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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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헤어질 결심'. 전작 '박쥐' '올드보이'처럼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연출은 없었다. 끔찍한 사건 묘사 대신 묘한 감정과 긴장감이 포착됐다.

박찬욱 표 '수사 멜로극'은 청불(청소년 관람 불가)이 아니어도 소리 없이 강했다. 어른들의 로맨스를 은근하고 미묘하게 표현했다. '청불 감독'이라는 선입견이 단숨에 깨지기도.

여기에 박 감독만이 그려낼 수 있는 극의 미장센은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숨소리, 옷 색깔, 업무 공간 인테리어, 채도, 날씨, 화려한 패턴의 벽지 등 감각적인 미장센이 독창적인 세계를 완성했다.
/사진=영화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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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해준은 서툴지만 분명하게 한국어로 의사를 표현하는 서래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변사자의 아내 서래는 좀처럼 속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긴장감을 형성한다.

두 사람은 경찰서부터 신문실, 서로의 집 등에서 묘하고도 은밀한 눈빛과 감정을 공유한다. 영화 내내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둘 사이 감정의 진폭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전해졌다.
/사진=영화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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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의 사랑이 아닌 어느 정도 인생을 좀 살아본 어른들의 사랑을 담고 싶었다는 박찬욱. 자기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로맨스를 제대로 만들어냈다.

특히 중국인인 서래가 어눌한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과 드러내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작용했다.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단어에 중간중간 애플리케이션의 도움을 받아 해준과 대화를 이어가는 서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마치 안개를 헤쳐 나가듯이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간다.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형사와 피의자로 만난 이들은 자욱한 안개처럼 감정의 갈피를 잡기 힘들지만, 어느새 푹 젖어있게 된다.
/사진=영화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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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도 아닌 피의자 신분의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형사라니. 박 감독은 어려운 로맨스에 도전했고 그 도전은 결실을 맺었다. 해준과 서래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와닿았다. 첫 번째 장소에서 끝날 것 같던 이들의 인연이 다음 행선지에서까지 이어져 다시 사랑에 빠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그려지기도.

박해일과 탕웨이 외에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여러 배우도 함께 했다. 고경표, 박정민, 이학주, 정하담 등 젊은 배우들도 두루 활약했다. 박용우 역시 짧은 분량에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후배 형사 역할로 깜짝 출연한 코미디언 김신영까지.

화려한 캐스팅과 더불어 반가운 주제곡도 나온다. 바로 가수 정훈희의 '안개'. 이 노래는 해준과 서래의 로맨틱한 감정선을 부각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세월의 흔적이 깊게 묻은 정훈희의 목소리는 주인공의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사진=영화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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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백미는 엔딩씬이다. 바닷가에서 사방으로 고군분투하는 박해일의 명연기가 빛을 보기도. 만조까지 날짜를 계산해서 연출했다는 박 감독의 열정에 박해일도 응답한 것.

2000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형사 역할을 맡은 박해일 역시 걱정이 무색하게도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늘 양복을 입으며 깔끔하면서도 잠이 오지 않아 잠복근무하는 형사. 그리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감정을 표현하는 멜로 장인의 모습까지 돋보였다.
/사진=영화 '헤어질 결심' 보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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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은 자극적이지 않지만, 기억 속에 각인을 남길 만한 작품.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영화 ‘헤어질 결심'이 국내 팬들에게 얼마나 애틋한 감정을 심어줄지 기대된다. 로맨스까지 잘해버린 박찬욱 감독이 새롭게 천만 신화를 쓸 수 있을까.

류예지 텐아시아 기자 ryuperst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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