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현미가 남편인 고(故) 이봉조가 유부남이었던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지난 9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대중가요계 원조 디바 가수 현미가 출연했다.
1962년 노래 '밤안개'로 데뷔한 현미는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매하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재즈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늘 화려하고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현미지만 그녀에게도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사연이 있었다.
현미는 고인이 된 남편 이봉조를 그리워했다. 현미는 "내가 그분(이봉조) 덕분에 스타가 돼서 잘 산다. 그분이 나의 은인이오 스승이오 애인이오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봉조는 '천재 작곡가'로 불리며, 영화음악 감독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현미는 "이봉조가 미 8군부대에서 밴드마스터였다"며 "눈이 새카맣고 잘생겼고 나한테 친절했다. 추운 겨울에 트럭을 타면 자기 양말을 벗어서 나에게 신겨줬다"며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이어 "그때는 12시간 통행금지였다. 나와 이봉조 선생님이 처음 갔던 여관이 아직도 있다. 내가 가끔 남산에 올라가서 본다. 그래서 연애가 시작됐다. 연애를 지독하게 했다. 매일 밤, 매일 만났다"고 추억을 회상했다.
이봉조는 현미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봤고, 히트곡이 된 '밤안개'를 선물했다. 두 사람은 많은 작업을 함께했고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현미는 "그때 그 사람이 유부남인 줄 몰랐다. 26살인데 누가 유부남인 줄 알겠냐. 이미 딸이 2명 있는 유부남인데 나한테 총각이라고 해서 연애를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까 딸이 둘 있는 유부남이더라"고 이봉조에게 속았던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현미의 뱃속에도 이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현미는 자신을 선택한 이봉조와 가정을 꾸려 결혼 생활을 시작했고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봉조는 현미와 가정을 이룬 후에도 본처와 사이에서 자식 둘을 더 낳았다. 현미는 이봉조에게 이별하자고 했다. 현미는 "부인이 애가 둘이었는데 애를 둘 더 낳은 걸 제가 알았다. 나한테 둘 낳고, 거기서 또 둘을 낳았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에게 돌려보내는 게 기본이라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날 밤에 술을 마시고 나한테 겁을 주려고 야구방망이로 살림을 다 때려 부쉈다. 얼마나 무섭냐. 그때 추운 겨울이었다. 잠옷 바람에 밍크코트 하나 입고 애들 데리고 도망 나왔다. 그날 헤어진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1987년 두 사람은 이별했지만, 이봉조는 오래도록 현미를 그리워했다. 현미 역시 건강이 악화된 이봉조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현미는 "저게(색소폰) 지금 틀니로 부는 거다. 보통 틀니하고 색소폰 분다는 건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한다"며 당시의 심정을 드러냈다. 이봉조는 1987년 여름 향년 56세의 나이로 고독하게 생을 마감했다. 현미는 "그 잘생긴 사람이 말라서 틀니를 보여주며 '내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는데 날 안 받아 줄 거냐'고 하더라. 내가 다시 모실 테니 건강하게 살자고 했는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됐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안 됐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현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녀에게 빛이 돼준 친구 배우 엄앵란과 만났다.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4년간 투병의 시간을 보내온 엄앵란이 현미를 위해 나선 것이다. 근황에 대해 엄앵란은 "4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라며 촬영 중 왼쪽 무릎을 다쳤다고 밝혔다. 엄앵란은 유방암 투병과 관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모습이다. 그는 "절뚝거리면서 나가면 창피하지 않나. 창피해서 현미 집에도 안 갔다"라고 털어놨다.
이에 현미는 "나이는 나이야. 아무리 젊게 살아도 내 생각처럼 안 될 때가 있다. 얼마 전에 내가 집 현관에 걸려서 앞으로 넘어져서 등이 아프다"라고 말했고, 현미 역시 방송 내내 등이 급격히 휜 모습으로 걸어다녀 보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60년지기인 두 사람은 대중들의 환호 속에 세기의 결혼을 했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엄앵란은 2018년 세상을 떠난 남편 신성일을 언급했다. 신성일은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엄앵란은 "(신성일이) 집에서 아픈 티를 안 냈는데, 조용히 혼자 입원했다"며 "어느날 공기 좋은데 내려가서 산다고 하면서 '방 하나 해줄게 같이 있자'고 하더라. 그때 알았다. 같이 가서 살아줬다"고 말했다.
4년 전 이봉조의 묘소를 찾은 현미의 모습이 담긴 영상도 공개됐다. 꽃다발을 들고 온 현미는 "잘 계셨냐. 내가 혼자 산 지 40년이다. 나쁘다고"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사람이 죽은 다음에 묘 잘 쓰고 찾아오면 뭐 하냐. 살아있을 때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같이 대화하고 웃고 즐기고 해야지 아무 소용없다. 바보 같다. 그날만 안 그랬으면 우리가 서럽게 살진 않았을 거다"고 여러 감정이 뒤섞인 마음을 털어놨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지난 9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대중가요계 원조 디바 가수 현미가 출연했다.
