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 “남들이 아무리 얼굴까지 붉히면서 천 번, 만 번을 말해도 난 노라고 말할 뿐이지” – N.ex.T ‘나는 남들과 다르다’ 중. 달라서 칭찬도 받았다. 달라서 밴드의 독재자란 소리도 들었다. 달라서 이슈 메이커가 되기도 했다. 달라서 싸우기도 수 없이 싸웠다. 다른데다 틀리기까지 해서 욕도 먹을 만큼 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름을 인정 못하는 사람들은 그의 ‘NO’에 번번이 낚인다. ‘NO’라고 말하는 것이 생활이 돼 버린 스타이자 논객이자 DJ이며 음악도 하는 사람의 복잡다단할 것 같은 생존 방식.

버트런트 러셀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집필한 철학자. 신해철은 고등학교 2학년때 이 책을 읽고 “마치 훌륭한 지휘관이 일사분란하게 지휘하는 군대 같은” 러셀의 논리에 매료돼 철학을 공부할 마음을 먹었다. 신해철의 어머니는 그가 어린 시절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다음 단계의 책을 사줬고, 방학 때는 학교 과제 대신 “선생님께 편지로 잘 말씀 드릴 테니 네가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어라”며 독서를 독려했다. 온갖 세상사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하려는 신해철의 모습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

김태원 : 지금도 저작권료로 쏠쏠한 소득을 챙기는 록계의 0.3%. 신해철은 김태원의 그룹 부활의 팬클럽 회장이었고, 무한궤도가 부활의 공연 오프닝에 서기도 했다. 신해철은 그를 인생의 스승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한궤도 : 고교시절 신해철이 활동했던 그룹 각시탈을 기본으로 MBC 강변가요제에서 만난 정석원 등이 더해져 만들어진 그룹. 서울대-연대-서강대 학생들이 모인 탓에 “레코드사에서는 꼴통 언더밴드, 언더밴드들에게는 부르조아 학생밴드, 대학써클 밴드들에게는 잡탕 연합 서클 취급”을 받아 제 3의 길을 찾기 위해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 대상을 받았다. 당시 신해철은 수상을 위해 “1. 대학가요제라는 행사에 어울릴 것, 2.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3. 듣는 사람을 한 방에 보낼 것, 4.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화려하게 할 것, 5.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되 편곡은 해외 스타일로 할 것”의 원칙으로 세우고 ‘그대에게’를 만들었다.

조용필 : 무한궤도에게 대상을 준 심사위원장. 혹은 신해철이 태어나 처음 본 콘서트의 주인공이었던 황제. 무한궤도의 대상 수상 이후, 자신의 매니저였던 유재학을 소개했다. 무한궤도는 유재학과 5년 전속에 밴드 해체 시 신해철이 솔로 앨범을 낸다는 조건으로 계약, 신해철은 무한궤도의 해체로 솔로 활동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랩도 하고, 이지연, 김완선 등과 노래도 부르는 아이돌 시절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는 계약 때문에 밤무대를 뛰어야 하는 상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면서 “노래하고 싶다면 산업시스템을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머리만 굵어봐라 이대로 살 거 같냐”며 칼을 갈았다.

N.ex.T : 1992년 신해철이 결성한 록 밴드. 그룹 이름이 ‘New EXperiment Team’인데다 1집 해설지에 유하 감독이 “가요계의 누벨바그”라는 표현을 써 지적이고 실험적인 이미지를 표방했다. 넥스트는 국내에 존재 자체가 희귀한 메인스트림 록 밴드였고, 그럼에도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와 ‘money’처럼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썼으며, 크리스 샹그리디 같은 해외 유명 록 엔지니어를 기용해 국내 록 밴드 사운드의 한계를 돌파했다. 또한 신해철은 PC 통신 하이텔에 ‘NexT’라는 아이디로 자신의 음악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등 네티즌들과 소통했다. 넥스트의 음악성은 각자 판단할 일이지만 ‘새로운 실험’이었음은 분명하다. 넥스트는 한국 음악계에 해외 음악에 대한 마니아적 지식과 쇼 비즈니스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가진 뮤지션들의 등장을 알렸다. 신해철은 넥스트를 통해 무한궤도 시절부터 있었던 ‘지적인 철학과 출신 가수’의 이미지를 집대성 시켰다. 하지만 해체와 재결성, 3~4집을 제외하고는 계속 멤버가 바뀌는 등 신해철에게 독불장군이라는 이미지도 안겨줬다.

