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감독
김주환 감독
“술 많이 마셨죠.”(웃음). 그는 홍보맨이다. 아니 홍보맨이었다. 국내 메이저 영화 투자배급사 중 한 곳인 쇼박스 홍보팀에서 수많은 영화를 만났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속속 경험했다. 매번 누군가의 작품을 ‘최고’로 만들어 내는데 힘을 쏟았다. 이번에 그가 내놓은 작품은 ‘코알라’다. 중요한 건 이 영화를 단순히 홍보하고, 투자 배급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었다는 점이다. 영화를 홍보하고, 투자 기획 개발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게 그의 목표였다.

메이저 영화사 직원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거나 혜택을 받은 건 없다. ‘코알라’의 투자 배급도 쇼박스가 아닌 다른 영화사다. 취미로 만든 건 더더욱 아니다. 오로지 시나리오만 가지고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 또 제목이 ‘코알라’라고 해서 동물을 내세운 영화는 아니다. 만취한 사람을 일컫는 ‘꽐라’의 변형 정도로 이해하면 좋다. 실제 영화에서도 술 마시는 장면이 가득하다. 홍보맨과 술, 떼려야 뗄 수 없으니 참 자연스럽다. 그리고 영화사 배경은 아니지만 곳곳에 자신을 투영했다. 그동안 남의 영화를 만들고, 알리는데 주력했던 쇼박스 직원이 아닌 감독 김주환이 풀어놓은 자신의 이야기다.

Q. 먼저 ‘꽐라’와 ‘코알라’를 연결한 제목이 인상적이다. 실제 코알라가 먹는 유칼립투스에 알콜 성분이 많나.
김주환 감독 :
생태계에서 유칼립투스를 먹는 게 코알라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유칼립투스는 칼로리가 굉장히 적다. 이 때문에 코알라는 칼로리 소비를 덜 하기 위해 종일 자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나이가 어린 여자들은 ‘꽐라’라는 말을 잘 모른다. 실제 술자리에서 ‘꽐라 된다고 그만 마셔’라고 하니까 ‘무슨 코알라가 되느냐’고 하더라.(극 중 실제 대사로도 사용됐다.) 그런 것들이 결합했다. 또 홍보 마케팅 부서에 있었던지라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고민했다. 이 제목이 나오는 순간 시나리오를 제대로 쓰게 됐다. 마케팅의 필요에 따라 제목을 바꾸기도 하지만 좋은 영화는 제목과 시나리오가 같이 간다.

Q. 정말 술 마시는 장면이 참 많긴 하다.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술 마시는 행위 자체에 많은 의미 부여를 했다.
김주환 감독 :
개인적으로 홍보팀을 하면서 많이 마시기도 했지만, 우리나라가 기본적으로 술을 많이 마신다. 한도 많고, 스트레스도 가득한 것 같다. 그리고 술은 혼자보다 같이 먹을 때 행복하다.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고, 고단한 하루를 버티고. 이런 게 척박한 자본주의 사막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오아시스가 아닌가 싶다.

Q. 조지타운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와는 무관했는데 영화감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언제부터인가. 그리고 곧장 감독 준비가 아닌 쇼박스에 입사한 이유도 궁금하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김주환 감독 :
딱히 부모님이 좋아하는 걸 해드린 게 없으니까 학교라도. (웃음). 아버지께서 과묵하신 편인데 (아들이) 클린턴 나온 학교에 들어갔다고 자랑도 하시고 하나 보더라. 사실 캘리포니아에 작은 학교가 있는데 여길 졸업하면 대부분 디즈니를 간다. 차마 넣을 수 없었다. 계속 그림을 그렸는데 그때 거기에 갔다면 지금쯤 만화를 그리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인문학이 배경인데 멀리 돌아왔지만 조금씩 그것들이 오는 것 같다.

Q. 언제부터 영화에 꿈을 꿨나. 어떤 계기가 있었나.
김주환 감독 :
영화 보면서 뭔가 많이 얻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컸다. ‘굿 윌 헌팅’, ‘여인의 향기’, ‘제리 맥과이어’ 등을 보면서 외롭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애착이 생겼다. 보는 걸로 만족할 수 없고, 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Q. ‘코알라’는 언제부터 준비를 시작했고, 촬영은 어떻게 했나.
김주환 감독 :
1년 6개월 정도. 회사도 다녀야 해서 후반 작업은 거의 주말에 했다. 주중에 생각하고, 주말에 작업하고.