1962년 노래 '밤안개'로 데뷔한 현미는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매하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재즈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늘 화려하고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현미지만 그녀에게도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사연이 있었다.
현미는 고인이 된 남편 이봉조를 그리워했다. 현미는 "내가 그분(이봉조) 덕분에 스타가 돼서 잘 산다. 그분이 나의 은인이오 스승이오 애인이오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봉조는 '천재 작곡가'로 불리며, 영화음악 감독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현미는 "이봉조가 미 8군부대에서 밴드마스터였다"며 "눈이 새카맣고 잘생겼고 나한테 친절했다. 추운 겨울에 트럭을 타면 자기 양말을 벗어서 나에게 신겨줬다"며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이어 "그때는 12시간 통행금지였다. 나와 이봉조 선생님이 처음 갔던 여관이 아직도 있다. 내가 가끔 남산에 올라가서 본다. 그래서 연애가 시작됐다. 연애를 지독하게 했다. 매일 밤, 매일 만났다"고 추억을 회상했다.
이봉조는 현미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봤고, 히트곡이 된 '밤안개'를 선물했다. 두 사람은 많은 작업을 함께했고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현미는 "그때 그 사람이 유부남인 줄 몰랐다. 26살인데 누가 유부남인 줄 알겠냐. 이미 딸이 2명 있는 유부남인데 나한테 총각이라고 해서 연애를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까 딸이 둘 있는 유부남이더라"고 이봉조에게 속았던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현미의 뱃속에도 이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현미는 자신을 선택한 이봉조와 가정을 꾸려 결혼 생활을 시작했고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봉조는 현미와 가정을 이룬 후에도 본처와 사이에서 자식 둘을 더 낳았다. 현미는 이봉조에게 이별하자고 했다. 현미는 "부인이 애가 둘이었는데 애를 둘 더 낳은 걸 제가 알았다. 나한테 둘 낳고, 거기서 또 둘을 낳았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에게 돌려보내는 게 기본이라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날 밤에 술을 마시고 나한테 겁을 주려고 야구방망이로 살림을 다 때려 부쉈다. 얼마나 무섭냐. 그때 추운 겨울이었다. 잠옷 바람에 밍크코트 하나 입고 애들 데리고 도망 나왔다. 그날 헤어진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1987년 두 사람은 이별했지만, 이봉조는 오래도록 현미를 그리워했다. 현미 역시 건강이 악화된 이봉조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현미는 "저게(색소폰) 지금 틀니로 부는 거다. 보통 틀니하고 색소폰 분다는 건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한다"며 당시의 심정을 드러냈다. 이봉조는 1987년 여름 향년 56세의 나이로 고독하게 생을 마감했다. 현미는 "그 잘생긴 사람이 말라서 틀니를 보여주며 '내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는데 날 안 받아 줄 거냐'고 하더라. 내가 다시 모실 테니 건강하게 살자고 했는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됐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안 됐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현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녀에게 빛이 돼준 친구 배우 엄앵란과 만났다.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4년간 투병의 시간을 보내온 엄앵란이 현미를 위해 나선 것이다. 근황에 대해 엄앵란은 "4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라며 촬영 중 왼쪽 무릎을 다쳤다고 밝혔다. 엄앵란은 유방암 투병과 관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모습이다. 그는 "절뚝거리면서 나가면 창피하지 않나. 창피해서 현미 집에도 안 갔다"라고 털어놨다.
이에 현미는 "나이는 나이야. 아무리 젊게 살아도 내 생각처럼 안 될 때가 있다. 얼마 전에 내가 집 현관에 걸려서 앞으로 넘어져서 등이 아프다"라고 말했고, 현미 역시 방송 내내 등이 급격히 휜 모습으로 걸어다녀 보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60년지기인 두 사람은 대중들의 환호 속에 세기의 결혼을 했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엄앵란은 2018년 세상을 떠난 남편 신성일을 언급했다. 신성일은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엄앵란은 "(신성일이) 집에서 아픈 티를 안 냈는데, 조용히 혼자 입원했다"며 "어느날 공기 좋은데 내려가서 산다고 하면서 '방 하나 해줄게 같이 있자'고 하더라. 그때 알았다. 같이 가서 살아줬다"고 말했다.
4년 전 이봉조의 묘소를 찾은 현미의 모습이 담긴 영상도 공개됐다. 꽃다발을 들고 온 현미는 "잘 계셨냐. 내가 혼자 산 지 40년이다. 나쁘다고"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사람이 죽은 다음에 묘 잘 쓰고 찾아오면 뭐 하냐. 살아있을 때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같이 대화하고 웃고 즐기고 해야지 아무 소용없다. 바보 같다. 그날만 안 그랬으면 우리가 서럽게 살진 않았을 거다"고 여러 감정이 뒤섞인 마음을 털어놨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