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수정 기자]
선율 하나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또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가슴 떨리는 일이다. 댄스, 록, 발라드, R&B, EDM, 힙합 등등 세상엔 정말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발라드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댄스를 들으며 흥을 돋우고, 어떤 이는 힙합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 작곡가가 없었다면 즐기지 못할 일들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곡가들의 세계는 어떨까. 음표를 그리며 감동을 전하는 작곡가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김도훈
김도훈
작곡가 김도훈. 김도훈은 1995년 ‘미세스 뮤직(Mrs. Music)’으로 강변가요제에 입선한 뒤, 1998년 장혜진의 ‘영원으로’ 편곡을 시작으로 본격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 이후 그가 히트한 곡들을 나열하면, 모두 그해의 유행을 책임졌던 메가히트곡들이다. SG워너비 ‘죄와 벌’, 케이윌 ‘가슴이 뛴다’, 이승기 ‘결혼해줄래’, 다비치 ‘8282’, 휘성 ‘위드 미(With Me)’, 백지영 ‘잊지 말아요’, 소유X정기고 ‘썸’ 등 주옥같은 곡을 남겼다. 2014년 국내 음악 저작권료 수입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히트메이커’, ‘저작권료 1위’ 같은 타이틀만으로 히트메이커 김도훈의 역량을 엿볼 수 없다. 그가 만든 곡은 어떤 하나의 장르로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뻗어나간다. 김도훈이 유행을 탄생시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 발 앞선 시야로 메가히트를 만들어 냈다. 단순히 수치가 아닌 노래 속에 문화를 담아내는 김도훈의 능력이다.

작곡가로서 김도훈의 능력은 프로듀서로 이어진다. 그는 현재 기획사 RBW의 공동 대표로서 걸그룹 마마무를 제작해 성공시켰다. 마마무는 최근 정규 1집 ‘멜팅(Melting)’을 발표하고, 음원-음반-음악방송까지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마마무의 성공은 김도훈의 프로듀싱 능력과 RBW의 시스템이 버무려진 결과. RBW는 자신들만의 K팝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개발해 마마무, 브로맨스 등 자사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타사 아티스트들 까지도 ‘OEM 방식’으로 제작하는 독특한 사업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체 프로듀싱팀도 꾸렸다. 이미 정상을 찍은 김도훈이 그리는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10. 현재 RBW라는 회사를 운영 중인데 소속 가수들이 다양해요. 아이돌 마마무, 가수 양파, 래퍼 베이식, 오브로젝트, 보컬그룹 브로맨스 등등이 있어요. 하나로 정의되기 힘든 조합이에요.
김도훈 : 저는 공연을 잘하는 가수를 위주로 하고 싶어요. 베이식, 양파, 브로맨스라는 팀이 있는데 다들 공연 위주의 가수에요. 브로맨스의 경우, 현재 한 명씩 노래를 공개하면서 프로모션 단계인데 올해 중반에 네 사람이 다 같이 나올 것 같아요. 마마무보다 보컬적인 면을 강조한 그룹이에요.

10. 그중 아이돌 마마무가 대중적으로 알려졌어요. 남자 아이돌 제작 의향은 없나요?
김도훈 : 남자아이돌을 준비하긴 해야 하는데, 저는 남자 아이돌은 제작의 최고 고수들이 하는 마지막 단계인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해요. 남자 아이돌은 경제적으로도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고, 팬 관리부터 노하우가 훨씬 많아야 해요. 성공시키는 시간도 오래 걸려요. 여자 아이돌은 조금만 대중을 사로잡으면 반응이 빨리 오는데, 남자아이들은 데워지는 시간도 오래 걸리죠. 대신 남자 아이돌은 한 번 성공시키면, 여자 아이돌보다 많게는 10배 가까이 더 많은 돈을 벌어요.

