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한번으로 영혼 체인지? '브랜딩 인 성수동'
2010년대 초중반 우리가 사랑했던 영혼체인지 로맨스
'시크릿 가든', '49일', '빅', '오 나의 귀신님'
'브랜딩 인 성수동' 스틸컷. /사진 제공=U+ 모바일
'브랜딩 인 성수동' 스틸컷. /사진 제공=U+ 모바일
2010년대 초중반, 일명 '영혼 체인지 로맨스'라고 불리던 타인과 나의 영혼이 뒤바뀌는 소재의 드라마가 자주 보곤 했다. 물론 비슷한 소재지만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식도 다양한데, 서로 으르릉거리던 혐오관계인 두 남녀의 영혼이 뒤바뀌기도, 교통사고를 당해 유체 이탈하고 떠돌던 영혼이 누군가의 몸에 빙의하기도 한다.

공통적인 특징은 나와는 상반된 상대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얼핏 보기엔 이해할 수 없던 누군가의 인생에 아주 깊숙하게 스며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서며 이러한 영혼체인지 로맨스는 모습을 감췄다. 이야기 구조가 엇비슷하다 보니, 클리셰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한계와 함께 드라마의 흐름이 바뀌게 된 탓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통 로맨스물의 수요가 줄면서, 그 자리를 다양한 장르물들이 채우고 있다.

5일 공개된 U+모바일 tv '브랜딩 인 성수동'(감독 정헌수)은 2010년대 자주 사용되던 소재를 다시 재조립한다. 마케팅 팀장 강나언(김지은)과 인턴 소은호(로몬)이 한 번의 우연한 키스로 영혼이 바뀌는 이야기가 그러진다. 인간미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이 까칠하지만 일머리만큼은 빠른 강나언과 늘상 해맑지만 어리숙한 소은호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인물이다. 두 사람은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붙어있어야 하며, 신체적, 심리적 거리가 가깝지 않았다면 몰랐던 내면의 상처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했던 '그때 그 시절'의 영혼 체인지 로맨스 뭐가 있는지 살펴보자.


계급과 삶의 환경이 다르던 두 남녀, 영혼이 바뀌며 서로를 이해하다
SBS '시크릿 가든'(2010)
사진=SBS '시크릿 가든' 방송 캡처본.
사진=SBS '시크릿 가든' 방송 캡처본.
"길라임 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수 공들여 만들었다던 반짝이는 체육복을 입은 김주원(현빈)은 윗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묻는다. 갑작스런 고백 공격에 길라임은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휙-돌리고는 마구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사실 '시크릿 가든'은 대부분의 장면들이 많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수차례 패러디되기도 했을 만큼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

김은숙 작가가 집필한, 2010년 방송된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는 로엘(LOEL)그룹 회장의 손자이자 로엘백화점의 사장인 김주원과 가난하지만 명랑함만은 잃지 않는 스턴트우먼 길라임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전혀 접점이라곤 없을 것 같지만, 김주원은 영화 촬영 중이던 스턴트우먼 길라임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한순간 마음이 빼앗기고 만다. 2화에서 길라임을 막 대하는 감독에게는 "저한테는 이 사람이 김태희고 전도연입니다. 제가, 길라임 씨 열렬한 팬이거든요"라는 능글맞은 대사를 시전하기도 한다.
사진=SBS '시크릿 가든' 방송 캡처본.
사진=SBS '시크릿 가든' 방송 캡처본.
두 사람은 5화의 길을 잃고 들어간 산장에서 나눠준 술을 마시고는 몸이 뒤바뀐다. 싸가지 없는 김주원의 몸에 길라임의 영혼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통쾌함과 착실하고 예의 바른 길라임의 몸에 김주원의 영혼이 들어가며 생긴 의아함은 주변 인물들에게 아이러니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상대의 삶을 접할수록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김주원과 길라임은 그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영혼이 뒤바뀐 사연은 추후에 설명된다. 과거, 21살이던 김주원이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당했고 소방관이었던 길라임의 아버지는 그를 구하고 세상을 떠났던 것. 질긴 인연의 끈은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몸이 뒤바뀌는 기상천외한 일이 발생하면서 뒤엉킨 끈을 풀어낸다.

