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김하늘 / 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김하늘 / 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김하늘은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 대본을 읽고 “이건 내가 못하겠다”고 덮어 버렸다. 김태용 감독이 왜 나에게 이런 역을 제안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전혀 자신을 떠올릴 수 없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캐릭터의 울림은 컸다. 김하늘은 그간 드러내지 않은, 자신조차도 낯선 얼굴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너무 비참하면 외면하고 싶은 느낌이 들잖아요. 이 감정을 내가 느껴야 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효주를 연기하면 그 감정을 느껴야 하는데,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하늘은 ‘여교사’에서 계약직 여교사 효주를 연기했다. 효주가 유일하게 기다리는 건 정규직 발령이다. 그러나 그 자리를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이 차고 들어온다. 효주는 작가 지망생으로 빈둥거리는 남자친구 때문에 괴롭고, 계약직으로 온갖 허드렛일을 떠안고 무시를 당한다. 김하늘은 무표정한 얼굴 뒤 들끓는 감정 변화를 심도 있게 그려냈다. 그의 얼굴은 예민하고 서늘했다. 낯설지만 반가운 변화였다.

“시나리오의 감정이 저에게 세게 왔어요. 굴욕적이고 힘들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욕심이 들었어요. 효주에게 연민이 들었고, 안타깝고 불쌍했거든요. 그런 마음이 드니까 이 친구가 돼서 표현을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효주를 연기할 때 배우로서 준비하거나 테크닉은 필요 없었다. 그저 김하늘은 효주를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내가 연기하는 인물을 가장 잘 알고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게 맞다. 효주는 여태껏 내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 가장 최고로 내가 이해해야하고 공감해야하는 친구였다”면서 “첫 촬영 후 스태프들이 박수를 쳐줬다. 그냥 효주 같다고 이야기 하더라. 가만히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었는데, 거기에 내가 아니라 어둡고 낯선 친구가 서 있었다”고 말했다.

“싫은 감정들이 많았어요. 학생에게 욕을 듣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로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고요.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효주는 두 손을 꼭 쥔 채 꿋꿋이 서 있었거든요. 아슬아슬한 느낌이었죠.”

김하늘 / 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김하늘 / 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때문에 ‘여교사’에 대한 편견은 김하늘에게는 아쉽고 속상한 부분이다. 효주는 우연치 않게 혜영과 자신이 눈여겨보던 제자 재하(이원근)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혜영은 효주를 압박하고 재하와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자신의 파멸을 이끈다. 그러나 ‘여교사’라는 제목과 두 여교사와 남학생과의 관계를 다루면서, 영화는 본의 아니게 다른 쪽으로 해석이 되기도 했다.

“대본을 보고 너무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거든요. 그런데 홍보를 하면서 이 제목이 다른 방향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인지하는 순간 저도 우리 영화가 그렇게 보이더라고요. 자꾸 야한 쪽으로만 연관이 되는 게 속상했죠. 제목만 가지고도 외면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영화를 보고 나면 홍보문구인 파격, 문제작이라는 단어가 이해가 될 텐데 말이에요.”

올해로 데뷔 20년차를 맞은 김하늘은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며 ‘멜로퀸’으로 활약했다. 청초하고 청순했던, 데뷔 초의 모습을 거쳐 무르익은 감정과 섬세한 연기로 매 작품마다 그 저력을 발휘했다. 물론 청순만 있던 건 아니다. 밝고 통통 튀는 매력부터 코믹, 스릴러 등 도전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4년 만의 안방복귀작인 KBS2 ‘공항 가는 길’과 ‘여교사’는 배우로서 깊은 감성과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김하늘 / 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김하늘 / 사진=필라멘트픽쳐스 제공
“의도한 거는 아닌데, 지금 제 컨디션이 그래요. 배우로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목이 말라요. 밝은 연기도 즐겁고 좋지만 지금의 저는 뭔가 깊은 감정을 보여주고 싶은 느낌이 강해요. 2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예쁘고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느낌의 연기를 많이 보여줬거든요. 점점 제 이름에 책임감을 느끼면서, 연예계의 선배가 돼가면서 조금 더 용기 있게 연기 스펙트럼을 펼쳐도 되지 않을까 해요. 욕심이 점점 많아지네요.”

그의 선택은 옳았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여교사’ 속 김하늘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공항 가는 길’은 망설이고 우려되는 부분이 컸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작품 속 제 모습을 인정해주고 박수쳐주고 상까지 받게 됐어요.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었어요. ‘여교사’도 시사회 이후 반응이 너무 좋았고요. 이젠 저에 대해 마음을 열고, 조금 더 믿고 작품을 선택해도 되지 않을까 해요.”

김하늘은 최근 영화 ‘신과함께’에 특별출연했다. 데뷔 후 첫 특별출연이다.

“저희 회사 배우가 출연하고 감독님이랑도 알고 있어 촬영을 했어요. 지옥대왕 역인데, 첫 카메오부터 강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요. 어렵지만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저도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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