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사진으로-크랜필드 용마공원 피쳐사진191
메인 사진으로-크랜필드 용마공원 피쳐사진191
(part4에서 이어옴) 밴드해체 후 이성혁은 집에 틀어박혀 1년 동안 작곡에만 몰두했다. 9곡을 담은 데모CD를 만들어 파스텔, 붕가붕가, 루비레코드, 해피로봇, 안테나뮤직 등 서울의 중요 인디레이블에 보냈다.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지만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면서 음악을 포기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기대만큼 실망도 커지면서 스트레스성 위염과 장염으로 무지 고생했습니다.”(이성혁)

크랜필드 결성 초창기
크랜필드 결성 초창기
크랜필드 결성 초창기

곡 만들기 작업을 포기한 이성혁은 비틀즈 곡들을 커버하는 솔로 프로젝트로 ‘비틀즈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커버밴드 시절 다녔던 외국인 라이브 펍 OL55에서 솔로 활동을 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그때의 솔로 프로젝트는 지금도 제 마음 속에서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비틀즈 노래를 30곡정도 커버하니 또 내 음악을 만들고 싶어지더군요.”(이성혁) 커버밴드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외국인 음악친구 ‘댄’이 부산으로 여름휴가를 내려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 음악을 하라고 권유했다.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거처를 구할 돈이 없어 막막했다. 현실은 막막했지만 원대한 음악적 꿈을 키워나갔던 그 때, 이성혁은 절박한 마음으로 대표곡 ‘꿈’의 원형질인 ‘아이 우드 크라이(I WOULD CRY)’란 영어 가사 곡을 만들었다.
크랜필드 피쳐사진27
크랜필드 피쳐사진27
결국 자신의 집에 기거하게 했던 외국인 친구 댄의 배려로 배낭에 옷 몇 벌과 기타 하나를 달랑 메고 무작정 상경을 했다. “그때가 27살인 2010년 여름이었습니다. 집세와 밥값을 댄이 해결해주었는데 왕십리 그의 집 근처에 있던 순대국 집에서 서빙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이성혁) 2010년 겨울, 약간의 돈을 마련한 이성혁은 집값이 저렴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5평 정도의 작은 원룸을 구해 독립했다. 먹고 살기위해 1년 동안 서점과 영어교제 판매 샵에서 일을 하면서도 창작 작업은 절대로 놓지는 않았다. 정규앨범의 모티브가 된 ‘모래의 성’, ‘환상의 밤’은 그때 만든 노래들이다.
크랜필드 피쳐사진12
크랜필드 피쳐사진12
창작해둔 3곡으로 활동을 시작할 마음으로 밴드멤버 구인 공고 포스터를 300장을 제작해 홍대 주변의 모든 대로변과 골목골목에 붙였지만 단 한 명의 연락도 오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밴드 해체 후 소원했던 정광수에게 연락을 했다.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던 광수와는 화상채팅을 하면서 관계가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새로 만든 곡을 들려주며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려 하는데 멤버를 구하지 못해 포기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 친구에게 차마 도와달라는 말은 못하겠더군요.”(이성혁)
크랜필드 결성 초창기 공연모습
크랜필드 결성 초창기 공연모습
밴드 재결성을 갈망하는 이성혁의 말에 정광수는 고민을 했다. “저는 밴드 활동 자체에 대한 욕망보다는 다시 친해진 성혁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솔직히 이전에 만든 데모CD는 별로였는데 새로 만든 노래들을 들어보니 가능성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피우지도 않던 담배를 하루에 반 갑씩 피워가며 다시 음악을 할 것인지를 고심했죠.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밴드를 다시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지금의 결정이 훗날 제 인생에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정광수) “저도 소식을 전해 듣고 고민을 했습니다. 밴드해체 당시에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지 못했던 것에 대해 늘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저를 밴드의 드러머로 써주지도 않는 상태에서 이번에 하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 다시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지수현)
크랜필드 피쳐사진25
크랜필드 피쳐사진25
절박한 심정으로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2011년 12월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홍대 앞 오렌지 합주실에서 첫 연습을 시작한 이들은 밴드이름을 ‘크랜필드’로 정해 라이브클럽 씨클라우드에서 첫 공연을 했다. 2012년 5월, 자체적으로 200장을 제작한 4곡의 창작곡을 수록한 데뷔EP ‘밤의 악대’를 발표했다. “밤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타이틀을 ‘밤의 악대’라 정했는데 ‘악대’라는 표현도 왠지 원초적인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 음반은 공식 유통은 하지 못했고 공연장에서만 판매했습니다. 일단 수록곡이 적었고 연주, 노래 모두가 엉망인지라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지인들에게 선물로 뿌렸습니다.”(이성혁)
크랜필드 피쳐사진29
크랜필드 피쳐사진29
왠지 사운드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어 인터넷 사이트 ‘뮬’에 기타리스트 구인광고를 올렸다. 3명의 지원자 중에서 유일하게 찾아온 김민환을 영입해 크랜필드는 4인조 라인업을 구축했다. 처음으로 쌈지사운드페스티발 숨은고수 오디션에 출전했다. 음원심사는 통과했지만 실연에서 탈락했던 그때, 지금의 소속사 대표인 쿵짝쿵짝연구소 송대현대표가 이들의 음악에 관심을 표명했다. 내친김에 두 번째로 도전한 EBS 스페이스 공감 헬로루키 오디션에서 도 탈락한 후 멤버들은 음악내공을 더 키워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크랜필드 피쳐사진22
크랜필드 피쳐사진22
“2012년 10월 헬로루키 공개 오디션에서 탈락의 고배와 함께 심사위원들의 엄청난 혹평을 들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정규앨범 작업에 몰두했죠.”(정광수) 2012년 11월부터 활동을 중단하고 정규앨범 제작을 위한 곡 창작 작업에 들어갔다. 반년의 시간이 흐른 2013년 5월, 11곡의 데모CD를 완성했다. 들뜬 마음으로 여러 인디레이블에 보내고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역시나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마지막 사진으로-크랜필드 용마공원 피쳐사진197
마지막 사진으로-크랜필드 용마공원 피쳐사진197
자포자기 심정으로 또다시 자체제작을 시도해 보았지만 힘들었다. 정규앨범 제작은 앞이 보이질 않았다. “앞일이 캄캄하더군요. 오디션은 다 떨어지고 반년 동안 열심히 매진했던 정규앨범 제작도 난항에 부닥치면서 스트레스가 엄청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정규앨범 제작과정동안 멤버들끼리 엄청 싸웠습니다, 결국 새로 영입했던 기타리스트는 그만뒀고 제작비도 충당 못하는 막다른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지수현)(part6로 대단원)
크랜필드 피쳐사진8
크랜필드 피쳐사진8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크랜필드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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