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 이하 ‘영상자료원’)은 오는 11일부터 1980년 후반 한국영화사의 새로운 분기점, 코리안 뉴웨이브를 이끈 영화감독 박광수 기증 컬렉션을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누리집(KMDb)을 통해 공개한다.
■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일궈낸 코리안 뉴웨이브
1988년 '칠수와 만수'를 통해 데뷔한 박광수 감독은 이후 '그들도 우리처럼'(1990)과 '베를린 리포트'(1991), '그 섬에 가고싶다'(199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이재수의 난'(1999)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해냈다.
평론가들로부터 ‘사회파 감독’, ‘사회적 리얼리즘 작가’ 등의 수식어를 얻었다. 더불어 장선우, 정지영 감독 등 그와 비슷한 시기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여준 당대 젊은 영화인들과 함께 ‘코리안 뉴웨이브 세대’로 일컬어졌다.
그가 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자료들로 구성된 이번 컬렉션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뿐 아니라 그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일궈낸 코리안 뉴웨이브의 일면을 조명한다. 전체 191점에 달하는 각종 문서와 사진, 영상자료로 구성된 '영화감독 박광수 기증 컬렉션'은 당대 그가 주도한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이 비단 영화 주제나 미학뿐 아니라 영화 제작 환경 및 영화 산업 시스템에 대한 도전과 실험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연출한 작품들의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각종 회의록과 자료조사 묶음철 등이다. 이를 편의상 ‘제작 실무자료’로 통칭하는데, 특히 박광수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그들도 우리처럼'(1990)의 제작 실무자료들에는 박광수 감독과 그의 연출부가 발품을 팔아가며 영화의 소재를 찾아다니고, 전국 탄광촌 일대 리스트를 뽑아 수차례 현장답사를 진행하는 한편 입체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현지인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의 과정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특히 '그들도 우리처럼'의 주인공 한태훈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연출부가 작성한 수십 장에 달하는 캐릭터 분석문에는 한태훈이 마치 실존하는 인물인 것처럼 가상의 주민등록번호부터 혈액형, 별자리, 구체적인 성격과 취향까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다
이번 컬렉션에는 박광수 감독이 기존 충무로 토착자본이 아닌 다른 출처의 자본 조달 방식을 고민한 한편 그것을 자신의 영화에 적용한 사례들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이 설립한 박광수 필름의 첫 번째 영화 '그 섬에 가고싶다'(1993)를 통해 당시로는 이례적이었던 대기업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 무렵은 마침 비디오 판권 사업에 진출한 삼성과 금성, 대우, 선경(SKC) 등의 대기업이 충무로의 새로운 자본 출처로 떠오르던 때로 '그 섬에 가고싶다' 제작 실무자료에는 박광수 제작팀이 대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삼성의 자회사, 삼성 나이세스 측과 실무협의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실무협의 후 작성된 회의록에서는 삼성 나이세스팀의 투자 내용을 일부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삼성 측은 제작비 일부 투자를 비롯해 적극적인 홍보 지원, 호암아트홀 상영, OST 제작 제안 및 음반 제작 스튜디오 지원 등을 약속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제작 실무자료에서는 오늘날의 크라우드펀딩에 해당하는 국민 모금 운동을 전개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노동운동이라는 무거운 소재로 제작비 확보에 난항을 겪던 제작팀은 국민 모금 운동을 통해 약 8천 명의 국민 모금액 2억 5천만 원을 확보했는데, 제작 실무자료에서 발견되는 “'영화 전태일' 모금 예고편 콘티”와 같은 자료들은 당시로서는 색다른 제작비 모금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의미한 자료다.
해외 투자를 이끌어낸 '이재수의 난'의 사례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기획 단계부터 막대한 제작비가 예상된 영화를 위해 박광수 감독 제작팀은 해외 각국의 제작사와 투자사, 문화예술 단체들과 많은 접촉을 시도했다.
그 과정과 노력이 '이재수의 난' 관련 각종 서신 자료 모음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최종적으로 프랑스 제작사 레 필름 드 롭세르봐토와르(LES FILMS DE L’OBSERVATOIRE)가 합류해 ‘최초의 한불 합작영화’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박광수 감독 측이 프랑스 측 제작사와 주고받은 많은 양의 서신 가운데 프랑스 측 제작자 필립 아브릴의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 역시 흥미로운 자료이다. 한글로 번역된 이 서신에는 '이재수의 난' 시나리오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부터 타이틀 관련 의견, 제주 민란이라는 지역적 소재가 해외 관객들에게 소구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 등의 의견이 정리돼 있다.
'영화감독 박광수 기증 컬렉션'은 현장 취재를 기반으로 한 시나리오 작성과 대기업 및 해외자본 유치, 대중 후원 도모 등 영화 제작 현장에서 박광수 감독이 일궈낸 갖가지 도전들이 ‘코리안 뉴웨이브 시네마’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박광수 감독이 착실히 보존해온 자료들로 구성된 '영화감독 박광수 기증 컬렉션'은 한국영화 미학뿐 아니라 한국영화 제작 구조에서 혁신을 이룬 당대 영화인들의 노고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영상자료원이 공개하는 '영화감독 박광수 기증 컬렉션'은 8월 11일 오전 10시부터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일궈낸 코리안 뉴웨이브
1988년 '칠수와 만수'를 통해 데뷔한 박광수 감독은 이후 '그들도 우리처럼'(1990)과 '베를린 리포트'(1991), '그 섬에 가고싶다'(199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이재수의 난'(1999)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해냈다.
