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송강호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송강호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천의 얼굴.’ 구태의연하지만 이 수식어만큼 송강호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송강호가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 제작 영화사 그림·워너브러더스 코리아)을 통해 혼돈의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을 드러냈다. 송강호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항일과 친일의 경계선에서 고뇌하는 이정출 역을 맡아 연기했다. 생존과 애국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정출은 송강호라는 배우를 만나 시대의 얼굴이 됐다.

“매 작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평가한 김지운 감독의 말처럼 송강호는 이번에도 ‘명불허전’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실제 배역의 얼굴이 되기까지 수없는 노력을 거듭한다는 송강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0. 언론시사회에서 밀정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송강호 : 밀정을 찾는 영화가 아니다. 밀정이라는 단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그 시대의 아픔을 담았다. 그것이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다.

10. ‘밀정’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송강호 : ‘변호인’ ‘사도’ ‘밀정’ 그리고 지금 찍고 있는 ‘택시운전사’까지, 근대사나 사극 등 역사적인 사건을 담은 영화를 이어서 하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배우 송강호가 아닌 자연인 송강호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일부로 그런 작품을 선택한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연기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꽤 많다. ‘밀정’만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 새로운 지점으로 다가왔다. 이정출 같은 회색분자가 어떻게 살아왔고 변화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아픔을 얘기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이 얘기가 처음인지 아닌지 보다 무엇을 얘기하고 어떤 시선이 담겼는지를 주로 본다.

10. ‘밀정’은 ‘암살’과도 비교가 된다.
송강호 : ‘암살’을 재미있게 봤다. 다 친한 배우고 감독이라서 뒤풀이 자리에도 새벽까지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밀정’은 ‘암살’하고 다른 지점이 있다.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이정출로 대변되는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 고뇌하고 갈등하는 수많은 모습을 통해서 그 시대를 표현한 것이 매력적이었다.

10. 이정출은 의열단과 일경 중 어떤 편에 섰는지 미스터리한 황옥을 모델로 한다.
송강호 : ‘밀정’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존했던 인물이고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극적으로 구성했다. 박휘순이 연기한 김장옥의 모델이 된 김상옥 열사는 실제로 천명이 넘는 일경들에게 쫓겼다고 한다. 기와집을 신출귀몰하게 돌아다녔다고 하더라. 그렇게 장렬히 전사했다. 그렇지만 ‘밀정’은 황옥의 일대기를 그리는 영화는 아니다. 그분의 역사적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그 부분은 크게 고민되지 않았다.

송강호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송강호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10. 이정출이 어느 편인지 불확실한 느낌이 들더라.
송강호 : 김지운 감독의 의도적인 장치였다. 이정출이 악랄한 일제 앞잡이로 있다가 어떤 개연성을 띄는 사건을 통해 확 변했다면 이 영화의 매력이 떨어졌을 거다. 다만 이정출은 갈등과 고뇌의 흔적은 계속 남긴다. 일경의 옷을 입고 있지만 인간적인 고뇌를 한다. 그러다 정채선(이병헌)을 만나서 흔들리게 되고 연계순(한지민)을 통해 이정출의 삶이 방향이 정해지게 됐다.

10. ‘밀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송강호 : 서대문 형무소에서 시신을 본 장면. 시신을 끌고 가는 모습을 이정출이 보는데, 김지운 감독의 독특한 회화가 녹아들어있다. 죽어있는 여자의 얼굴을 보여줄 수도 있다. 얼마든지 자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음에도 작은 손을 보여준다. 이는 여성의 손이 아니라 가장 도움을 받아야 하고 잡아줘야 하는 손이 아니었나 싶다. 힘없는 나라의 상징이다. 이정출이 고통스러워한 건 한 사람의 생명보다는 그 작은 손 하나 잡아주지 못한 회한의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10. 이정출이라는 인물을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있다면?
송강호 : 인물 자체가 혼란 덩어리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어떤 장면이든 존재감이 계속 살아 있어야 했다. 캐릭터의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10. 매 작품마다 다른 얼굴이다. 배역의 얼굴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나?
송강호 : 만들어내고 싶다고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내 스스로 젖어 들어간다고 해야 하나. ‘사도’를 결정하고 나서 시간이 두 달 정도 남았는데 겁이 나더라. 왕이라는 캐릭터도 처음이지만 여러 사람이 나와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자지간의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그 자체가 잘 들어오지가 않더라. 후배를 데리고 두 번에 걸쳐서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러 떠나기도 했다. 첫 번째 이후 자신감이 생겼는데 어느 순간 떨어지더라. 그래서 다시 떠났다. 그 작품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영화가 완성될 즈음이면 영화의 분위기가 얼굴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인터뷰②에서 계속됩니다.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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