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동성애?새얼굴?아시아’, 다양성에 대한 칸의 의지는 견고했다
레아 세이두, 압델라티프 케시시,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왼쪽부터)" /><제66회 칸영화제 시상식> 레아 세이두, 압델라티프 케시시,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왼쪽부터)

베를린,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의 명성을 자랑하는 제 66회 칸 국제영화제가 지난 26일(현지시각) 막을 내렸다. 국내 관객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아마 문병곤 감독의 영화 <세이프>가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일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튀니지계 프랑스 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영화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칸 영화제는 여전히 다양성을 놓치지 않았다.

<세이프>, 한국 단편영화 새 역사 쓰다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가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단편 경쟁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세이프>는 불법 오락실 환전소의 풍경을 통해 금융 자본주의의 허점을 은유적으로 비판한다. 문 감독의 이번 수상은 1999년 송일곤 감독의 영화 <소풍>이 단편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후 14년 만의 쾌거다. 사실 이번 제 66회 칸 국제영화제 라인업이 발표된 후 아쉬워하는 국내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한국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기덕?홍상수?박찬욱 등 국내 감독들의 영화가 칸 국제영화제에 단골손님으로 초청받았고, 또 배우 전도연이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었기 때문에 팬들의 아쉬움은 더 컸다. 하지만 문병곤 감독이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 출품한 <세이프>가 단편영화 황금종려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영화의 새 역사를 썼다.

〈칸영화제〉‘동성애?새얼굴?아시아’, 다양성에 대한 칸의 의지는 견고했다
문병곤 감독" /><제66회 칸영화제 시상식> 문병곤 감독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 수상의 의미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영화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에게 돌아갔다.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는 두 젊은 여성의 동성애를 그린 영화다.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영화는 어린 소녀 아델(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이 파랗게 머리를 염색한 엠마(레아 세이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에 따라 변화하는 인생을 다뤘다. 튀니지계 프랑스 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가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코엔 형제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를 제치고 생애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건 주목할 만하다. 코엔 형제는 1991년 영화 <바톤 핑크>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영화 <파고>,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등이 경쟁 부문에 초청받는 등 칸에서 적지 않은 경력을 쌓은 감독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두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이 기대되던 코엔 형제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는 2위격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코엔 형제를 제치고 처음 영화를 출품한 감독의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건 심사위원단이 감독의 명성보다 작품의 완성도, 새로운 얼굴의 참신함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아시아의 선전
아시아 영화의 선전도 이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문병관 감독 외에도 수상작 리스트에 적지 않은 아시아 영화가 올라 있다. 영화 <공기인형>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라이크 파더, 라이크 선>으로 심사위원상을, 중국 지아장커 감독은 영화 <천주당>으로 각본상을 각각 수상했다. 캄보디아 태생 리씨 팡 감독의 영화 <미싱 픽처>는 비경쟁 부문의 최고상이라 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수상했다.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건 세 감독 모두 처음이다. 2011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황금곰상을 받았던 이란의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도 영화 <더 패스트>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더 패스트>의 베레니스 베조는 여우주연상을 받아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네브라스카>의 브루스 던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멕시코 감독 아마트 에스칼란테는 영화 <헬리>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칸영화제〉‘동성애?새얼굴?아시아’, 다양성에 대한 칸의 의지는 견고했다
지아장커(왼쪽), 자오타오" /><제66회 칸영화제 시상식> 지아장커(왼쪽), 자오타오

사건?사고도 ‘다양’했던 건 유감
영화제가 개막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영화의 강세가 점쳐졌다. 할리우드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미국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흐름이 그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아시아 태생의 새로운 얼굴들이 주요 상을 받았고,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차지했다. ‘할리우드 스타일’의 득세로 칸 영화제가 추구해오던 다양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하지만 12일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점은 아쉽다. 인터뷰 진행 중 총성이 울리는가 하면 ‘도둑들’이 수차례 절도 행각을 벌였다. 레드카펫은 여배우의 노출로 시끄러웠고, ‘가짜 싸이’ 해프닝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칸을 활보했다. 최고의 작품들이 경쟁한 ‘영화인들의 축제’를 사건?사고가 망쳐서야 되겠는가.

글. 기명균 kikiki@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칸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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