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터널’ 감독 김성훈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영화 ‘터널’ 감독 김성훈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인터뷰①에서 계속

10. 영화 속에서 다양한 아이러니를 통해 결국 생명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인간의 생명’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김성훈: 가장 큰 계기는 원작이었다. 내가 원작에서 받았던 어떤 힘을 영화화하고 싶었다. 생명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중요함을 간과하고 사는데 박탈되는 순간 끝이지 않나. 또 이 세상에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생명 딱 하나뿐이다. 그만큼 공평하고 그만큼 중요한 건데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또 생명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 그리고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다 사람이 만든 것들인데 되려 못살게 만드는 것도 많은 상황이고.

10. 현실보다 영화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그것에도 영감을 받았었다고.
김성훈: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살인의 추억'(2003)이 있다. 근현대에 가장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한다. 무고한 사람이 경찰한테 잡혀와서 고문을 당하면서 강제로 짓지도 않은 죄를 고백하는 장면이 있는데, “요즘에는 현실이 더 세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런 상황이 2016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2014년에 일어났던 대참사를 떠나, 유럽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들처럼 생명을 경시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계속 일어났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지만 매일 사회면에서 보는 뉴스들이 바로 ‘현실보다 영화 같은 일들’이었다.

10. 생명을 통해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도 얘기했다.
김성훈: 멜로 영화가 위로를 줄 대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코미디 영화도 마찬가지다. 위로를 건넬 방법과 받을 대상은 수두룩한데, 지금 위로 받아야 될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일단 나부터다. 나도 찍으면서 위로 받고 싶었고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상업 영화의 가장 큰 덕목은 재미다. 러닝 타임에만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을 투자해서 보는 거고, 영화관까지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친 것까지 생각했을 때 관객은 당연히 먼저 재미를 느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 영화가 잠깐이라도 지난한 삶이 해소되는 무언가가 됐으면 좋겠다.

내가 유머를 많이 쓰는 편인데, 어떠한 장르가 됐든 유머라는 장치를 계속 쓰고 싶다. 편집돼서 사라진 대사 중에 “말기 암 때 웃음이 암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치유하는 것을 버티게는 해줬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어떤 말기 암 환자가 했던 말이고, 지금은 완치가 돼서 웃음 전도사가 됐다고 하더라. 웃음이 은행 잔고를 채워주지도 않고, 병을 당장 없어지게 해주지도 못하지만, 삶의 순간들을 버티는 힘은 주는 것 같다.

10. 절망을 버티어내는 것은 결국 웃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김성훈: 그렇다. 그런 식으로, ‘터널’이 잠시라도 위안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뙤약볕 아래 그늘처럼 잠시 쉬었다가는 영화였으면 한다.

10.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터널이 무너진다. ‘끝까지 간다’에서도 ‘시작하자마자 시작되는 전개’였다. 이러한 패턴을 좋아하는 이유는.
김성훈: 나도 좋아하는 것 같더라.(웃음) 좋아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은 아니었는데, ‘끝까지 간다’ 이후 ‘터널’ 완성본이 나오고 나니 ‘내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 구나’라고 깨달았다. 이 방식이 맞다고 생각한 거지. 일반적으로 캐릭터의 배경을 그리고 인간 군상이 부딪히다가 사고가 나면 관객들은 이미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에 더 안타까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관객들이 극중 인물들과 함께 당황스러워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사고를 헤쳐나가는 인물을 보면서 보는 이가 그 인물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재밌고 매력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 김성훈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감독 김성훈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강아지 탱이와 하정우와의 ‘케미’가 백미였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건가.
김성훈: ‘터널’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 준 것이 탱이였던 것 같다. 탱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까지 불안했다. ‘터널’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공간도 무겁다. 어두운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톤 앤 매너는 밝게 가고 싶었는데 어떻게 풀어갈 지 고민했었다. 안에 있는 인물과 보는 이 모두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탱이가 떠올랐다. 탱이가 있으면 탱이 주인도 있지 않겠다. 그런 식으로 아이디어가 확장됐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비로소 할 만한 이야기가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10. 탱이 종이 퍼그라서 더 감정 이입이 잘 됐던 것 같다.
김성훈: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 훈련사가 퍼그가 조련이 잘 안되는 견종이라고 했다. 열심히 한탱이한테는 미안하지만 강아지 아이큐 서열에서도 맨 밑단에 있다고 하더라. 또 코가 눌려있는 종이라 계속 킁킁 소리가 나서 촬영장에서 잘 안 쓰는 개라고. 하지만 너무 완벽하게 예쁜 강아지보다는 좀 측은하게 생긴 강아지에게 끌렸다. ‘생긴 것도 억울하게 생겼는데 터널까지 와서 왠 개고생이냐’라는 생각도 떠오르고 쳐다보고 있으면 감정이입이 된다.(웃음) 눈매도 축 쳐져 있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예뻐 보였다. 보고만 있어도 ‘얼마나 팔자가 사나워서 여기 갇혀있니’라는 생각도 들고.

10. ‘터널’을 찍으면서 이것은 꼭 챙기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던 물품이 있다면.
김성훈: 물과 라이터.(웃음) 아, 보조배터리도 세 개씩 챙겨 다닌다. 세 개는 되어야 마음이 편하다.(웃음) 또 멀리 갔을 때 지도 앱이 없으면 끝장이니, 네 개씩 챙겨 다닐 때도 있다. 재난을 당할 일이 있겠나. 나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꿈꾼다.(웃음) 영화를 충청도 옥천과 강원도 영월에서 찍었었는데 강원도 원주지방국토관리청 직원 분들이 재난 안전 의식 고취 차원에서 영화를 단체 관람하셨다고 하더라. ‘터널’을 부정적으로 보실 수도 있었는데 너그럽게 봐주신 것 같다 고마웠다.

10. 최근 가슴을 가장 뛰게 만든 것은.
김성훈: 요즘 내 세상에는 ‘터널’만 있다.(웃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일들을 모른 채로 24시간이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주변, 내 친구들, 내 이웃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항상 관심 있게 보는 편이다.

10. 앞으로의 꿈은.
김성훈: 통일되는 것. 통일이 되면 영화관도 늘어날 거고 영화 산업 자체도 커질 것이고.(웃음)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꿈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보람을 느끼는 일인데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끝까지 간다’도 ‘터널’도 외양으로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기 반성을 많이 하게 하는 작품이다. 배우의 연기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연출자로서 좀 더 탄탄하게 준비할 수는 없었을까, 더 좋은 아이디어는 없었을까라고 되묻는다.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을 조금씩 줄여가면서 영화를 찍고 싶다. 또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나이에 걸맞는 영화를 찍고 싶다. 그러려면 나부터 나이에 걸맞게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겠지.

10. 멜로도 기대할 수 있을까.
김성훈: 멜로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 멜로는 정말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 만들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웃음)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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