단거리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다리가 감긴다는 느낌으로 뛰거든? 무릎을 높이 차주는 동시에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밀어서 도약하는 느낌으로 뛰는 건데 잘 모르겠으면 나중에 달릴 때 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게 까치발로 뛰어봐. 그럼 어떤 느낌인지 대충 감이 올 거야. 그리고 정말 놀라운 건 달릴 때 자세가 거의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거야. 거의 모든 운동에너지가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느낌이지. 다른 걸그룹 멤버들을 보면 팔이 너무 옆으로 벌려져서 공기 저항을 받거나 앞뒤로 충분히 흔들어주지 않는데 구하라는 정말 앞뒤로 팔을 열심히 흔들어주는 걸 볼 수 있어.

팔을 열심히 흔드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어차피 달리는 건 다리잖아.
내 말이 잘 이해가 안 되면 나중에 달리면서 팔만 빠르게 움직이면서 천천히 달리거나, 팔은 느리게 움직이면서 빠르게 달리는 걸 시도해봐. 아마 잘 되지 않을 거야. 사람 몸은 다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달리면서 팔을 빨리 앞뒤로 움직여주면 반사적으로 다리도 그 템포에 맞춰 움직이게 되어있어. 그래서 달리기를 연습할 때 그냥 팔만 빠르게 움직이는 훈련을 따로 하기도 하는 거고. 구하라의 경우 선천적인 건지, 어디서 배운 건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올바른 자세로만 뛰어도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해서 100미터 기록을 2초 가까이 줄일 수 있어. 아, 이 수치는 책이나 인터넷에 나오는 건 아니고 내 경험이니까 너무 믿진 말고.

응, 너무 믿은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걱정 마. 그런데 구하라는 그렇게 잘 뛰다가 넘어져서 결국 꼴찌 했잖아. 그러면 아무 소용없는 거 아니야?
이런 성적 지상주의자 같으니.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모든 기사가 내용의 질과는 상관없이 조회 수로 평가 받는 거야. 비록 한우 세트는 놓쳤지만 달리기란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준 것만으로도 구하라의 활약은 <달콤한 걸>의 게임 수준 자체를 높여줬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아니, 사실 이 날 거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도 구하라가 가장 인상적이었어.

어딜 봐서? 팔씨름에서 부전승으로 올라가고 다른 시합에서도 1등을 한 건 아니었잖아.
어허, 무슨 소리. 파테르 대결에서 버티는 거 못 봤어? 상대방이 아예 못 드는 거면 모르지만 가윤이 구하라의 상체를 상당히 많이 들었는데도 반대쪽에 힘을 실어 버티는 건 보통 근성이 아니고선 어려운 일이야. 그리고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약간의 꼼수도 있었어. 손바닥을 경기장 바닥에 붙여야 하는데 막판에는 바닥 커버를 손으로 움켜쥐더라.

그건 그냥 반칙인 거잖아! 탈락 아니야?
걸그룹끼리 친해지자고 나온 자리에서 뭘 또 반칙씩이나. 경기 시작할 때 이 바닥은 손으로 잡는 게 가능하니 그러지 말라고 말해준 것도 아니잖아. 그 상황에서 지지 않기 위해 바닥을 움켜쥘 생각을 하는 건 역시 근성과 응용력 문제지. 그리고 트럭 끌기만 해도 그래. 아예 꿈쩍도 안 하는 트럭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체중 전체를 실어서 끄는 건 물론이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니까.

네 말대로 걸그룹끼리 친해지자고 나온 자리에서 뭘 또 감동이냐. 그리고 근성이라는 건 신체 능력이랑은 별로 상관없는 거잖아.
상관없긴. 보통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쓰리 모어라는 게 있어. 한국말로 하면 ‘세 번 더’인 거지. 말하자면 웨이트를 들면서 더는 못 들겠다는 생각이 들 때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세 번 더 들 수 있다는 거야. 정말 수 십 킬로그램짜리 벤치 프레스를 더는 못 들 거 같은데 옆에서 파트너가 손가락으로 바를 살짝 당겨주기만 해도 세 번을 더 할 수 있다니까? 그건 우리가 한계라고 느끼는 상황에서 실제 우리 몸은 약간의 여력을 남겨놓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럼 당연히 그 여력을 활용할 수 있는 건 정신력 아니겠어? 구하라의 근성이 돋보이는 건 그래서야. 말투는 굉장히 애교스러웠지만 달리기 전에 길에게 출발 사인 가지고 장난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승부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고 봐.

아주 구하라 찬양이시군. 그럼 이번 기회에 직접 만나서 운동선수로 대성시켜보지 그래?
내가 추석에 달 보면서 뭘 빌었겠냐. 뭘 빌었을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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