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유재선 감독/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엄태화-유재선 감독/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좀처럼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 단비 같은 새 얼굴의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 '잠'의 유재선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먼저 엄태화 감독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평단과 대중의 박수를 받고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자극하는 스토리와 그 안에 담긴 날카로운 메시지로 세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강렬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가치는 해외 영화계에서 먼저 알아봤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152개국에 선판매를 기록한 데 이어 엄태화 감독과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이 공식 참석하는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제56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제43회 하와이 국제영화제 등 글로벌 영화제로부터 연달아 러브콜을 받았다.

특히,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 선정 심사위원 측은 선정 이유에 대해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계급과 부를 상징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며, 서민아파트 황궁만이 건재한 이후 생존을 위해 사투하는 모습이 인물 군상들의 다양한 욕망을 잘 드러냈다"며 "영웅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보통 사람들이 등장하며 그 안에는 아카데미를 감동을 준 영화 '기생충'에서 발견되는 '계급'이라는 화두를 다루고 있으며 결말 또한 자못 그 가치가 크다"고 전한 바 있다.
엄태화 감독/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엄태화 감독/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를 연출한 엄태화는 잘 알려진 '박찬욱 키드'로, '쓰리 몬스터'(2004), '친절한 금자씨'(2005) 연출부 출신이다. 엄태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촬영을 마치고 개봉할 때까지 끝까지 편집을 놓지 않았다고 밝히며 그 배경에 스승이었던 박찬욱의 격려가 있었다고 했다. 엄 감독은 "박찬욱 감독님께서 중간에 한번 편집본을 보셨는데 '나도 이렇게까지 끝까지 편집을 물고 늘어진 적이 없는데, 한 프레임까지 넣다 뺐다 하면서 끝까지 해라, 사운드도 끝까지 만지고 해라.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해서 내보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힘내서 또 고쳤다"고 하기도.

엄태화는 특히 "박찬욱 감독님이 가신 길이 없었다면 제가 꿀 수 있는 꿈의 한계가 있었을 거 같다. 제가 따라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그분들은 진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길을 가셨던 거라, 제가 따라가는 입장에서 참 감사할 뿐"이라며 존경심을 나타낸 바 있다.

또, 유재선 감독도 주목받으며 떠오르고 있는 충무로 신예 감독이다. 영화 '잠'으로 데뷔한 유 감독은 칸 영화제로 감독 데뷔 첫걸음에 나선 행운의 주인공이다. 그는 데뷔 영화 '잠'으로 러브콜을 받아 칸 비평가주간에 작품을 올렸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를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이선균)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수진(정유미)이 이야기를 그린 영화. '잠'은 칸 영화제에 이어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이어 판타스틱 페스트까지 해외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으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유재선 감독은 칸 영화제와 관련한 질문에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크레딧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셨던 순간"이라며 "칸에 초청돼서 뛸 듯이 기뻤지만 두려움과 긴장을 동시에 느꼈다. 제 영화가 칸에 초청됐지만, 관객들이 보면 반응이 어떨까 하는 게 영화제에 갈 때까지 약 한 달 정도 지속됐던 두려움이었다. 다행히 영화 끝나고 좋은 반응 보여주셔서 엄청난 안도감 느꼈다. 인상적이었고 기뻤던 순간"이라며 웃었다.
'잠' 유재선 감독/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잠' 유재선 감독/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제자로, 영화 '옥자' 연출부에 참여하며 "봉준호 감독님의 모든 걸 배우려 노력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은 '잠'에 대해 "10년간 본 공포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하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유재선 감독은 "저한테 직접 해주신 건 아니고 저도 주워들었다. 감독님은 제가 관객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님이고, 제가 영화인으로도 닮고 싶은 롤모델이다"며 "감독님이 제 영화를 보시기만 했어도 가슴 뛰듯이 기뻤을 거 같은데 호평까지 남겨주셔서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이어 "그 외에는 저한테 전화해서 말씀하셨던 부분은 긴장감이 끝까지 이어져서 정말 좋았다고 해주셨고, 두 배우의 열연에 감탄하셨다면서 '두 사람의 연기가 소름 돋는다'고 하시고, '미쳤다'고도 하셨다"고 전했다. 유 감독은 또 감독으로서 영화의 해석을 묻는 질문에 "여담이지만 봉준호 감독님께서 제가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대해서 누설하지 말라고 팁을 주셨다"며 "관객이 이어 나갈 수 있는 재미이기 때문에 그 재미를 박탈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직접적인 답을 피해 웃음을 안겼다.

특히, '잠'에 출연한 배우 이선균은 유 감독과 작업을 묻는 질문에 "함께 영화를 하고 있으니 세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 연출부를 했다 보니 봉 감독님에게 배운 것들이 많은 거 같더라. 머릿속에 콘티를 갖고 있고 콘티대로 영화를 찍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대본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떨어지고, 심플한 게 장점이었다"고 돌아봤다.

어느 분야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신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영화계 새바람을 일으킬 새 얼굴의 감독들이 신선하고 독특한 시각으로 좋은 영화들을 많이 내놓게 되기를 기대한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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