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월 1만1000톤급 대형 화물선 ‘삼호주얼리호’에는 21명의 선원이 탑승해 있었다. 삼호주얼리호는 이란에서 스리랑카에 가던 도중 아라비아해에서 해적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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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미 해적 2~3명이 올라와서 총을 들고 경계하고 있었다. 밖에 나가서 배 옆을 보니까 나머지 해적들이 줄을 타고 올라오더라”라며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해적은 10명 이상. 석 선장은 마이크를 들고 선내 방송을 했다. 선원들은 곧장 선박 1층 로프 창고로 대피했다. 하지만 해적들에게 발각되고 선원들은 안전을 위해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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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과 비밀리에 연락하던 석 선장은 “너희가 엔진을 정지시킬 때 고장이 났다. 못 믿겠으면 직접 테스트해라. 내가 없으면 이 배는 못 움직이니 쏘고 싶으면 쏘라”라며 시간을 벌었다.
최영함에서는 먼저 30명의 대원을 고속 보트로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해적 진압은 쉽지 않았고, 작전을 지휘하던 대장은 해적들의 공격으로 총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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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선장의 상태를 듣던 전진은 이내 눈물을 보였다. 전진은 “총을 이렇게 많이 맞으셨다고? 복부에만 맞으신 줄 알았는데”라고 말했다. 또 임무를 마친 대원에 대해서는 “왜 세계 최강 UDT인지 알겠다”고 감탄했다.
가장 가까운 오만 병원으로 이송된 석 선장. 한국 정부는 이국종 교수를 파견시켰고, 이 교수는 석 선장의 상태를 보고 한국으로 갈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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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 역시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대원들은 지금도 그 일을 한다. 한국 사회가 버티는 가장 큰 힘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덕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준호 텐아시아 기자 delo410@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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