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룡: “제 연기 인생은 큰 봉우리의 7부, 8부 능선에 와있는 게 아니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길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고지전>처럼 6~7번째 서열이라도 배역이 좋다면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 배우들은 주연을 한 번 하면 조연을 안 하려는 풍토가 있는데 참 이상해요. 저는 오래갈 거예요. 가을에 핀 꽃처럼 말이죠.”
류승룡,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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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류승룡이 5년간 몸담은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제작자.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인 류승룡은 졸업 후 동랑레퍼토리극단의 멤버로 활약한다. 인생의 첫 터닝 포인트는 1997년 미국 뉴욕에서 찾아왔다. 뉴욕 라마마 극장에 전위극 <두타>가 초대받아서 공연하러 갔다가 거기서 <스톰프> <튜브> 같은 비언어극을 보고 매료된 것. 운명이었을까. 마침 국내에서 송승환 대표가 <난타> 1기 멤버를 뽑는 오디션이 진행 중이었고, 류승룡은 극단을 떠나 <난타> 원년멤버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이후 류승룡은 <난타>의 핵심 멤버로 전 세계를 누비며 “호흡과 템포, 순발력, 타이밍 맞추기”등 연기에 필요한 여러 내공을 쌓는다. 하지만 류승룡은 <난타>에서의 5년을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았던 시기”로 기억한다. 성공에 대한 자신감은 얻었지만, “사회, 사람 관계 등에서 오는 불합리한 것들을 뼈저리게 깨달은 시기”도 이때이기 때문이다. 특히 “창조. 창의 같은 어마어마한 자산들이 서면화 된 계약서가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값어치를 못 받는 현실”에 류승룡은 적지 않게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류승룡이 <난타>를 떠난 결정적인 이유는 매너리즘에 대한 경계였다. “예술인이 점점 안정적인 생활에 길들여져 기술인이 되가는” 걸 느낀 류승룡은 고정수입이 보장됐던 <난타>를 접고 연극무대 돌아온다.

장진: 서울예대 연극과 1년 선배이자, 류승룡과 여러 작품을 함께 한 감독이면서, 류승룡이 과거 소속돼 있던 ‘필름있수다’의 대표. <난타>를 그만 둔 후 류승룡은 장진을 불쑥 찾아가 “나 연기하고 싶다. 말 좀 하자”고 했다고. 장진은 류승룡에게 영화 <아는 여자>의 은행털이 단역을 줬고, 류승룡은 드디어 영화배우라는 수식어를 단다. 그때가 류승룡 나이 35세. 잘 알려졌다시피 <아는 여자>의 주인공 정재영은 류승룡의 대학동기이기도하다. 류승룡이 단역을 시작할 무렵 동기들은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그는 무명시절이 길었던 탓에 화려하기로 유명한 서울예대 90학번 라인(안재욱, 황정민, 신동엽, 정재영 등)에서 다소 소외 받아야 했다. 자존심에 생채기가 난 그를 다잡아 준 건, 서울예대 은사인 김효경 교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로 스타덤에 오른 동기 안재욱과 같은 연극에 출연하게 된 무명의 류승룡에게 김 교수는 “너는 대기만성 형이다. 봄에 피는 꽃이 있지만 가을에도 꽃이 핀다. 배고프더라도 40대 초반까지 연기만 하라”고 충고한다. 그날 이후 류승룡은 상대평가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영양가 없는 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고.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스타의 무명시절.

