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예의 시네마톡≫
박소담, '유령' 촬영 중 갑상선 유두암 발병
발병 중에도 7~8kg 장총 들고 고난도 액션 소화
박소담, '유령' 촬영 중 갑상선 유두암 발병
발병 중에도 7~8kg 장총 들고 고난도 액션 소화
≪최지예의 시네마톡≫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영화 이야기를 전합니다. 현장 속 생생한 취재를 통해 영화의 면면을 분석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글을 재미있게 씁니다.
최근 만난 배우 박소담은 밝고 명랑했다. 그가 최근까지 투병했다는 사실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박소담은 묻기 주저됐던 '갑상선 유두암' 투병 관련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고, 결코 쉽지 않았던 그 시간을 지나온 여정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때는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 촬영 당시였다. 평소 같지 않은 컨디션이 이어졌고, 박소담은 이를 '번아웃'이라 여겼다. 매일 밤 자신을 의심하며 땅굴을 파고 울기도 했다. 자신을 채찍질했고, 현장의 선배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당근을 받았다. 그 속을 오가면서도 그 낯선 변화가 '아프다'고 몸이 주는 신호인 줄은 몰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소리 시신경을 잃을 뻔했어요. 목 안에 혹이 10개나 있었고, 그게 임파선까지 전이된 상태였어요.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안 나올 수 있다고 했죠. 수술 이후 회복하고 제 목소리를 찾기까지도 6개월 이상이 걸렸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호르몬 수치를 조절하기 위해서 5년 이상 약을 먹어야 한대요." 박소담은 이런 큰일을 겪으며 영화 '유령'을 찍었다. 첫 영화 주연작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로 인연을 맺었던 이해영 감독과 두 번째 만남. '유령'에서 박소담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직속 비서 유리코 역을 맡았다. 유리코의 옷을 입은 박소담은 설경구, 이하늬, 박해수 등에게도 거침없는 반말을 내뱉고, 욕설도 서슴지 않으며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유령' 속 박소담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후반전의 '유령'은 박소담이 지배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만큼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식당 신에서 맨발로 뛰쳐나가는 장면부터 총을 난사하기까지 이어지는 박소담의 무빙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이 생각날 만큼 우아하고 강력하다. 박소담은 스크린을 압도하며 '유령'의 강렬한 후반부를 열어젖힌다. 박소담은 적게는 4kg, 많게는 7~8kg 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총을 들고, 날고뛰며 고난도의 액션을 소화했다.
박소담의 투병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니, 몸이 아픈 와중에도 이런 연기를 펼쳤다는 게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령' 시사를 마치고 진행됐던 간담회에서 박소담의 눈물 한 방울을 시작으로 배우들은 물론이고 이해영 감독까지 한바탕 눈물바다가 펼쳐진 것은 단순한 감정의 공감이 아니라 체력적 극한의 상황에서도 전력을 다해 온 몸을 던졌던 그의 피땀눈물에 대한 존경이었다. 한예종을 졸업하자마자 데뷔해 한숨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박소담이다. 오죽하면 '충무로 공무원'이란 별명이 붙었을까. 박소담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여러 작품에 잇달아 도전하면서 내공을 쌓았다. 칸과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며 전 세계에서 빛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에서 보여줬던 박소담의 연기는 역할의 크기와 관계없이 꾸준하게 작품에 임했던 성실함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열한 투병은 끝났지만, 박소담은 꾸준한 건강관리가 요구되고 체력적으로 무리하면 안 되는 상태다. 거의 매일 아침 필라테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컨디션이 많이 떨어진다는 박소담은 여전히 연기 이야기를 할 때 눈을 가장 빛냈다. "캐릭터에 확 빨려들 때가 있어요. 캐릭터가 가진 에너지에 따라 제가 달라져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로 인사드리게 될지 모르지만, 그전까지 감독님과 상대 배우가 어떤 걸 요구해도 바로바로 해낼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겠죠."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투병 이전과 이후가 동일한 박소담. 이번 일을 계기로 얻은 소득은 건강 관리의 필요성과 자신을 쉬게 하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박소담은 또, 앞으로 어떻게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며 웃었다. "잘 아팠다고 생각했다"던 그의 말대로, 박소담의 긴 배우인생을 바라봤을 때 되려 잘된 일이 아닐까 싶다.
우생마사(牛生馬死). 세찬 강물에서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뜻이다. 강한 물살에 밀려가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헤엄치다 힘이 빠져 죽는 말에 반해, 소는 물살을 따라 천천히 헤엄치며 살게 된다.
