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체모음.zip'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
영화 '신체모음.zip'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
*'신체모음.zip'에 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뒤틀린 욕망과 누군가를 향한 증오는 본래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괴상하고 기이하다. 분명 감정의 불씨가 피어난 지점이 있을 테지만, 어느 순간 원인불명의 알 수 없는 형태로 변질하고야 만다. 영화 '신체모음.zip'은 마치 감정의 민낯을 해부하고 신체조각들로 감정의 이음새를 만든다.

영화 '신체모음.zip'은 사이비 종교 단체를 잠입 취재하는 막내 기자 '시경'(김채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아 신체 조각에 관한 6개의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교인들은 어디선가 구해온 신체조작을 제물로 바치고 자신들이 원하는 소원을 빈다. 에피소드 '토막'(감독 최원경), '악취'(감독 전병덕), '귀신 보는 아이'(감독 이광진), '엑소시즘.넷'(감독 지삼), '전에 살던 사람'(감독 김장미), '끈'(감독 서형우)로 구성되는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을 빌려 재미를 더한다.
영화 '신체모음.zip'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
영화 '신체모음.zip'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
각각의 신체 부위는 에피소드별로 캐릭터가 집착하거나 이뤄내지 못한 스멀스멀 나온 감정들과 연결된다. 1부 에피소드인 '악취'에서 취업준비생인 다희(권아름)는 중고 마켓에서 누군가 쓰던 화장대를 구매하고는 서랍장에서 향수를 발견한다. 불쾌함을 느낀 것도 잠시 향수를 온몸에 뿌린 다희는 간호사 국가시험에 떨어진 이후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꾸만 향수를 찾는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는 자기최면처럼 자꾸만 향수를 뿌려대는 다희는 어느샌가 자기 몸에서 악취를 맡기 시작한다. 어쩌면 악취의 근원은 시험에 떨어진 자신에게 견딜 수 없는 혐오감과 죄책감의 발현인지도 모르지만, 걷잡을 수 없는 악취에 잠식된 다희의 신경질 난 얼굴은 원인을 찾기보다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형상을 보여준다.

2부 에피소드 '귀신 보는 아이'는 주인공 준호가 귀신을 본다는 이유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는 '보는 것'을 큰 키워드로 삼아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의 경계를 허문다. 준호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귀신을 한번 보자고 장난삼아 말하고, 이후 그들은 어둠 속에서 잔혹한 숨바꼭질을 하게 된다.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결과물은 편견으로 물든 눈을 뺏어가는 처참한 결과를 낳는다.
영화 '신체모음.zip'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
영화 '신체모음.zip'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
이어 3부 에피소드는 '엑소시즘.넷'으로 친구 화영(김금원)이 악령에 빙의된 이후, 구마 의식을 하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4부 에피소드 '전에 살던 사람'은 갓 이사를 온 지수(조우리)의 집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한다. 5부 에피소드 '끈'은 배우 김민석이 출연해 벽을 사이에 두고 옆집과 끈으로 목이 감기는 아이러니함을 볼 수 있다. 반대쪽에서 움직이면, 다른 쪽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일종의 생존 게임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거나 서로를 믿지 못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다는 점이다. 인간의 가장 약하고 악한 감정을 매개로 신체를 수집하는 행위는 우리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 같다. 특히나 중심 이야기가 되는 막내 기자 시경의 잠입 취재는 다른 에피소드를 모두 압축한, 증오가 피어오르는 시작과도 같다. 선배 기자의 무차별적인 폭언과 신도들 사이에서 혼란함을 겪는 시경의 감정 변화는 5개의 에피소드를 이어주는 커다란 가지가 된다. 무엇보다도 신도들이 선물을 바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육신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장면은 소름이 끼친다. 한자리에 모인 이들이 토해내는 말들의 근원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깨진 조각들인 탓이다.
영화 '신체모음.zip'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
영화 '신체모음.zip' 스틸컷. /사진제공=싸이더스
'신체모음.zip'은 마음의 깨진 조각들을 육체로 치환한 영화다. 하지만 에피소드를 연결해주는 이음새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해당 상황에 놓인 구체적인 전사를 보여주기보다는 장면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에는 버거움이 있다. 잔인하게 묘사한 이미지에 비해서 감정들이 층을 이뤄나가는 과정들이 역시 조금 부족하다. 아무래도 제한된 시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 때문인 듯하다.

물론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작품상을 수상할 만큼, 신선한 아이디어로부터 도약한 '신체모음.zip'의 섬세한 연출력은 이음새 부족을 메꿔준다. 공포영화의 불모지와도 같은 한국에서 기존의 법칙에 벗어난 좋은 시도였다는 평가를 주고 싶다.

영화 '신체모음.zip' 8월 30일 개봉. 러닝타임 104분. 15세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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