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뮤지컬 ‘더데빌’로 돌아온 리사 / 사진제공=알앤디웍스
뮤지컬 ‘더데빌’로 돌아온 리사 / 사진제공=알앤디웍스
잘 하는 것과 새로운 것을 두고 후자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애정과 확신 없이는 힘든 결정인데, 뮤지컬 배우 리사는 과감하게 도전을 택했다. 늘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는 그는 2014년 초연 이후 올해 다시 돌아온 뮤지컬 ‘더데빌'(연출 이지나)로 무대에 오른다.

리사는 그간 ‘광화문연가’ ‘영웅’ ‘레베카’ ‘지킬앤하이드’ 등 숱한 대작으로 관객을 만나며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았다. 2008년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 뒤 올해로 10년 차다. 자신만의 색깔을 더욱 선명히 하며 ‘잘 하는 것’을 택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나치게 강렬해 엄두가 나지 않았던 ‘더데빌’ 속 그레첸과 손을 잡았다. 누구보다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는 고여있지 않고 지금처럼 이렇게 늘 새로운 걸 찾아 나서며 ‘뮤지컬 배우’의 삶을 즐기고 싶다.

10. ‘더데빌’의 무대에 오른 모습이 벌써 기대된다. 사실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 작품인데.
리사 : 초연 때 공연을 봤는데 제안이 와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강렬했고 센 무대였다. 보통 에너지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출연 제안을 받고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정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했고, 사실 강렬하게 느낀 작품이기 때문에 고민 끝에 선택했다. 오랜만에 이지나 연출과 출연하는 배우들과도 호흡을 맞춰보고 싶어 결정했다.

10. 강렬했지만, 그래서 주저한 면이 있었나 보다.
리사 : 보통의 에너지가 아닌 것 같았다. 기존의 강렬한 느낌에 내가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란 걱정도 앞섰고,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다. 숙제는 미리 해놓는 스타일이라 노래를 다 외웠는데, 수정이 거듭돼 당황하기도 했다.(웃음)

10. 이번처럼 세고 강렬한 캐릭터는 처음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더데빌’이 특별할 것 같고.
리사 : 그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스스로도 기대된다. 많이 넓어지고 있지만, 국내 뮤지컬 시장은 여전히 좁다. 그래서 치열하고 좋은 작품들이 올라갈 극장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더데빌’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에만 그칠 작품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실 최근 국내 작품이 해외에 진출하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더데빌’도 적합할 것 같다. 내용 역시 한국인만의 정서가 아니라, 외국 관객들도 충분히 알만한 이야기다. 넘버와 캐릭터 모두 세련됐다. 더 열심히 하고 싶다.

10. 2008년 ‘밴디트’로 뮤지컬 데뷔를 했으니, 어느덧 10년 차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을 것 같은데.
리사 : 워낙 전문가를 믿고 가는 스타일이다. ‘연출이 원하는 게 뭐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가 그리는 숲에서 어떤 나무로 있어야 할까, 어떤 색깔을 원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지금도 변함은 없는데 하면 할수록 배울 게 많다. 초반에는 ‘나’만 생각하기 바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시키는 대로만 열심히 했다.(웃음) 그래서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점도 많았을 거다. 실제로 그랬고. 이해를 한 뒤에 표현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더라도 했으니까 관객들이 봤을 때 이상했을 것 같다. 그땐 180%를 해내겠다는 마음이었다.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10. 시간이 흐른 만큼, 지금은 좀 더 시야가 넓어지지 않았을까.
리사 :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에너지를 쏟다 보면 어디서 힘을 빼야 하고 쉬어야 하는지, 또 어디 장면에서 감동을 받고 어디서 울어야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주목을 받아야 하는 장면들이 보인다. 전에는 하나도 계산이 안됐다. 물론 지금도 모르는 것들이 많고 배울 것이 많지만, 그때보단 시야가 넓어졌다. 마냥 내지르는 것이 아닌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됐다. 조금 보이기 시작한 거다. 욕심은 똑같이 잘하고 싶다. 언제나 잘 하고 싶은데 못해냈을 땐 상처도 받고.