'시크릿 가든'과 '브랜딩 인 성수동'이 남녀의 영혼이 서로 뒤바뀌는 형태의 닮은 꼴이라면, SBS '49일', KBS 2TV '빅', tvN '오 나의 귀신님'은 생판 모르던 남의 몸에 영혼이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빙의물에 가깝다. '시크릿 가든'의 영혼이 바뀌는 행위가 상대의 삶에 융화되는 과정을 그린다면, '49일', '빅', '오 나의 귀신님'은 무너져버린, 복구해야 하는 자신의 삶을 전혀 모르던 타인의 개입으로 인해 돌아보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던 타인의 몸에 들어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인지하다
SBS '49일'(2011), KBS 2TV '빅'(2012), tvN '오 나의 귀신님'(2015)
사진=SBS '49일' 방송 캡처본.
사진=SBS '49일' 방송 캡처본.
비슷한 영혼 체인지물이라고 해도, 구별법은 엄연히 다르다. 그 이유는 전자가 영혼이 바뀌는 현상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함께 조율한다면, 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이 뒤바뀐다는 것이다. 로맨스의 대상 역시도 그렇다. 전자의사랑에 빠지는 대상이 영혼이 바뀐 그 사람이라면, 후자는 누군가의 영혼 빙의로 인해 달라진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하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시크릿 가든'과 '브랜딩 인 성수동'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은밀한 속사정까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49일', '빅', '오 나의 귀신님'은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인지가 초점에 맞춰져있다.

'49일'은 결혼을 앞둔 신지현(남규리)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며 사건이 펼쳐진다. 스케줄러(정일우)는 신지현에게 49일의 시간 동안 송이경(이요원)의 몸에 들어가 가족을 제외한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는 3명의 사람에게 진심이 담긴 눈물을 얻는 미션을 수행해야 다시 의식을 되찾을 수 있다고 고지한다. 하지만 미션은 그리 쉽지 않은데 신지현이 빙의된 송이경은 과거 자신보다 아끼고 사랑하던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두 발로 일어서지 못하는 상태다. 남들이 활동하는 낮에는 죽은 듯이 잠만 자고, 밤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몸을 이끌고 나가서 무기력한 표정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물이다.

신지현의 빙의 조건은 그렇다. 송이경이 잠든 낮 시간만 활동이 가능하며, 밤에는 다시 빠져나올 것.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송이경의 삶에 개입한 신지현은 우선 어질러진 방 청소와 텅 빈 냉장고를 채우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산뜻한 느낌이 드는 원피스로 갈아입는다. 두 사람은은 '49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이용해 내가 이전 생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 때문에 멈춰있는지를 질문한다.
사진=KBS2 '빅' 방송 캡처본.
사진=KBS2 '빅' 방송 캡처본.
'빅'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교사 길다란(이민정)은 의사인 남자친구 서윤재(공유)와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서윤재와 교통사고가 난 것은 길다란이 근무하던 학교 학생인 고등학생 강경준(신원호). 싸가지 없는 말투에 반항기가 가득한 강경준의 영혼은 서윤재의 몸으로 다시 깨어나고, 어째서인지 강경준의 몸은 의식을 되찾지 못한다.

드라마는 길다란의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남자친구인 서윤재에 대해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사고 난 남자친구를 위해 일 처리를 하다 보니 자신이 모르던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사랑했던 것은 맞는지'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싹트던 와중에 고등학생 강경준의 영혼이 들어간 서윤재는 자꾸만 길다란을 헷갈리게 한다. '빅'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이의 영혼 체인지를 통해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되묻고 자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진=tvN '오 나의 귀신님' 방송 캡처본.
사진=tvN '오 나의 귀신님' 방송 캡처본.
박보영, 조정석 주연의 '오 나의 귀신님'은 '빅'과 비슷한 구조를 지닌 드라마다.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던 나봉선(박보영)은 요리사를 꿈꾸지만, 자신의 성격 탓에 늘 벽에 부딪힌다. 거칠고 변수가 많은 주방 안에서는 어려움 그 자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귀신인 신순애(김슬기)의 영혼이 빙의되면서 누구보다 발랄하고 해맑은 인물이 되는 기회 아닌 기회를 얻는다. 늘 인상 찌푸린 얼굴로 나봉선의 이름을 부르던 셰프 강선우(조정석)은 그녀의 달라진 모습에 의아하다가도 점점 스며든다. '오 나의 귀신님'은 강선우와 나봉선, 신순애의 보이지 않는 삼각관계를 그리면서도, '나는 진정 누구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쉬이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을 한다.

본질적으로는 영혼 체인지 드라마는 '나'와 '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드리고 있다. 2010년대 중후반에 다다르며, 비슷한 소재와 이야기 구조의 영혼체인지 로맨스는 자취를 감췄지만, 어쩌면 2020년대를 접어들면서 다른 방식으로 나를 둘러싼 다른 이들의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