노무현 : 봉하마을에서 살다 조만간 서울에 갈 일이 생긴 전직 대통령. 신해철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다. 이후 신해철은 “특정 후보를 지지 할 때 그 사람의 향후 통치 행위까지 받아들이겠다는 전제는 아니”라면서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고, 효순-미선 사건에 대해 미군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논객 신해철’은 기존 신해철의 이미지에 이때부터 시작된 사회 참여를 통해 다져진 셈. 그가 그냥 ‘일개 가수’는 아니다.

노도철 : 드라마 감독. MBC <안녕, 프란체스카>에 신해철을 캐스팅했다. 노도철 감독은 신해철이 “가오만 잡다 쫑칠 거 뭐하려 연기하냐”고 하자 마음껏 그를 망가뜨렸다. 여기에 라디오 프로그램인 <고스트 스테이션>, <고스트 네이션> 등에서 온갖 욕설과 유머를 세상사에 버무리는 신해철의 모습은 그가 무슨 일이든 말할 수 있게 했다. 카리스마적인 뮤지션이 스스로 이미지를 파괴하면서 웃기는 아저씨가 됐고, 이를 통해 대중적인 논객이 됐다. 실제로 신해철은 넥스트의 가장 진지한 곡 중 하나인 ‘The ocean’의 데모 테이프에 ‘차력사의 애정행각’이라는 제목을 붙일 만큼 평소에는 유머러스한 모습이 많다.

지승호 : 신해철의 인터뷰집 <신해철의 쾌변독설>을 낸 전문 인터뷰어. 이 책에는 온갖 분야에 대한 신해철의 생각이 담겨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그의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한 생각. 신해철은 자신이 간통죄 폐지, 대마초 비범죄화 등에 나선 것이 국가라는 집단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가 다수의 반대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죽을 줄 뻔히 아는 싸움’이라며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그만큼 신해철은 집단에 맞서는데 거침없고, 적(집단)과 아군(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명확해져 그에 대한 찬성과 반대도 뚜렷해진다. 여기에 스타로서 신해철의 위치가 더해지면서 대중과 미디어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의 발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신해철의 쾌변독설>은 거기서 생긴 영향력이 낳은 산물이다.

송영선 : 친박연대 국회의원. 최근 신해철의 북한 로켓 발사 축하에 대한 발언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이 사건 전 청소년의 혹독한 입시 노동을 비판하던 신해철은 ‘24시간 학원’ CF에 출연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공교육에 반대했지 사교육에 반대한 적은 없다”는 논리와 “24시간 학원인지 모른 채 CF에 출연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자신이 어떤 CF에 출연하는지도 모른 채 출연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그는 “남들과 생각이 다른 게 범죄냐”고 했지만, 이 문제에 한해서는 다른 생각이 아닌 ‘틀린’ 팩트, 혹은 무책임한 행동의 무게가 크다. 또한 사회적인 문제를 집단과 개인의 관점에서 보는 그의 시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회가 다원화 되고, 사고방식이 다른 젊은 세대가 늘어날수록 그의 말은 ‘너무 당연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신해철이 던진 말 한마디에 국가보안법으로 고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신해철은 그들과 반하는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람의 위치를 얻게 됐다. 신해철의 가치는 그가 뛰어난 철학자여서가 아니라,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소수 의견을 주류 사회에 제기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한다는 사실 자체일지도 모른다. 신해철의 말 한 마디에 진심으로 ‘발끈’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여전히 신해철 같은 사람이 필요할 만큼 우리 사회가 경직됐다는 것은 아닐까.

서태지 : 1990년대의 신화. 신해철이 그러했듯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과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스타와 아티스트의 자리를 동시에 거머쥐었고, 신해철은 그를 “낙오자 정서”로, 자신을 “비겁자 정서”로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그들의 행보는 정 반대에 가깝다. 서태지가 점점 더 자신의 음악 세계로 파고드는 것과 달리, 신해철은 갈수록 수많은 세상사에 대해 말한다. 세상은 변했고, 지지자들의 숫자도 예전과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인생은 계속되고, 그사이 신해철은 진창에 구르고, 욕 먹고, 실수하고, 아는 척하고, 어찌됐든 음악은 계속하면서 산다. 이 복잡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을 인생을 사는 남자는 자기 바람대로 “나이 들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Who is next
신해철이 음악을 맡은 영화 을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에 출연한 송강호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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