리사 / 사진제공=알앤디웍스
리사 / 사진제공=알앤디웍스
10. 10년이 흘러도 적응되지 않은 순간도 있나.
리사 : 오디션이 그렇다. 집에 가고 싶고, 내가 왜 배우를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오디션을 정말 싫어하지만 봐야 하는 거니까, 어디에 포인트를 두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기준을 몰라서 더 그렇다. 일종의 테스트이니까. 오히려 사람이 많고 큰 곳에선 그러지 않는데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게 훨씬 긴장된다.

10.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고, 항상 당당한 모습만 봐서인지 떠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안 된다.
리사 : 맡겨 주면 어떻게 해서든 잘 해낼 텐데, 그러기 위해서 겪는 과정이 오디션이니까 피할 수가 없지.(웃음) 그땐 나오던 소리도 안 나오고 나쁜 습관만 튀어나온다. 힘들지만 이겨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때는 도전 삼아 오디션을 다 해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오디션 연습이다.(웃음)

10. 공연 전 꼭 해야 하는 의식 같은 것도 있나. 징크스라고 해야 할까.
리사 : 공연 전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공연처럼 해본다. 그런 뒤에 다른 걸 할 수 있다. 그걸 하지 않으면 무대에서 틀릴 것만 같다.

10. 노래가 좋고 무대를 사랑하지만, 매 순간 행복할 수는 없을 거다.
리사 : 아무것도 모를 때는 시키는 대로, 무조건 감사하면서 했다.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한 뮤지컬 배우의 모습이 아닐 때가 있었다. 단 한 번도 뮤지컬을 하고 있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언젠가 그런 순간이 있었다. 여러 복합적인 것이었지만 작품 외적인 요인들에 의한, 무대 아래서 벌어지는 일들 말이다. 예전엔 아마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르다가 눈으로 보게 되니 충격이었다. 좋은 작품을 위해 똘똘 뭉쳐 선의의 경쟁을 하는 건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10. 극복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겠다. 뮤지컬을 사랑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테고.
리사 : 뮤지컬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모두 같이 힘을 합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기쁨,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서 탄생하고, 그 과정이 매번 신기하고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했는데 보이지 않았던 이면에 갑자기 너무 겁이 났다.

10. 잘 극복했으니 계속 무대 위 리사를 볼 수 있는 거겠지.
리사 : 기도를 했고, 돌아가려고 애썼다. 조금은 너그럽게 생각했고, 그게 경험이 돼 이제 뭐든 받아들일 때 좀 더 넓게 보게 된다. 그것 또한 경험이 되는 것 같다. 모든 일들을 통해 배우니까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의 표현력도 풍성해진다. 그럴 수도 있지란 마음도 생기고.

10. 사실 몇 달을 연습하고 공연하며 단체 생활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리사 : 예전엔 쉬는 날도 항상 공연 생각 뿐이었다. 이젠 아니다. 무대를 마치고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조금은 빨라졌다. 그리고 쉬는 날은 온전히 쉰다. 좋은 공연, 컨디션을 위해서는 잘 쉬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잘 쉬는 것이 정말 어려운데, 확실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게 됐다.

10. ‘더데빌’의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고 들었다.
리사 : 이지나 연출과 하면 출연 배우들과 정말 돈독하게 지낸다. 이번 역시 같이 하고 싶은 편안한 배우들만 모여있고, 다들 정말 착하다.

10. 여유가 생긴 건 아마 결혼도 한몫할 것 같다.
리사 : 항상 나를 꾸준하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도 ‘이 사람이 남편이라면 마음이 편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니 정말 든든하고 남편이 또 외조를 잘 한다.(웃음) 뭐든 이해해주고,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감사하다. 나는 성격이 조금 소심한 편인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리를 깔끔하게 해준다. 음료수도 고르지 못해서 한참 걸리는 스타일이다. 매번 둘 중에 뭘 마실까 고민하면 둘 다 시키라고, 그걸 해주는 분이다.(웃음) 모든 사람들이 결혼을 잘 했다고 말해주고, 나 역시도 그렇게 느낀다.

10. 곧 ‘더데빌’로 관객들을 만난다.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리고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가.
리사 : 나에게만 나오는 에너지가 있고, 극중 그레첸과도 잘 맞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공연을 해보면서 찾아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서 기대 중이다. 나오는 캐릭터들이 모두 우리의 모습이다. 가고 싶지만 가지 않아야 하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현재 대한민국을 살고 있다면 더 절실하게 느껴질 것 같다.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 소수의 사람들이 양심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길 바란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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