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문제들은 때로 너무 만연한 탓에 그것이 당연시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드라마는 시작 전에 4회를 찍고, 중반 이후 스케줄이 빠듯해 지면서, 8부 능선을 넘을 때는 쪽대본과 생방송을 면치 못하는 제작 과정을 고질적으로 답습하고 있다. 그처럼 긴박한 상황에서도 어떤 드라마는 처음의 퀄리티를 유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지만, 상당수의 작품은 용두사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고질적인 제작 행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최근 몇몇 작품들은 ‘사전 제작’이라는 모험을 선택하고 있다.

사전제작의 일장일단, 영화에 버금가는 스타일 VS 작품 수정의 기회 부재

완성한 작품을 방영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본과 연출에 고민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제작 기술과 인력이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영화 같다’는 평가가 드라마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사실은 방송 시간에 쫓기는 제작 현장이야말로 드라마에 치명적인 독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MBC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친구, 우리들의 전설>과 <탐나는 도다>는 사전 제작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남다른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는 영화에 버금가는 스케일의 자동차 추격신과 시간을 넘나드는 구성을 시도할 수 있었으며, 후자는 제주도의 풍경을 바탕으로 한 수려한 화면으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사전 제작이 반드시 드라마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전쟁에 비견될 정도로 편성이 중요한 문제가 된 현재 드라마 제작 구조에서 방영 시점을 결정짓지 않고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일지도 모른다. 2008년 방송된 <비천무>는 제작 후 4년 만에 분량을 조절하고 나서야 편성을 받을 수 있었고 역시 같은 해에 방송된 <사랑해>는 시청률 참패에도 불구하고 작품 수정의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사전 제작의 한계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본을 확보하고, 연출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사전 제작은 여전히 드라마 제작 여건의 개선에 있어서 중요한 해결책이다. 특히 <동방의 빛>(JI 프로덕션), <로드 넘버원>(로고스 필름)과 같이 거대한 규모를 지향하는 드라마일수록 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에 가깝다.

철거 직전의 풍년빌라에서 펼쳐지는 위기일발 대소동

그런 면에서 최근 인천에서 촬영을 진행 중인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연출 뿐 아니라 대본의 완성도를 위해 사전 제작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불어라 봄바람>, <라이터를 켜라> 등 다수의 작품의 쓰고, 연출한 장항준 작가와 <그해 여름>의 각본을 쓴 김은희 작가가 공동 집필한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이미 14부 대본을 완성하고, 마지막 두 회 분량을 마무리하고 있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삼류 단역배우 오복규와 그에게 접근하는 의문의 여인 윤서린, 그리고 복규가 살고 있는 철거 직전의 낡은 풍년빌라의 주민들이 돈을 노리고 벌이는 잔혹하면서도 코믹한 소동을 그리는 작품으로, 복규와 서린 역으로 각각 신하균과 이보영이 촬영 중이다. 그 외에도 백윤식, 최주봉, 정경호, 고수희, 박효준, 박혜진, 문희경, 강별 등이 캐스팅 되었으며, 이에 대해 제작사인 JS 관계자는 “영화에서 눈에 띄는 조연들은 다 모았다”며 개성 있는 인물들의 조화에 남다른 자부심을 표했다. 아직 방송사도, 방송 일자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배우들은 입을 모아 “대본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자부한다. 규모뿐 아니라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한 작품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평가를 받게 될지, <위기일발 풍년빌라>가 공개될 그날이 기대된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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