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영화인싸>>
'멜로퀸' 손예진, 현실서 현빈과 멜로 영화
차태현, 조승우, 조인성, 정우성, 손예진의 남자들
100만 못 넘은 유일한 멜로물 '외출'
"유독 많았던 감정신…늘 도망가고 싶었다"
영화 '클래식' '외출' 스틸컷./
영화 '클래식' '외출' 스틸컷./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을 때는 한 달 동안 잠을 잘 못 잡니다. 제가 안 잔다고 영화가 잘 되고, 잘 잔다고 영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떨리고 걱정됐거든요. '망하면 어떡하지?' 항상 이런 생각을 했어요. 긴장의 연속이었죠."

'멜로퀸' 손예진이 배우 현빈과 '현실 멜로'를 찍고 있다. 연애부터 결혼 발표까지 흥미진진하다. 만인의 연인이던 그가 이제 한 남자의 여자가 된다.

손예진이 출연한 멜로물은 늘 재미있었다. 차태현부터 조승우, 조인성, 정우성 등 어떤 상대를 만나도 가슴 절절한 호흡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그의 영화에는 웃음, 눈물, 감동, 그리고 짙은 여운이 있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망한 작품'이 있다. '망작'에서 사랑을 나눈 그 사람은 누굴까.

손예진은 1999년 CF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후, 2001년 첫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주연을 맡으며 배우로 데뷔했다. 데뷔작부터 30%가 넘는 시청률을 견인하며 시작부터 '흥행의 맛'을 봤다.

데뷔 이후 영화 20여 편, 드라마 10여 편, 20년 동안 30여 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하며 소처럼 일했다. 이 가운데 영화는 무려 13편이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866만, '덕혜옹주'가 559만을 동원하는 등 '흥행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손예진은 블록버스터 대작에 비해 관객을 끌어들이기 힘든 멜로물로도 흥행을 이끌며 '멜로퀸'으로도 거듭났다.

손예진은 데뷔 초기 1인 2역으로 조승우, 조인성과 호흡을 맞춘 '클래식'(2003)을 통해 '국민 첫사랑'으로 떠올랐다. 이 영화로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상, 제40회 대종상 신인여우상, 인기상, 제24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까지 트로피를 휩쓸었다. '클래식'은 154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했고,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손꼽힌다.

코미디가 가미 된 멜로도 문제없었다. 차태현과 호흡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가 같은 해 개봉해 233만 명을 동원, 2연타석 흥행을 이뤄냈다.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 포스터./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 포스터./
연이어 멜로 영화에 출연한 손예진은 '내 머리속의 지우개'로 '멜로퀸'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 역할을 맡아 정우성과 감성 짙은 멜로를 선보였다. 256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흥행'과 '연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이후 송일국과 함께한 '작업의 정석'(234만), 고(故) 김주혁과 호흡을 맞춘 '아내가 결혼했다'(178만), 이민기와 주연한 '오싹한 연애'(300만), 소지섭과 함께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260만)까지 멜로, 로맨스 코미디 장르에서 작품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흥행 파워'를 자랑했다.

이런 가운데 유일하게 관객으로부터 외면받은 멜로물이 있다.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19금 영화 '외출'이다. 이 영화는 '불륜'을 소재로 한다. 상대 배우는 당시 일본에서 '욘사마'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용준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농도 짙은 멜로는 관객을 사로잡지 못했다. 손예진은 그간 선보이던 청순한 이미지를 벗고, 과감한 변신을 감행했다. 이로써 제51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도 수상했다. 그러나 국내 관객은 '청순 발랄'하지 않은 손예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멜로'로 100만을 넘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외출'은 67만 관객을 모았다.

지난 19일 손예진은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다. 최근 연인 현빈과의 결혼을 발표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선 손예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큰 관심이 쏠렸다. 결혼 발표 전 출연해서 연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데뷔 이후 20년 넘게 소처럼 일하며 '흥행퀸' '멜로퀸'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손예진은 "그동안 유독 감정신이 많았다. 촬영이 있을 때면 이른 아침 6시~ 7시에 일어나 음악을 들으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잘 할 수 있을까?' '현장에 갔을 때 감정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늘 두려움이 있었다. 수도 없이 도망가고 싶었다"라며 "배우는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정말 외롭다. 도망가고 싶은데, 결국은 멋지게 해내야 한다. 그런 감정이 반복됐다"라고 털어놨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방송화면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방송화면
이어 손예진은 "운 좋게도 주인공부터 데뷔했다. 20대 때 시작해서 이제 40살이 됐다. 좋아하는 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걸 즐기기보다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졌다"라며 "손예진이란 배우는 한 명이지 않나. 더 나아지고 진화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멜로'를 넘어 스릴러물, 시대물, 모험 액션 블록버스터 등 장르를 불문하고 활약하며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멜로퀸'이 된 것도 타고난 청순 발랄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늘 긴장감과 책임감을 안고 달려온 만큼 연기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현빈과의 결혼으로 진정한 멜로의 주인공이 된 손예진의 인생 2막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이젠 혼자가 아니다. 부담감을 덜고 더욱 빛날 그의 연기가 기다려진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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