10. 아이돌은 한 번 성공한 뒤에 그 인기를 지속하는 것도 중요하죠. 오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도훈 : 오래가려면 일단 음악이 좋아야 하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의 영역 안에서 끝없는 변화를 추구해야 해요. 한 가지만 보여주고 있으면 지루하게 생각해요. 빅뱅이 오래가는 이유가 음악적인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이에요. 팬덤뿐만 아니라 대중도 사로잡은 비결이 음악인 것이죠. 30~40대가 빅뱅의 얼굴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잖아요. 이승철 선배님, 백지영, 거미 모두 노래를 잘해서 오래 가는 거예요. 박효신, 나얼 등등을 봐도 기본은 음악이 좋아야 해요.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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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RBW는 자체 프로듀싱팀도 구축하고 있어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김도훈 : 이제는 히트작곡가 한두 명이 지배하지 않아요. 춘추전국시대예요. 싱어송라이터도 워낙 많아져서 스타 한두 명에 맡기기보다 회사 안에 프로듀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힘이 돼요. 가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기획과 음악이 딱 하나가 붙을 수 있어요. 그래야 이번 마마무 같은 앨범도 나올 수 있어요. 기획, 음악, 가사가 한 덩어리가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안에 프로듀싱팀이 있어야 해요. 저는 제가 작곡가로서 활동하고, 뮤직큐브라는 회사도 만들었었으니까 곡 쓰는 친구들을 많이 안다는 제 장점을 살렸어요. 현재 10명 정도 되는 친구들이 있고, 각자 프로듀싱을 하며 아티스트들을 케어하고 있어요.

10. RBW에서 프로듀서를 모으는 기준이 있나요?
김도훈 : 심성이 제일 중요합니다. 음악을 잘하든지,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봐요.

10. 음악을 잘한다는 기준은 뭘까요?
김도훈 : 음악은 되게 쉬워요. 요리에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죠. 이론에 정말 해박한 요리사가 요리하기 전에 막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다 필요 없고 사람들은 그냥 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 알아요. 음악도 뭐가 잘하고, 뭐가 있고 이런 걸 듣는게 아니라 그가 만든 노래를 한번 들어보면 알아요. 노래가 듣기 좋으면 음악을 잘하는 사람인 거죠.

10.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평론가에게 음악적으로 인정받은 음악들도 있어요. 단순히 ‘듣기 좋은’이 아닌 완성도나 작품성의 측면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김도훈 : 대중이 즐기는 그냥 잘 노는 음악이 있고, 상아탑으로 연구하는 분들의 음악이 있어요. 사실 그런 음악이 있으므로 새로운 음악이 나올 수도 있는 거예요.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서로가 다른 분야에서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런 음악을 대중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일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음악이 결국 대중에 영향을 끼쳐요. 그런 실험적인 것이 있어서 음악이 발전할 수 있는 거고요. 정말 음식이랑 비슷해요. 냉면이 어느 집이 맛있다고 해서 유명한 평양냉면 집을 갔는데 일반인들 입에 심심할 수도 있거든요. 똑같아요.

10. 그렇다면 작곡가로서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의 기호를 맞춰야 하는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나요?
김도훈 : 많죠. 제가 나이가 점점 먹으니까 더 그래요. 작곡가에게 수명이 생기는 이유는 좋아하는 게 대중과 달라지면서 생겨요. 내가 좋아하는 그대로 곡을 만드는데 내가 좋아하는 곡과 대중이 좋아하는 곡이 어느 순간 차이가 나요.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음악이 달라지니까 나이가 들수록 차이가 나는 거죠. 소비하는 층은 젊은 층이 많으니까요.

10. 그런 점을 어떻게 극복하나요?
김도훈 : 젊은 작곡가와 공동 작업이나 지금처럼 가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요. 마마무의 경우, 마마무와의 많은 대화를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10. 가수 제작의 뜻을 둔 건 언제부터인가요? 많은 작곡가들이 작곡에서 제작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경우도 많아요.
김도훈 : 한 3~4년이 된 것 같아요. WA엔터테인먼트에서 팬텀을 제작하면서 시작했어요. 보통 작곡가들이 제작으로 이어지는 건 자기 머릿속에서 나온 것을 구현해내기 위해서 시도하는 것도 많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 사실 출발은 등 떠밀려 했어요. (웃음) 입버릇처럼 제작을 안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레인보우 브릿지가 성장하면서 제작의 필요성을 계속 들었죠. 마지못해 시작했어요. 정말 피곤한 일인 것을 알고 있었고, 작곡가로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했어요.

10. 지금은 어떤가요. 마마무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어요.
김도훈 : 지금은 책임감 반 재미 반? 제작을 오래하시는 분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1위를 했다고 걱정이 사라지거나 힘듦이 없어지지는 않아요. 1위의 순간은 너무 좋지만, 다음 1위를 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이 새로 생겨요. 신인 가수는 100위 안, 1등 하는 가수는 1등 못할까 봐 걱정을 해요. 다들 늘 힘들게 살고 있어요. 할 일도 너무 많고. 뭐가 편해지는 것은 없어요.

