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01
이토록 고난받는 캐릭터가 또 있었을까. KBS2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 왕봉(장용)네 집 둘째 딸 왕호박 역을 맡은 이태란에게는 연기하는 매 순간이 고통이고, 시험이다. 맏딸 수박(오현경)만을 바라보는 엄마 이앙금(김해숙)의 편애와 시어머니 박살라(이보희)와 시누이 허영달(강예빈)의 구박, 그리고 아이처럼 철없는 남편 허세달(오만석)의 불륜에 호박이네 가정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거의 매회 눈물신이 있어서 연기하기 정말 어려워요. 아무래도 평상시에 웃고 있다가 갑자기 감정을 잡기가 어려워서 요즘엔 개인 시간에도 그런 감정선을 잃지 않으려 노력 중이에요. 정말 우울증이 올 지경이라니까요(웃음).”

자매간의 편애와 시댁 식구들의 구박, 철없는 남편 등의 문제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그 세기가 보통이 아니다. 이태란은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일반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며 “아무래도 드라마이기에 좀 더 과장되게 표현하는 부분도 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당해보지 않은 일들을 연기로 표현해내는 일”이라고 답했다.

특히 최근 남편 세달은 시청자들의 공분 대상이 된 지 오래지만, 정작 당사자인 호박은 그를 붙잡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애처로움을 넘어 답답함까지 느끼게 했다. 이에 이태란은 “호박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다”며 “호박의 복잡한 내면을 연기로 잘 풀어내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고 전했다.

“호박이 성격이 원래 그래요. 남들이 보기에는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정작 본인은 서러움은 속으로 삭인 채 ‘모두 내 잘못이다’고 이야기하고 말죠. 처음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성격이었지만, 이제는 나름의 방식대로 호박이를 이해하게 됐어요. ‘언젠가는 호박도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을 거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맞은 거다’고 생각하는 식이죠.”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정의 폭발에 지칠 법도 한데 이태란은 세달로 인해 내제된 문제들이 한꺼번 터질 때를 대비해 감정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세달과 미란(김윤경)의 불륜이 끝나고 엄마 앙금과 소원해진 관계가 회복되려면 또 한 번 거센 폭풍이 몰아치겠죠(웃음). 지금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를 표현해내야 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지만, 이번 기회에 호박이를 잘 연기해서 ‘이태란 정말 연기 잘한다!’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웃음).”

이어 그녀는 “호박이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마냥 철없는 줄 알았던 세달이 앙금을 찾아가 호통을 친 것과 미란과 세달의 불륜을 눈치챈 수박이 미란에게 ‘물 따귀’를 날린 것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며 “자신도 ‘왕가네 식구들’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물론 사는 동안에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요. 그래도 호박이가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참고 인내하는 것처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마음으로 ‘왕가네 식구들’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