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동방신기 '허그' MV 갈무리
사진=동방신기 '허그' MV 갈무리
《김지원의 슈팅스타》
김지원 텐아시아 가요팀 기자가 '슈팅스타'처럼 톡톡 튀고 시원하게 가요계를 맛보여드립니다.

5명으로 데뷔한 동방신기는 조각나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들이 설레는 마음을 품고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딜 때 불렀던 노래를 후배 그룹이 다시 불렀다. 여러 명이서 앳된 얼굴로 '허그'를 부르는 모습은 데뷔 초 동방신기를 연상케 했다.

그룹 라이즈가 소속사 선배 그룹 동방신기의 '허그'(HUG)를 리메이크했다. SM엔터테인먼트 창립 30주년 기념 앨범에 수록되는 곡으로, 지난 8일 오후 선공개됐다. 라이즈 멤버들은 '허그' 감성을 제대로 소화했다. 특히 소희와 원빈의 보컬에서 그 시절 감성이 묻어나온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맛있는 우유'를 '마딛는 우유'로 발음하는 포인트도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 원곡을 잘 살렸다는 의미다. 다만, 커버가 아닌 리메이크임에도 라이즈만의 색깔이 크게 느껴지진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리메이크지만, 라이즈의 '허그' 발매를 두고는 잡음이 있었다. SM과의 분쟁으로 오랜 기간 방송 활동조차 하지 못한 동방신기의 곡이기 때문이다. 특히 '허그'는 동방신기의 데뷔곡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정작 동방신기는 양쪽으로 갈라져 데뷔 20주년에도 함께 있는 그림을 볼 수 없었다.
최강창민, 유노윤호/ 사진=텐아시아 사진 DB
최강창민, 유노윤호/ 사진=텐아시아 사진 DB
김재중, 김준수/ 사진 제공=팜트리아일랜드, iNKODE
김재중, 김준수/ 사진 제공=팜트리아일랜드, iNKODE
NCT 드림의 '캔디', 에스파의 '드림스 컴 트루' 등 SM 소속 가수가 선배 그룹의 곡을 리메이크 한 사례는 많았지만, 라이즈의 '허그'는 조금 다르다. 원곡을 불렀던 당사자들도 이 노래를 편하게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SM을 떠난 김재중과 김준수는 지난해 11월 합동 콘서트를 열고 동방신기 곡들로 무대를 꾸몄다. 당시 김준수는 "저희 노래지만 그 노래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보니까 이번 콘서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배경을 SM도, 대중도 모두 아는 가운데, 소속사의 30주년을 기념해 자사 후배 그룹에게 데뷔곡 리메이크를 맡겼다. 라이즈의 '허그'가 마냥 환영받지 못한 이유다.

라이즈의 이미지에도 득이 되지 않았다. 리메이크곡 발매 시 원곡과의 비교는 필연적이다. 역시나 곡이 발매된 직후 동방신기와 라이즈의 가창력을 따지는 이들이 나타났다. 꼭 리메이크를 해야 했다면 가창력이 두드러지는 '허그' 같은 곡보다는 라이즈의 강점인 퍼포먼스적 측면을 강조할 수 있는 곡을 택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일부 대중은 라이즈가 리메이크곡이나 샘플링곡을 자주 내는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기도 했다. 라이즈는 지난해 밴드 이지의 히트곡 '응급실'을 샘플링한 '러브 119'(Love 119)으로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지난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의 2, 3월 월간 차트에서 각각 5위, 10위를 차지하며 톱 10 안에 들기도 했다. 라이즈는 이지리스닝 곡을 발매하며 보이그룹 중에서는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지니고 있긴 했지만, 지난해 '러브 119'를 통해 제대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여기에는 기존 '응급실'의 인지도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진=라이즈 '허그' MV 갈무리
사진=라이즈 '허그' MV 갈무리
커버 무대나 샘플링의 빈도가 높았던 건 아니지만, 모두 존재감이 강한 곡들인 만큼 대중의 기억에도 깊게 남았다. 라이즈는 앞서 '라이징 썬'(Rising Sun) 무대를 선보인 적도 있다. 이들은 '2023 마마 어워즈'에서 직속 선배인 동방신기 2인과 함께 무대를 꾸미면서 화제가 됐다. 자신들의 이름으로 낸 신곡보다 리메이크곡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화제성은 높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팀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는 행보는 아니었다.

최근 가요계에서 보이그룹은 걸그룹 대비 대중성을 잡기 어렵다. 아직 데뷔 2년조차 되지 않은 보이그룹 입장에서는 눈길을 끌기 위한 방법으로 유명 곡을 활용한 것은 전략적이다. 실제로 라이즈는 '러브 119'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허그'도 귀에 익은 곡이기에 대중적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동시에 기존 '메모리즈'(Memories), '겟 어 기타'(Get A Guitar) 등 라이즈만의 트렌디하면서 독특한 색깔을 지닌 곡들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옅어졌다.

직접 조각조각 낸 그룹의 데뷔곡을 소속사의 새 얼굴들에게 맡겨 그대로 재연한 SM. 라이즈도, 동방신기도 고려하지 않은 오직 SM을 위한 리메이크였다. 소속사의 30주년을 기념하는 데만 심취한 모습이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o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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