김주환 감독
김주환 감독
Q. 굉장히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감정의 파고가 심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떻게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나.
김주환 감독 :
홍보팀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사를 많이 읽게 된다. 그러다가 눈에 띄었던 게 평생 일하며 모았던 퇴직금으로 뭔가 창업을 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를 보게 되는 경우다. 내게 창업은 영화를 만드는 거다. 내 영화를 만들 것인가, 위험 요소를 어떻게 헤쳐나갈 건가에서 시작해 이런 이야기로 발전, 구성됐다.

Q. 비루한 인생들이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계속해서 꿈만 꾸는 청춘들이다. 메이저 영화사에 근무하는 사람과 영화의 이야기, 뭔가 이질적으로 보인다.
김주환 감독 :
외피만 봤을 때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고민과 갈등은 똑같다. 경제적으로도 비슷한 입장이다. (웃음). 피부와 와 닿았던 지점들이 분명히 있었다.

Q. 영화 자료를 살펴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돼 있더라.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김주환 감독 :
두 가지 정도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 극 중 동빈(박영서)이란 인물이 갖는 딜레마는 내 것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동빈은 주말에 창업을 위해 시간을 썼고, 나는 시나리오를 썼다. 물론 나는 아직 회사에 있지만 동빈은 박차고 나갔을 뿐이다. 그런 꿈들이 분출된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창작 여정의 공통점이다. 햄버거를 만드는 게 영화와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영화팀에 있으면서 스토리 기획, 개발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 과정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햄버거 역시 처음에는 남의 것 빌려서 하고, 그다음으론 빌리지 않고 스스로 만들고, 마지막엔 오리지널리티를 갖게 된다. 이들의 햄버거 가게는 결국 폐업하지만, 그래도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는 구축했다. 그런 점이 흥미로웠다.

Q. 참, 햄버거 가게. ‘버거보이’란 상호는 직접 지은 건가.
김주환 감독 :
알고 지내던 형 가게인데 이름을 ‘버거보이’로 바꿨다. 인테리어도 다시 했고. 상호를 ‘버거보이’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디즈니 캐릭터는 철자를 반복해서 쓴다더라. 예를 들면 미키 마우스는 M-M, 도널드 덕은 D-D. 그래서 버거보이, B-B로 했다. 지금도 버거보이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메뉴는 다르지만.

Q. 그런데 회사에 다니면서 영화를 만들지 않았나. 죽자사자 해도 쉽지 않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사 직원이 아닌 영화감독으로서 믿음도 줘야 했을 텐데.
김주환 감독 :
사실 영화 찍을 때 사표를 냈다. 이 영화를 온전히 만드는 게 꿈이기 때문에 나가겠다고 했는데 안 받아주고, 대신 두 달의 시간을 줬다.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단순히 감독이란 걸로는 안 되고, 정확하게 알고, 설명해야 했고, 확신이 있어야 했다. 중요한 건 디렉팅이었다. 송유하 씨는 워낙 친해서 부탁하면 어떻게든 시늉이라도 할 텐데 박영서 씨는 캐릭터의 감정을 잘 알고, 얘기를 해줘야 했다.

김주환 감독
김주환 감독
Q.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나.
김주환 감독 : 현장이 되게 무서웠다. (영화사 직원이 감독한다는 게) 무시 받을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초반에 잘 소통해야 했고, 현장 스태프들이 너그럽게 잘 도와줬다. 비용을 제대로 준 것도 아니고, 현장 상황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기억에 남는 건 햄버거 230개 만드는 신이었는데 가짜로 찍기 싫어 100개 이상은 만들고자 했다. 스타일리스트도 햄버거 만들고. 다들 고생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이 아니라서 좋은 것 같다.

Q. 박영서, 송유하, 박진주는 원하는 캐스팅이었나.
김주환 감독 :
우여곡절은 상당했다. 영서 씨와 유하 씨는 딱 원하는 배우였는데 여배우는 처음 함께 했던 배우와 마음이 맞지 않아 중간에 이별했다. 그러다가 박진주라는 보석 같은 아가씨가 뚝 떨어졌다. 이 세 배우는 아무런 디렉션이 없어도 (영화처럼) 그렇게 논다. 물론 처음에는 아니었는데 같이 밤새고, 라면 같이 먹고 붙어 다니면서 가까워졌다. 10년 뒤 영화를 봤을 때 갈등이 많았다면 좋은 평가를 받았어도 그게 먼저 생각날 수도 있다. 그런데 행복하고, 좋은 추억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온전한 내 영화가 됐다는 생각이다.

