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교복이 어울리는 최강희와 ‘어머니 연기’라는 분야가 있다면 이미 대가일 김영애의 영화 <애자> (제작 시리우스 픽쳐스, 감독 정기훈)가 8월 26일 용산 CGV에서 기자시사를 가졌다. 음주와 흡연을 일삼는 문제아였으나 글 쓰는 재주 하나만은 부산을 넘어 전국적으로 알아줬던 열아홉 애자(최강희). 그러나 10년 뒤, 서울에서 여전히 소설가를 지망하고 있는 애자는 스물아홉에 뚜렷한 직업도 없다. 거기다 주름만 늘었지 마음은 아직 질풍노도 부산 앞바다에 놔두고 온 애자는 시비 거는 여고생들을 시원하게 패주고, 오빠의 결혼식에 기절초풍할 이벤트로 어머니(김영애) 속을 썩이는 “가문의 변종”이다. 그러나 영원히 제 등짝을 후려칠 것 같았던 어머니는 자식들이 모르는 사이에 약해지고 있었고, 애자를 둘러싼 세상은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불효자는 웁니다

두 남매를 홀로 억척스럽게 키워낸 어머니가 고단한 인생 끝에 병을 얻고, 철부지 딸은 뒤늦게 후회를 한다는 이야기. 어찌 보면 새로울 것 없지만, 2008년 부산영상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이야기는 눈물을 쥐어짜기보다는 모녀 관계의 소소한 단면을 세밀하게 그려냄으로서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조류독감도 두려워하지 않는 최영희 여사와 ‘깡’으로 충만한 애자의 투병기는 눈물보다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한다. 또 감독은 “세상의 수많은 관계 중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인 모녀의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추억으로 변해가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해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대화 시간이 5분을 넘기면 싸우게 되거나,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운 뒤에도 어느새 머리를 마주대고 밥을 먹는 모녀의 모습은 모든 어머니와 딸들에게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사소함이 언젠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된다는 걸 미리 알려준다. “자식들이 엄마한테 데이트 신청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최강희의 말처럼 영화가 개봉하는 9월 10일에는 어머니와 함께 극장을 찾는 건 어떨까? 평소에는 낯간지러워서 절대 하지 못하는, 영화 속 애자조차 마지막까지 어머니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용기를 얻을 지도 모른다.

사진제공_ 이노기획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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