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 불안의 시대를 위로하는 현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악마판사', 사법 권력 휘두르는 다크 히어로 탄생
공감과 위로X통쾌함으로 대리만족
디스토피아 '악마판사', 사법 권력 휘두르는 다크 히어로 탄생
공감과 위로X통쾌함으로 대리만족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가 현장에서 듣고 본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면면을 제대로 뽀개드립니다.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지는 드라마 홍수 시대에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4시에 만나요.
''슬의생'X'악만판사', 현실과 비현실의 공존'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다.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이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로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가상의 디스토피아 속 라이브 법정 쇼를 통해 통쾌함을 선사하는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 이야기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 시리즈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에서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20년 지기 친구들의 케미스토리를 담은 작품. 전 회차를 꿰뚫는 갈등이나 서사가 없는 대신 의사 5인방의 소소한 일상과 환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일까. '슬의생'은 현실적인 소재임에도 유토피아적인 판타지 드라마로 비치기도 한다. 권력 암투나 경영진과의 갈등조차 없는 병원, 세속적인 고민이 전혀 없는 주인공들, 특별한 악역도 막장도 없는 전개로 '저런 병원이 어딨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슬의생' 시즌1에 이어 시즌2까지 열광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지점 때문이다. 환자들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의사들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따뜻한 위로와 힐링을 선사하는 것. '선입견 없는' 의대 수석 이익준(조정석 분)이든, '싸가지 없는' 최고 실력자 김준완(정경호 분)이든, '물욕 없는' 재단 이사장 아들 양정원(유연석 분)이든 말이다.
정의로운 의사의 성장담이나 병원 내 권력 암투 등의 소재 대신 병원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에 집중하고, 대형병원의 상업화나 의료 인력 부족 등 사회적 문제는 지워낸 채 의료진의 삶에 집중한 '슬의생'. 여기에 우리 주변에 존재할 만한 성격의 캐릭터 조합으로 판타지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그래선지 '슬의생'은 각박한 현실을 잊고 따스한 웃음을 머금게 하는 힘이 있다. 반면 '악마판사'는 디스토피아, 즉 부정적인 세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드라마 속 배경은 역병으로 사회적 대혼란을 겪고 난 직후 빈부격차가 극심해진 대한민국으로, 광화문 광장에는 끊임없이 시위대로 인한 화염이 피어오르고,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은 막말로 국민을 선동하던 조연 배우 출신 유튜버다. 사법 정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이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 속 국가가 기획한 게 바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다. '국민 참여 재판' 새롭게 변형한 형태로, 국민은 스마트폰으로 재판의 유무죄를 투표하고, 심판자인 강요한(지성 분)은 이러한 수치를 이용해 가해자의 처분을 결정 짓는다는 것.
이러한 무대를 발판 삼아 강요한은 첫 재판에서 독성폐수를 유출한 JU케미컬 회장 주일도(정재성 분)를 금고 235년이라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이다 판결'로 통쾌함을 안겼다. 물론 그 모든 결과가 강요한이 설계한 대로 짜인 판이라는 것에는 찝찝함이 남지만. 그런데도 이러한 '다크 히어로' 탄생에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부패한 사법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제 시스템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를 대리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모범택시', '빈센조' 드라마가 그러했듯이.
여기에 '악마판사'는 이러한 다크 히어로가 사이다 판결을 쏟아낸다면 모두가 원하는 정의가 실현될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 강요한이라는 인물을 정의의 사도임과 동시에 사법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악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단순한 대리만족을 넘어 정의의 본질은 무엇인지, 왜 대중들은 다크 히어로물에 열광하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겠다는 판사 출신 문유석 작가의 '악마판사'가 앞으로 선보일 활약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그 중간쯤에 위치할까, 아니면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까. 분명한 건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드라마 속 이상적인 모습에 따듯한 위로를 받고, 부정적 세계 속 다크 히어로의 활약에 통쾌함을 얻는다는 것이다. 현실성 없는 판타지면 어떤가. 미디어가 가진 매력이야말로 이러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줄타기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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