유해진: 전위극 <두타>를 함께 한 배우. 조치원 비데 조립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우정을 다지기도 한 사이. 무명시절 류승룡은 쉬는 날이면 무조건 아르바이트를 했다. 족발배달, 실내 인터리어, 가락시장에서 배추 나르기, 자동차 세차 등을 하며 류승룡은 생계유지 뿐 아니라, 다양한 인생경험과 배우로서의 자양분도 얻는다. 경제관념이 투철하고, 머리가 비상해서 “장사를 했으면 크게 성공”했을 거라고 말하는 류승룡은 실제로 아이디어 넘치는 사업(?)을 통해 적지 않은 돈을 벌기도 했다. 이를테면 “제주도에 갈 일이 생기면 원가 1, 500 원짜리 방패연 100개를 이민가방에 챙겨 간다. 신혼부부들이 많이 오는 성산일출봉에 가서 그들로 하여금 직접 소원을 쓰게 한 다음에 소원이 적힌 종이를 연에 끼워 날린다. 연이 날아가면 신혼부부에게 가위로 직접 자르게 한 다음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딱 찍어서 3만원을 받는” 방식으로 하루에 300만원을 번적도 있다. 류승룡이라는 배우가 사업에도 소질이 있음을 보여주는 무용담.

이민호: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 함께 출연한 배우. 그리고 류승룡의 첫 멜로 상대. 장진 곁을 떠난 후 류승룡은 <천년학> <황진이> <열한번째 엄마> 등에서 연거푸 ‘나쁜 남자’ 역할을 맡는다. “강한 캐릭터를 많이 해서 성격도 셀 거란 집단 선입견이 있다”는 그에게 변신의 장이 되어 준 건 드라마다. MBC 드라마넷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에서 따뜻한 인간미와 대쪽 같은 심성을 지닌 총순 강승조를 연기하며 ‘집단 선입견’에 반기를 들었을 뿐 아니라, 마니아 팬도 얻는다. 류승룡이라는 배우를 대중에게 조금 더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은 MBC 드라마 <개인의 취향>. 이민호의 <꽃보다 남자> 이후 1년만의 컴백작으로 주목받았던 <개인의 취향>에서 류승룡은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섬세한 게이로 변신, 예상을 뒤엎는 반전의 연기를 선보인다. 이민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살포시 가리는 모습은 <개인의 취향> 팬들 사이에서 지금도 화자 되는 명장면. 이때 “팬카페 남자 회원수도 증가”했다고.

장성기: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연기한 캐릭터. <개인의 취향>에서 희화화되거나 정형적이지 않은 성소수자 캐릭터를 선보였던 류승룡은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또 한 번 ‘기존에 본 적 없는’ 카사노바 캐릭터를 창조한다. 잘 생긴 것도, 몸이 좋은 것도, 머리가 작은 것도 아닌 남자가 전 세계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는 설정은 자칫하면 유머로 비춰질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류승룡 특유의 섬세한 연기를 거치며 캐릭터는 설득력을 얻는다. 이후 류승룡은 장성기 캐릭터를 이용해 CF에서 “맛의 올가미! 맛의 덫! 맛의 감옥!”과 같은 코믹한 모습을 연이어 보여줬는데, 그럼에도 배우로서의 진중한 이미지가 위협받지 않는다는 게 특기할만하다. 진지한 연기와 코믹한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가고, 또 그것을 관객들이 부담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건, 일찍이 송강호가 보여줬던 재능이다. 류승룡이 하정우, 김윤석과 함께 충무로 신트로이카로 꼽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

민규동: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연출자. 전무후무한 카사노바 캐릭터 장성기를 탄생시킨 1등 공신은 분명 류승룡이지만, 그것이 가능케 판을 깔아준 건 민규동 감독이다. 무뚝뚝하고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중년배우에게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역할을 덜컥 맡기는 건, ‘꽃미남 배우’가 맹신 받는 영화 비즈니스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일. 실제로 민규동 감독이 류승룡을 캐스팅 하겠다고 공표했을 때 주변에서 여러 반대가 뒤따랐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미처 모르는, 이를테면 “섬세하고, 부드럽고, 대화 속의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내는 류승룡의 실제 모습을 사용하고 싶었”던 민규동 감독은 류승룡에게 “호나우두의 허벅지, 양조위의 눈썹” 같은 단어를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내며 캐릭터를 완성시켜 나갔다. 류승룡 전성시대, 혹은 ‘더티 섹시’의 서막.