한 차례 투병을 겪은 박소담인 만큼 말보다는 소처럼 연기해야 한다. 꾸준하게 천천히, 대중 곁에서 오랫동안 좋은 연기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영화 이야기를 전합니다. 현장 속 생생한 취재를 통해 영화의 면면을 분석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글을 재미있게 씁니다.
최근 만난 배우 박소담은 밝고 명랑했다. 그가 최근까지 투병했다는 사실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박소담은 묻기 주저됐던 '갑상선 유두암' 투병 관련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고, 결코 쉽지 않았던 그 시간을 지나온 여정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때는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 촬영 당시였다. 평소 같지 않은 컨디션이 이어졌고, 박소담은 이를 '번아웃'이라 여겼다. 매일 밤 자신을 의심하며 땅굴을 파고 울기도 했다. 자신을 채찍질했고, 현장의 선배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당근을 받았다. 그 속을 오가면서도 그 낯선 변화가 '아프다'고 몸이 주는 신호인 줄은 몰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소리 시신경을 잃을 뻔했어요. 목 안에 혹이 10개나 있었고, 그게 임파선까지 전이된 상태였어요.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안 나올 수 있다고 했죠. 수술 이후 회복하고 제 목소리를 찾기까지도 6개월 이상이 걸렸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호르몬 수치를 조절하기 위해서 5년 이상 약을 먹어야 한대요." 박소담은 이런 큰일을 겪으며 영화 '유령'을 찍었다. 첫 영화 주연작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로 인연을 맺었던 이해영 감독과 두 번째 만남. '유령'에서 박소담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직속 비서 유리코 역을 맡았다. 유리코의 옷을 입은 박소담은 설경구, 이하늬, 박해수 등에게도 거침없는 반말을 내뱉고, 욕설도 서슴지 않으며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유령' 속 박소담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후반전의 '유령'은 박소담이 지배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만큼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식당 신에서 맨발로 뛰쳐나가는 장면부터 총을 난사하기까지 이어지는 박소담의 무빙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이 생각날 만큼 우아하고 강력하다. 박소담은 스크린을 압도하며 '유령'의 강렬한 후반부를 열어젖힌다. 박소담은 적게는 4kg, 많게는 7~8kg 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총을 들고, 날고뛰며 고난도의 액션을 소화했다.
박소담의 투병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니, 몸이 아픈 와중에도 이런 연기를 펼쳤다는 게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령' 시사를 마치고 진행됐던 간담회에서 박소담의 눈물 한 방울을 시작으로 배우들은 물론이고 이해영 감독까지 한바탕 눈물바다가 펼쳐진 것은 단순한 감정의 공감이 아니라 체력적 극한의 상황에서도 전력을 다해 온 몸을 던졌던 그의 피땀눈물에 대한 존경이었다. 한예종을 졸업하자마자 데뷔해 한숨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박소담이다. 오죽하면 '충무로 공무원'이란 별명이 붙었을까. 박소담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여러 작품에 잇달아 도전하면서 내공을 쌓았다. 칸과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며 전 세계에서 빛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에서 보여줬던 박소담의 연기는 역할의 크기와 관계없이 꾸준하게 작품에 임했던 성실함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열한 투병은 끝났지만, 박소담은 꾸준한 건강관리가 요구되고 체력적으로 무리하면 안 되는 상태다. 거의 매일 아침 필라테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컨디션이 많이 떨어진다는 박소담은 여전히 연기 이야기를 할 때 눈을 가장 빛냈다. "캐릭터에 확 빨려들 때가 있어요. 캐릭터가 가진 에너지에 따라 제가 달라져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로 인사드리게 될지 모르지만, 그전까지 감독님과 상대 배우가 어떤 걸 요구해도 바로바로 해낼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겠죠."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투병 이전과 이후가 동일한 박소담. 이번 일을 계기로 얻은 소득은 건강 관리의 필요성과 자신을 쉬게 하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박소담은 또, 앞으로 어떻게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며 웃었다. "잘 아팠다고 생각했다"던 그의 말대로, 박소담의 긴 배우인생을 바라봤을 때 되려 잘된 일이 아닐까 싶다.
우생마사(牛生馬死). 세찬 강물에서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뜻이다. 강한 물살에 밀려가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헤엄치다 힘이 빠져 죽는 말에 반해, 소는 물살을 따라 천천히 헤엄치며 살게 된다.
한 차례 투병을 겪은 박소담인 만큼 말보다는 소처럼 연기해야 한다. 꾸준하게 천천히, 대중 곁에서 오랫동안 좋은 연기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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