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남자>, 조선에서 오늘의 청춘들을 대변하다
, 조선에서 오늘의 청춘들을 대변하다" /> 마지막 회 KBS2 밤 9시 55분
는 세령(문채원)과 승유(박시후)가 함께 말을 타고 너른 벌판을 자유롭게 달리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 밖으로, 궁 밖으로 계속해서 나가고 싶어 하는 세령과 경혜(홍수현)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등장시켰던 첫 회에서부터, 이 작품은 시종일관 닫힌 운명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청춘들과 그들을 끊임없이 가두고 구속하는 기성세대, 기득권과의 갈등을 그려왔다. 감옥과 말달리기는 그러한 주제를 함축하는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두 이미지였다. 운명을 거스르려던 청춘들은 계속해서 옥에, 사가에, 창고에 갇히고 묶이고 끌려갔으며, 세령과 승유는 끝내 죽은 자로 위장하여 역사에서 삭제되고 나서야 바깥의 넓은 세상을 달릴 수 있었다.

아버지들의 싸움이었던 계유정난을 정점으로 정치와 로맨스를 잘 결합해온 가, 죽은 아버지의 “못 다 이룬 바를” 어깨에 짊어진 젊은 세대의 이야기로 중심을 옮겨오자 줄곧 휘청거린 이유는 그처럼 기록된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청춘들의 운명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후반부로 갈수록 대부분의 장면들이, 아프고 아픈 청춘들이 서로의 눈물과 피를 닦아주고 상처를 매만져주며 품에 의지하는 모습으로 채워진 것은 그들의 은신처가 오직 사랑일 뿐임을 말해준다. 정의와 진리라는 정(正)을 찾고자했던 KBS 의 청춘들의 고민이 아버지 부재의 시대이기에 가능했다면, “삶과 죽음을 서로 허락하는” 정(情)만이 유일한 안식처인 의 젊은이들은 폭압적인 아버지의 시대에서 그만큼 무력한 오늘의 청춘들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운명은 스스로 선택하게 할 것”이라는 세령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목격할 눈을 잃은 승유와 세령의 말달리기가 안타까운 꿈처럼 느껴지는 결말은 그래서일 것이다.

글. 김선영(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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