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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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B급 장르, 키치함을 좋아합니다. 대중적인 건 제 취향이 아니예요. 키치한 세계가 지금 메이저가 된 것에 의문을 품고 있기도 해요(웃음). 제가 추구하는 키치함이 인기를 끈 건 '사고'라 생각합니다. 자주 일어나지 않는단 점에서 사고란 단어를 붙였는데요. 앞으로도 저만의 사고가 많이 반복되면 좋겠습니다."

넷플릭스 '기생수: 더 그레이'(이하 '기생수')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넷플릭스는 마이너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 내가 추구하는 B급 문화, 키치(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한 세계가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9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연 감독과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 '부산행'(2016)과 드라마 '지옥'(2021)을 연출한 연 감독. 그가 199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만화 '기생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기생수'로 돌아왔다.

지난 5일 최초 공개된 '기생수'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OTT 순위 집계 플랫폼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콘텐츠 공개 직후 6일부터 7일까지 양일간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에서 대한민국, 브라질, 멕시코, 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미국, 인도, 프랑스, 코스타리카, 헝가리 등에서도 2위에 올라 글로벌 종합 1위를 달성했다.

이와아키 히토시 작가의 일본 SF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하는 시리즈다. K콘텐츠로 재탄생 된 '기생수'는 연 감독과 류용재 작가의 손길로 빚어졌다. 배우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등이 출연해 스토리의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덱스터스튜디오의 VFX 기술력까지 더해져 독보적인 콘텐츠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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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기생수' 원작자를 만나 30~40분 프레젠테이션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어해 주고, 내 아이디어를 많이 존중하고 좋아해 줬다. 싫어하는 작가도 다수 있는데, 많이 열려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다"면서 원작자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6부작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느냔 질문에 연 감독은 "최대의 집중력을 뽑아낼 수 있는 분량이다. 이것보다 더 길게 갔다면 무리였을 거다. 6부작이 딱 적당하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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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에서는 인물들의 얼굴이 바뀌는 신이 신선하고 인상적이다. 원작에서는 얼굴이 아닌 오른손이 변형된다. 이에 대해 연 감독은 "'기생수'를 한국화하는 리메이크 개념이 아니다. '기생수가 한국에는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굳이 원작과 동일할 필요 없었다"고 했다. 이어 "'바디 스내처' 장르를 활용했다. 핵심적인 공포 중 하나로, 익숙한 존재를 건드려 공포감을 주는 것을 뜻한다. 수인과 하이디의 관계를 익숙한 '얼굴'로 변화 주는 게 흥미로울 것 같았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와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연 감독은 연출자로서 입장을 전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창작의 자유를 준다'란 워딩이 다수 보인다. 가장 중요한 건 공개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 대상으로 작품을 하다 보면 다른 나라에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넷플릭스에서 완벽한 자율권을 부여할 수는 없다. 공개와 대상의 방식 차이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명확한 걸 중시한다. 특히 전 세계 관객에게 보여지는 작품이라면 더욱더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극장에서 보는 것과 넷플릭스로 보는 건 차이가 있기 때문에 환경을 고려한 대사 연출에 신경 썼다"고 연 감독만의 세심한 작품관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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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반응을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연 감독은 "길이 다채롭지 않다. 주로 엑스(구 트위터)에 검색해서 보는 것뿐이다. 얼마나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나 살핀다. 한눈에 전 세계 반응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면서 "따로 보고 받는 리포트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생수' 시즌2가 완벽하게 나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큰 흐름은 존재한다"고 기대를 높였다.

연 감독은 작업 경험이 있던 배우와 호흡을 자주 하는 편이다. '기생수'의 구교환과 이정현이 그 사례다. 두 배우는 각 TVING '괴이'와 영화 '반도'로 연 감독과 작업한 이력이 있다. 이에 연 감독은 "작품을 같이 해본 만큼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호흡 경험이 없는 배우들은 오디션이나 다른 작품을 통해서 보는 게 전부인데 그런 건 한정적이다. 따라서 두려움도 존재한다. 전혀 안 해봤던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다면, 주변에는 같이 해왔던 배우들로 채우게 되더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에게는 '연니버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연니버스는 연 감독과 유니버스의 합성어로,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영화감독인 연의 작품 중 대한민국에 벌어진 좀비 아포칼립스 사태를 다루는 유니버스다. 연 감독은 "영화감독을 하면서 별명이 생긴다는 건 영광이다. 나름의 자부심도 있다(웃음). 사실 '연니버스'의 뜻을 정확히는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난 대중적인 취향과 거리가 멀다. 나 같이 마이너한 사람이 대중 영화를 만든다는 자체가 기묘하다. 원래 대중적인 성향이라면 이 일을 하는 게 쉬웠을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중적인 것과 호흡하려고 하니까 작업 자체가 투쟁적이다"라면서 "언젠간 비대중적인 작품을 하지 않을까"라고 웃었다.

원작에서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연 감독의 '기생수'에서는 목사가 중요하다. 연 감독은 "조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다기보단, 모습이 핵심이다. 조직의 여러 모습을 비관적 형태로 그렸다. 엔딩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완전히 소외자였던 수인이 주변의 많은 사람을 당기고 변화시키는 인물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직의 부정적 모습이 담긴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라는 여운을 남겼다.

이소정 텐아시아 기자 forusoju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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