평론가들로부터 ‘사회파 감독’, ‘사회적 리얼리즘 작가’ 등의 수식어를 얻었다. 더불어 장선우, 정지영 감독 등 그와 비슷한 시기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여준 당대 젊은 영화인들과 함께 ‘코리안 뉴웨이브 세대’로 일컬어졌다.
그가 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자료들로 구성된 이번 컬렉션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뿐 아니라 그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일궈낸 코리안 뉴웨이브의 일면을 조명한다. 전체 191점에 달하는 각종 문서와 사진, 영상자료로 구성된 '영화감독 박광수 기증 컬렉션'은 당대 그가 주도한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이 비단 영화 주제나 미학뿐 아니라 영화 제작 환경 및 영화 산업 시스템에 대한 도전과 실험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연출한 작품들의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각종 회의록과 자료조사 묶음철 등이다. 이를 편의상 ‘제작 실무자료’로 통칭하는데, 특히 박광수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그들도 우리처럼'(1990)의 제작 실무자료들에는 박광수 감독과 그의 연출부가 발품을 팔아가며 영화의 소재를 찾아다니고, 전국 탄광촌 일대 리스트를 뽑아 수차례 현장답사를 진행하는 한편 입체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현지인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의 과정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특히 '그들도 우리처럼'의 주인공 한태훈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연출부가 작성한 수십 장에 달하는 캐릭터 분석문에는 한태훈이 마치 실존하는 인물인 것처럼 가상의 주민등록번호부터 혈액형, 별자리, 구체적인 성격과 취향까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다
이번 컬렉션에는 박광수 감독이 기존 충무로 토착자본이 아닌 다른 출처의 자본 조달 방식을 고민한 한편 그것을 자신의 영화에 적용한 사례들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이 설립한 박광수 필름의 첫 번째 영화 '그 섬에 가고싶다'(1993)를 통해 당시로는 이례적이었던 대기업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 무렵은 마침 비디오 판권 사업에 진출한 삼성과 금성, 대우, 선경(SKC) 등의 대기업이 충무로의 새로운 자본 출처로 떠오르던 때로 '그 섬에 가고싶다' 제작 실무자료에는 박광수 제작팀이 대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삼성의 자회사, 삼성 나이세스 측과 실무협의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실무협의 후 작성된 회의록에서는 삼성 나이세스팀의 투자 내용을 일부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삼성 측은 제작비 일부 투자를 비롯해 적극적인 홍보 지원, 호암아트홀 상영, OST 제작 제안 및 음반 제작 스튜디오 지원 등을 약속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제작 실무자료에서는 오늘날의 크라우드펀딩에 해당하는 국민 모금 운동을 전개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노동운동이라는 무거운 소재로 제작비 확보에 난항을 겪던 제작팀은 국민 모금 운동을 통해 약 8천 명의 국민 모금액 2억 5천만 원을 확보했는데, 제작 실무자료에서 발견되는 “'영화 전태일' 모금 예고편 콘티”와 같은 자료들은 당시로서는 색다른 제작비 모금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의미한 자료다.
해외 투자를 이끌어낸 '이재수의 난'의 사례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기획 단계부터 막대한 제작비가 예상된 영화를 위해 박광수 감독 제작팀은 해외 각국의 제작사와 투자사, 문화예술 단체들과 많은 접촉을 시도했다.
그 과정과 노력이 '이재수의 난' 관련 각종 서신 자료 모음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최종적으로 프랑스 제작사 레 필름 드 롭세르봐토와르(LES FILMS DE L’OBSERVATOIRE)가 합류해 ‘최초의 한불 합작영화’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박광수 감독 측이 프랑스 측 제작사와 주고받은 많은 양의 서신 가운데 프랑스 측 제작자 필립 아브릴의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 역시 흥미로운 자료이다. 한글로 번역된 이 서신에는 '이재수의 난' 시나리오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부터 타이틀 관련 의견, 제주 민란이라는 지역적 소재가 해외 관객들에게 소구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 등의 의견이 정리돼 있다.
'영화감독 박광수 기증 컬렉션'은 현장 취재를 기반으로 한 시나리오 작성과 대기업 및 해외자본 유치, 대중 후원 도모 등 영화 제작 현장에서 박광수 감독이 일궈낸 갖가지 도전들이 ‘코리안 뉴웨이브 시네마’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박광수 감독이 착실히 보존해온 자료들로 구성된 '영화감독 박광수 기증 컬렉션'은 한국영화 미학뿐 아니라 한국영화 제작 구조에서 혁신을 이룬 당대 영화인들의 노고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영상자료원이 공개하는 '영화감독 박광수 기증 컬렉션'은 8월 11일 오전 10시부터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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