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에는 ‘지붕에 비둘기가 있는 분홍빛 벽돌집’이라는 설명보단 ‘10만 프랑 짜리 집’이라는 설명을 들어야 좋은 집이라 생각하는 어른이 나온다. 분명 속물적이긴 하지만 숫자를 이용할 때 대상의 비교와 평가가 편한 것이 사실이다. 수의 세계에선 20억 짜리 집이 2억짜리 집보다 10배 좋다고 깔끔하게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대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평가하는데 있어 소위 ‘스펙’이 중요해진 건 그 때문일지 모른다. 타율과 장타율, 출루율을 더해 야구선수의 능력치를 평가하는 것처럼 학력, 학점, 토익점수 등 숫자로 계산할 수 있는 요소로 개인을 평가하는 건 그게 그만큼 편하고 비교도 쉬워서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의 개성과 욕심과 꿈의 덩어리는 숫자로 잘게 쪼개져 하나의 데이터가 된다.

사실 예술인이라 할 수 있는 배우를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출연작의 수, 개런티, 출연분량 등을 수치화하면 배우의 수준도 쉽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브레인팩토리에서 진행 중인 ‘Dreamers – Portraits of Unknown Actors’展의 주인공들은 수준이 낮은 배우들이다. 그들은 대체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도 불분명한 무명 배우들로 줄리아 로버츠 정도의 수준을 10이라 치면 1은 커녕 한 없이 0에 가까워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이름이 공개된 이들 배우의 사진은, 이들이 가진 연기에 대한 열정을 숫자로 쪼개지 않은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전달한다. 예술작품을 통해 존재의 은폐된 진리가 들어난다던 어느 철학자의 말은 적어도 이들 사진에 대해서만큼은 진실인 듯하다. 감정을 한껏 풍부하게 잡아 다분히 연극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Dreamers’라는 제목도, ‘무대 위를 거니는 매순간 나는 배우로서 나의 마음속에 그리고 영혼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이야기 해야만 한다’는 코멘트도 사족처럼 느껴진다. 그 열정은 잴 수도, 수치화할 수도 비교할 수도 없다. 어떤 종목보다 숫자와 데이터가 중요한 야구계의 슈퍼스타인 메이저리그 투수 톰 글래빈은 이렇게 말했다. “야구에 대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으로는 찍을 수 없다.”


1999년│슬립낫

지금은 하드코어 음악을 대표하는 최고의 슈퍼스타지만 20세기의 마지막 해, 슬립낫의 등장은 낯선 충격이었다. 극렬한 분노를 토해내는 보컬과 연주도 굉장했지만 무엇보다 공포영화에나 어울리는 가면을 쓰고 이름 앞에 숫자를 붙인 9명 멤버가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특이해 보이기 위해 애쓰는 신인들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들의 1번인 조이 조디슨은 고향에서 연주하던 시절에 대해 “우린 저절로 무명씨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우린 이름이나 얼굴로 누구 앞에 나갈 처지가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름보단 숫자와 가면으로 기억되던 시절의 그들이나 하드코어계의 거물이 된 그들에게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는.

<희극지왕>
199년│감독 주성치

‘코미디의 왕’이라는 제목과 달리 아마 주성치의 영화 중 가장 덜 웃기고 많이 슬픈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정서는 무명 배우의 설움과 연기에 대한 애정이다. 시체 역할이나 맡고, 엑스트라용 도시락도 개에게 뺏기며 무명씨로서 겪을 수 있는 설움을 톡톡히 겪는 사우(주성치)는 당대 최고의 인기 여배우 부망(막문위)에게 발탁돼 신데렐라를 꿈꾸지만 결국 기회를 놓친다. 주성치 특유의 과장된 액션 속에서도 이 과정을 지켜볼 땐 가슴이 찡할 수밖에 없는데, 무엇보다 사우를 스타로 만들기 않고 영화가 아닌 무대 위에서 그가 꾸준히 연기하는 모습으로 해피엔딩을 만든 것이 탁월하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그의 열정이지 이름값은 아니었으니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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