10. 제작을 시작한 지 3~4년이 됐는데 소속 가수가 많아요. 너무 판을 키우는 건 아닌가 걱정도 들지 않나요?
김도훈 : 하루에도 한 번씩 해요. (웃음) 그래서 시스템을 더 구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SM은 정말 대형 가수들이 많은데도 잘하는 것이 시스템이 좋아서예요. 한 명의 프로듀서가 이끌고 가는 구조보다 프로듀서들이 많고 그 프로듀서를 잘 활용해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로 만들어야 해요.

10. 해외 진출 쪽에도 관심이 많죠?
김도훈 : 중국 진출에 다들 혈안이 돼 있는데 저도 슬슬 알아보고 있어요. 원래부터 RBW가 해외 관련 사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해외 오디션 프로그램도 하고 있어서 조금 더 편안하게 접근 하고 있어요.

10. K팝 작곡가로서 한류의 흐름을 어떻게 보나요?
김도훈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중국의 경제적인 성장속도가 매우 빨라요. 우리가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아래에 있을 때 음악도 아래였어요. 지금은 일본보다 한국 음악이 떨어진다는 이야길 하는 사람이 없어요. 음악이 경제력과 비례를 할 때도 있는 거죠. 중국이 빠른 시간 안에 한국 음악과 비슷해지지 않을까요. 중국 사람들이 한국 음악을 좋아하는 시점 자체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K팝이 중국 진출하는 것에 아티스트를 수출하는 것보다 지금 가진 기술을 수출해서 중국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한국 아티스트를 중국에 직접 진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거기에 대한 움직임을 많이 하고 있어요.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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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드릴게요. 작곡가는 왜 됐나요?
김도훈 : 원래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기타치고, 밴드활동을 했어요.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음악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무작정 뛰어들었어요. 작곡가가 되겠다기보다 노래 잘하는 애들과 모여서 팀으로 앨범을 내야겠다는 꿈이 첫 번째였어요. 그게 잘 안됐어요. 제2방안을 찾은 게 작곡가였어요.

10. ‘히트메이커’란 수식어는 언제부터 붙었다고 생각하세요?
김도훈 : SG워너비 ‘죄와 벌’이란 앨범과 휘성, 거미가 연달아 히트하면서 조금씩 알려졌던 것 같아요.

10.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바뀐 음악색이 혹시 있을까요?
김도훈 : 저는 장르적으로 추구하는 음악은 없고, 한 장르를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도 제일 많이 보는 순위가 노래방 순위인데, 오랫동안 사랑받는 노래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노래방 순위를 보면,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8282’ 같은 노래들이 노래방 차트에 계속 있어요. 대중이 같이 즐기고, 기분 좋은 날 노래방 가서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든다는 게 정말 뿌듯해요.

10. 활동하면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텐데 힘든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나요?
김도훈 : 그냥 친구들 만나고, 수다를 떨고 영화도 보고. 뭔가를 어떤 행동을 하진 않아요. 많이 자기도 하네요. 평범해요. 술은 아예 안 마셔요.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10. 대중음악작곡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점이 있나요?
김도훈 :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대중을 늘 분석하고, 그 사람들의 성향과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고민을 끝없이 해야 해요. 자기가 곡을 주는 직업 작곡가라면 곡을 주는 그 가수에 관한 연구도 충분히 많이 해야 하죠. 곡을 쓰는 사람들이 그런 연구를 많이 하진 않아요. 자기 노래를 불러주는 가수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해요.

10. 김도훈 작곡가의 개인적인 꿈은 무엇인가요?
김도훈 : 꿈은.. 그냥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즐거웠으면,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는 경제적으로 잘 돼야 그게 만족이 돼요. 거꾸로 어떤 숫자를 위해 움직이면 행복을 놓치게 돼요. 행복 추구가 목적이어야 해요. 1이라는 숫자가 중요하진 않아요. 활동하는 순간이 너무 재미있고, 저도 좋고 가수도 좋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10. 김도훈 작곡가에겐 ‘히트메이커’, ‘저작권료 1위’ 등 여러 수식어가 있어요. 훗날 어떤 사람으로 불리고 싶나요.
김도훈 : 어려운 질문이네요. 음… 그냥 ‘프로듀서’요. 프로듀서라고 불리고 싶어요.

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R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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