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에브리원의 <아이돌 군단의 떴다! 그녀>에서 주인공인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잘 대접받거나, 귀하게 포장되지 않는다. 그들은 커플이 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불사한다.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아이돌 그룹에게 예의는 차리되,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과 달리 <아이돌 군단의 떴다! 그녀>는 너른 멍석을 깔아 놓고 조금은 가혹하게 이들이 마음껏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팬들은 아이돌의 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있으니 좋고, 팬이 아닌 사람들은 출연자와 무관하게 웃고 즐길 수 있어서 쉽다. 그 결과 3시즌 7번째 에피소드가 방송된 지난 목요일, <아이돌 군단의 떴다! 그녀>는 채널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이윤화 PD와 김현경 작가를 만나 이들이 생각하는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을 들어 보았다.

<아이돌 군단의 떴다! 그녀>가 시즌3이 되면서 부쩍 재미있어 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주는 시청률이 어떻게 나왔나?
김현경
: 지난 방송보다 잘 나왔다. 지금 기분 좋아 보이지 않나? (웃음)
이윤화 : 국장님이 이번 주는 대체 게스트가 누구였길래 시청률이 잘나왔냐고 물으시더라. 그런데 이번 주는 게스트가 없었다. (웃음)

“2PM의 신선한 느낌이 요즘 버라이어티와 잘 맞았다”

특히 자막이 재미있다는 의견이 많더라.
이윤화
: 그런가? 내용적으로는 시즌1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 된 것은 폰트나 디자인적인 측면일 거다. 아무래도 눈에 잘 들어오면 같은 자막이라도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김현경 : 시즌1을 할 때는 내가 지못미, 듣보잡, 사생팬 그런 단어들을 잘 몰랐다. 정자로 자막을 쓰거나 거기서 살짝 꺾는 식이었는데, 요즘은 막내작가한테 물어보고,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신조어들을 섞으려고 노력한다. 엄숙한 공중파와는 달리 가야지. 안 그래도 서른 넘으면 자막 쓰면 안 된다는 말도 있는데. (웃음)

‘아이돌 군단’이라는 제목부터가 노골적인데, 아이돌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이윤화
: 원래 <박경림의 화려한 외출>을 연출 했다. 후속작을 기획하면서 게스트를 불러오는 콘셉트는 유지하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그 때 작가님을 만나면서 아이돌 아이템이 시작 되었다.
김현경 : 아무래도 우리나라 음악 시장은 아이돌 중심이다. 그래서 이들을 데리고 리얼 버라이어티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리얼 버라이어티를 하니까 그 시류에 편승하자는 게 아니라, 공중파에 나오면 “누구누구 입니다!”하고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아이돌의 진짜 매력을 좀 더 자연스럽게 풀어가기 위해서 그런 방식을 택한 거다.
이윤화 : 원래는 아이돌 그룹에서 한 명씩 멤버를 모아서 진짜 ‘군단’을 조직하고 싶은 포부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케이블 방송에서 메이저 기획사가 둘 이상 섞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스케줄 문제도 있고. 그래서 처음 의도와는 달리 시즌1에 슈퍼주니어 해피, 시즌2에 FT 아일랜드를 따로 투입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3시즌에서 2PM을 주인공으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윤화
: 실제로 아이돌 그룹들은 안무나 인사에서 틀리는 멤버가 있으면 굉장히 눈총을 받는다. 그런데, 방송에서 재범이 “안녕하세요, 2PM임당!”하고 멘트를 틀리는 걸 봤는데, 다른 멤버들이 눈치를 주기는커녕 웃고 즐거워하더라. 아직 뭘 해도 각이 잡혀있지 않고 멤버들끼리 좋아해 주고 그런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현경 : 아직 조직의 논리에 따라 경화되지 않은 거지. (웃음) 보통 아이돌들은 팀의 목소리로 준비되어온 것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런 걸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2PM은 길거리에서 만난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이 있다. 뭔가 수정란 같은 매력이 있는데, 그런 점이 요즘 버라이어티의 대세와 맞아 떨어질 것 같았다.

3시즌부터 투입된 진행자 붐의 활약도 돋보인다.
김현경
: 3시즌의 콘셉트는 신인인 2PM의 예능 버라이어티 적응기다. 그것을 위해서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MC를 보고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특출한 감초가 필요한 법이다. 말하자면, 못난이 삼촌의 역할인데 여자 게스트가 나오면 같이 설레발도 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살벌한 진행 실력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주는 거다.

“대본으로 모든 행동을 지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만들기 위해 출연자들을 캐릭터라이징 하는 것인가.
김현경
: 붐의 경우는 역할이 그렇다는 거다. 아이돌들은 사실 캐릭터를 제작진이 만들어 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아무리 트레이닝을 시켜도 막상 방송에 들어가면 자신의 캐릭터를 잊어버리거나 오히려 카메라 앞에서 작위적인 연출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초반에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서, 지금은 아예 촬영 전에 설명을 자세히 안 해준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그림이 나온다.
이윤화 : 캐릭터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으면 신인 아이돌이 아니라 유재석이지. 찍어 놓은 걸 보면서 캐릭터를 만드는 편이 더 쉽다. 주로 자막으로 캐릭터를 짚어 준다.
김현경 : 현장에서 우리가 컨트롤 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고백하자면 모든 여자 스태프들이 닉쿤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닉쿤처럼 누가 봐도 잘생기고, 한국말이 서투른 멤버는 다른 멤버들의 질투를 유발시키는 역할에 제격이다. 그래서 더욱더 닉쿤에게 환호를 보내는 건데, 2PM 멤버들이 아직 순진해서 정말로 “저것 봐라!”하면서 무한 질투를 보인다. 그런 리얼한 반응을 위해서 제작진이 멤버들을 상대로 몰카를 찍고 있는 셈이다.
이윤화 : 그리고 그런 설정 속에서 닉쿤도 달라지는 면이 있다. 공중파 방송을 할 때보다 자신 있게 서툰 말이라도 일단 내뱉고 본다. 프로그램에서는 본인이 왕자님이니까. (웃음) 그래서 “저 윙크 자판기 아니에요” 같은 돌발 발언도 나올 수 있었던 거고. 작가님이 아이들의 기분을 파악하고 감정을 끌어내는 조율을 잘하신다.