Q. 현장에서 배우들을 매만지는 건 감독의 능력인데, 세 배우를 어떻게 캐릭터로 만들어 갔나.
김주환 감독 :
진주 씨는 그냥 뒀다. 딱히 모델이 되는 캐릭터도 없었다. 처음 몇 마디 나누고, 크게 잡아주기만 했다. 늦게 들어왔는데도 (캐릭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유하 씨는 캐릭터 만들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했고, 그러면서 (송유하의 모습을) 많이 훔쳐왔다. 영서 씨는 내 페르소나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나를 존중해줬다. 친구이기도 했고. 1년 동안 같이 있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친구란 이런거야라고 직접 보여준 것 같다. 그걸 받아들이고, 이해했던 것 같다.

Q. 그런데 쇼박스란 타이틀 때문에 이런저런 오해를 받기도 했겠다.
김주환 감독 :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한다는 걸 알고 있다. 독립영화 친구들도 있고. 쇼박스가 배급했다면 그런 시선이 더 뚜렷했을 거다. 또 시나리오로만 평가받으려고 노력했다. 온전히 이 영화로만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시간을 아껴가면서 살았다. 그거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있다.

Q. 어찌 됐던 쇼박스에 있으면서 수많은 영화의 탄생 공정을 지켜본 게 도움이 된 측면도 있을 것 아니냐.
김주환 감독 :
회사 경험이 도움됐던 건 맞다. 물론 약간의 괴리감도 있다. 쇼박스에서 하는 방법론을 적용하진 않았지만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이란 게 있다. 가령 노출이나 자극적인 거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상업영화가 가져가야 하는 상업적 웃음이나 재미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영화에 담을 수 있었다.

김주환 감독
김주환 감독
Q. 회사 동료들은 영화를 본 뒤 냉정하게 얘기하던가. 다른 영화를 볼 땐 엄격할 거 아니냐.
김주환 감독 :
시사회 때 내 친구 뒤에 동료들이 앉았는데 친구 말로는 뒤에서 되게 웃었다고 했다. 그리고 영화가 별로면 ‘고생했다’ ‘수고했다’ 그런 말을 할 텐데 그냥 씩 웃는 거다. 그 웃음의 의미가 ‘이 새끼 봐라’, ‘나쁘지 않다’ 뭐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니까. 아직 나한테 가혹하지 않은 것 같다. (웃음).

Q. 앞으로도 쇼박스를 계속 다닐 생각인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정작 제대로 된 토끼 한 마디로 못 잡는 거 아니냐.
김주환 감독 :
잘 모르겠다. 회피적인 답변인데 시장의 손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누가 어떻게 손을 내미느냐, 또는 회사에서 수용할 수도 있고. 뭐가 됐든 내 힘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Q. 쇼박스에서 직접 투자 배급하는 영화를 할 수도 있다는 건가.
김주환 감독 :
작품성과 대중성을 가져가려고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회사에 검토를 부탁한 시나리오는 없다. 그리고 뭔가 색이 뚜렷해야 하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

Q.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김주환 감독 :
투자팀에서 일하면서 배운 건데 규모에 맞는 영화를 하려면 돈을 잃지 않는 영화를 해야 한다. (웃음). 만약 2억을 주고, 영화를 하라고 하면 ‘힐링’이 되는 영화를 하고 싶다. 그렇다고 상업적인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경험이 많고, 생각이 많아야 단단한 게 나온다는 거다. 기회를 준다면 멋있는 액션 스릴러를 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코알라’는 ‘가능성은 있는 아이’라는 걸 보여준 것 같다. 지금도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드라마는 아닐 것 같다.

Q. 이야기는 주로 어디서 찾나.
김주환 감독 :
거의 모든 것에서 나온다. 드라마는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지금까지 다양하게 살았고, 액션 스릴러 좋아하는 게 살아온 환경 속에 액션과 스릴이 있었다. 조지타운 대학교 나왔는데 2001년 911테러 때 펜타곤이 터지는 걸 직접 봤다. 학교에서 가시거리 안에 있어 연기가 올라오는 걸 봤다. 또 아랍계 저격수의 무차별 사격으로 10명가량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도시 안에 있었던 공기도 직접 마주한 적도 있다. 통역장교로 이라크 전쟁 파병 경험도 있다. 당시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과 공기를 직접 느꼈다.

Q. 감독으로서 추구하는 바나 갖춰야 할 게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주환 감독 :
규모보다는 리얼리티가 있는 게 좋다. 액션도 ‘스카이폴’ 같은 게 좋다. 그게 내 성향이다. 무엇보다 이야기에 맞게 주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샘 멘더스 감독을 좋아하는 데 그 감독은 영화에 맞게 자신을 변형시키는 감독인 것 같다. 물론 밑바닥에는 좋은 철학이 있겠지만. 이번에도 2.35대1로, 정말 영화적으로 찍고 싶었는데 막막하더라. 여전히 공부할 게 많고, 갈 길이 먼 것 같다. 계속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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