이병헌: <광해, 왕이 된 남자>에 함께 출연한 동갑내기 배우. 류승룡의 최근 행보에서 놀라운 건, 매 작품마다 전혀 다른 톤의 연기를 선보인다는데 있다. 가령 <내 아내의 모든 것>과 <광해, 왕이 된 남자>와 <7번방의 선물>의 연기 톤은 같은 배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다. 세 영화가 불과 1년 사이에 개봉했다는 점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류승룡이 배우로서 지닌 미덕 중 하나는 작품 안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최적의 포지션을 살피고, 신경 쓴다는데 있다. <광해, 왕의 된 남자>는 그런 류승룡의 특성이 도드라지게 드러난 작품. 극중 ‘킹 메이커’ 허균을 연기한 류승룡은 카메라 중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이병헌이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병헌의 1인 2역 연기는, 반대편에서 절제의 미를 발휘하는 류승룡으로 인해 더 돋보일 수 있었던 게 아닌지. 그가 차기작 <명랑, 회오리 바람>에서 선택한 역할 역시 ‘충무공 이순신’(최민식)이 아닌 이순신과 대적하는 일본 해적왕 이라는 걸 생각하면, 작품의 비중에 연연하기보다 캐릭터의 쓰임에 집중하는 류승룡의 면모는 더욱 확실하게 읽힌다. (다른 의미에서) 진정한 ‘킹 메이커’라 할 수 있는 이유.

류승룡의 아내: 류승룡이 인생 최고의 운명이라 부르는 사람. 류승룡은 <난타> 고정 수입이 끊긴 무명시절 아내와 결혼했다. 류승룡에게 아내는 “아무 것도 없던 시절에도 자신을 사랑해주고 아껴준” 든든한 버팀목이자 조언자다. 그가 <난타>를 그만두고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갈 수 있었던 데에도 아내의 응원이 큰 힘을 차지했다고. “TV 리포터로 활동하던 아내”는 류승룡에게 “내가 뒷바라지 할 테니 더 늦기 전에 연극을 하라”고 독려했고, 남편이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섬세하게 내조했다. 류승룡이 인생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으로 “가정의 행복”을 꼽고,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으로 “직업이 배우인 행복한 가장”을 얘기하는 이유.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는 카사노바 역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애처가라는 (불편하지 않은) 진실.

용구: 류승룡이 <7번방의 선물>에서 연기한 6세 지능의 ‘딸바보’. <최종병기 활>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의 3연 타석 안타로 류승룡은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가 됐다. 하지만 <최종병기 활>에는 박해일이 있었고, <내 아내의 모든 것>에는 임수정?이선균이 있었으며, <광해, 왕이 된 남자>에는 이병헌이 있었다. 앞선 세 작품으로 류승룡 개인의 흥행파워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게 사실. 그런 면에서 그의 첫 단독 주연작 <7번방의 선물>의 1,000만 관객 돌파는, 류승룡이 연기뿐 아니라 흥행에서도 경쟁력을 지닌 배우임을 확실하게 확인시켜주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류승룡에게 각별한 건 흥행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관객의 신뢰를 받는 배우라는 걸 증명해 보였다는데 의미가 깊다. 엄밀히 말해 <7번방의 선물>은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영화 곳곳에 신파적 요소가 침투해 있고, 사건 전개도 전형적이며, 캐릭터도 단선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치명적인 약점들은 류승룡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많은 부분 상쇄된다. 배우의 연기가 영화 한편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증명해 보인 대표적인 예. 그렇게 류승룡은 “너는 대기만성 형”이라 했던 은사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확인해 나가는 중이다.

Who is next

류승룡이 <열한번째 엄마>에서 함께 연기한 김혜수

글.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편집.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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