현장의 상황에 따라 리얼리티를 살려서 진행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은 대본이 유출되어도 걱정이 없겠다. (웃음)
김현경
: 뭐, 누가 발견해도 알아 볼 수도 없을 거다. (웃음)
이윤화 : 개인적으로 버라이어티 대본 문제는 시청자들이 과민한 것 같다.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연기를 시키는 게 아니라, 이미 형성된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짚어 주는 것뿐이지 않나. 성격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대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김현경 : 리얼 버라이어티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상태로 슛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아이템이나 콘셉트를 정하는 것은 시험지를 넣는 과정에 불과하고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대본의 저력은 출연자들의 관계를 파악해서 조를 나눠주고, 역할의 시너지를 촉발시켜 주는 데서 나오는 거다. 세세하게 모든 행동을 지적하는 것은 불가능 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쇼가 만들어 질 수가 없다. 작가로서 최선은 절반만 완벽하게 준비해서 녹화에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현장에서 돌발적인 상황들을 찍어 오면 편집하기도 쉽지 않겠다.
김현경
: 우리 팀에 PD가 8명이고, 작가가 6명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들이 보통 다른 예능보다 편집인원이 많이 필요하다. 녹화 테이프도 워낙 많고, 리액션 하나도 장면을 끌어다가 슬로우를 걸고, 자막을 넣어서 만들어 붙이고 손이 많이 간다. 만드는 버라이어티를 하는 다른 방송들도 사정은 비슷할 거다.
이윤화 :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분량이지.

리얼리티를 살리려다 보니 포맷이 일관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김현경
: 멤버들의 개인 스케줄과 제작진, 붐의 스케줄에 더해 게스트의 스케줄도 고려하다 보니 가끔 포맷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도 있다. 이번 주 방송 같은 경우도 여자 게스트와 함께 인지도 테스트를 할 수도 있는 구성이었다. 사정에 따라 유연성 있게 아이템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모토는 가능한 환경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거다.
이윤화 : 사실 국장님도 2년 가까이 보고 있는데 우리 프로그램이 정확히 뭘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시더라. (웃음) 그래도 기본적으로 여자 게스트를 초대하는 것은 가져가려고 한다. 제작진이 개인기를 주문하는 것 보다, 여자 게스트가 출연하고 자연스럽게 멤버들 간에 개인기 경쟁 구도가 형성 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각자의 베스트를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복근을 드러낸다던가 하는 돌발 상황들이 발생하는 거다.

“우리의 주시청층은 오히려 2PM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떴다! 그녀’라는 제목에 대한 강박을 의심할 때도 있다. 예컨대, 외국인 미녀들이 나온 <글로벌 특집>은 무리한 게스트 선정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윤화
: 게스트가 없어서 외국인을 섭외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여자 아이돌과 다른 리액션을 끌어내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건 여고생을 출연시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현경 : 맨날 방송국 대기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만나서 쇼를 진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내 욕심으로는 엄홍길 대장이나 이외수 선생님을 초대해서 어려운 게스트를 대하는 아이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게스트에 변주를 두는 것은 당연하다.
이윤화 : 그리고 팬들의 반응은 안 좋았지만 <글로벌 특집>이 시청률은 잘나왔다. 사실, 팬들은 아이돌이 주인공인 이상 뭘 해도 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팬들의 선호도와 시청률이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팬들의 의견은 듣되, 적당히 필터링 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 시청층은 오히려 2PM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김현경 : 그래서 방송을 보면 아이돌들이 계속 명찰을 달고 나온다. 그리고 화면에도 우영이가 원샷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 하는 우영’하고 형이하학적인 자막을 쓴다. 2PM의 팬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생각하면서 기본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그래서 만드는 우리도 2PM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지만, 그럴수록 거리두기와 낯설게 하기를 해야만 한다. 팬심의 렌즈를 버리지 않으면 방송이 아니라 소장용 영상을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본인들은 실제 누구의 팬인가? 아이돌의 팬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 아닌가.
이윤화
: 전혀 아니다. 나는 외국 가수들을 좋아해서 엠넷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거기서 정작 외국인은 거의 못 봤지.
김현경 : 나는 아이돌 팬이었다. 뉴키즈 온 더 블록! (웃음) 국내 아이돌은 거들떠도 안 봤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이돌이라는 아이템 이외에 다루고 싶은 소재는 무엇인가?
이윤화
: 개그맨들을 좋아해서 그동안 MBC 에브리원에서 <구라데스크>나 <옹달샘 푸로덕숀>의 파일럿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일본 개그에 관심이 많은데, 마네킹 시트콤인 푸콘 가족처럼 특이한 시트콤을 만들어 보고 싶다. 아기들을 데리고 찍어도 좋을 것 같고.
김현경 : 그동안 공중파에서도 활동을 많이 했고, MBC 에브리원은 케이블 이지만 공중파에 가까운 분위기다. 그래서 다음에는 좀 센 채널에서 일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국내 최초 본격 도박 리얼 버라이어티나, 끊임없이 사람들을 열 받게 만드는 앵거 매니지먼트 프로그램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어찌되었건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