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는 지옥이다. 그러나 그 지옥도가 펼쳐지는 곳은 다른 차원, 가상의 먼 공간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지금 밟고 선 이 땅이다.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 없고, 나이가 어리고,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아이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많이” 성폭행과 성추행과 끔찍한 폭행을 당한다. 콜라 한 캔으로, 천 원 한 장으로, 혹은 지독한 매질로 아이들을 짓밟은 가해자는 교장과 교사, 교직원이었다. 노모와 어린 딸이 살던 전셋집을 뺀 돈 5천만 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내고 미술 교사로 부임한 강인호(공유)는 이 충격적인 상황을 목도한 뒤 인권운동센터 간사 서유진(정유미)과 함께 진실을 알리고 가해자 처벌을 위해 노력하지만, 명백하게 추악한 사건 앞에 똘똘 뭉친 ‘지역사회 지도층’은 진실보다 힘이 세다. 그리고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의 울부짖음은 피를 토하는 것처럼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공유는 “히어로가 되고 싶어서 <도가니>를 찍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아저씨>의 태식(원빈)보다 <도가니>의 인호가 더 둔중한 무게로 마음을 울리는 것은 옳은 일을 함으로써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사람보다 그로 인해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의 용기가 더 드물고 귀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물이 쏟아지기보다는 오히려 숨이 막히는 이 영화는 알려진 대로 2005년 광주의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과 이후의 재판 과정을 담은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실화를 소설로, 영화로 만드는 데 있어 빼고 줄인 것은 있지만 더하고 늘린 것은 없었다. 당시 MBC < PD 수첩 >의 보도만을 봐도 현실은 영화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추악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교장과 행정실장을 포함해서 가해자 6명, 초중 고등학교 피해자 9명이 드러났고, 졸업생 중에도 피해 사례를 털어놓는 제보가 잇따랐다. 그러나 가해자 대부분은 지극히 낮은 형량만을 판결 받았고 그들 중 몇몇은 여전히 사건이 발생했던 학교에 재직 중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지옥이다.

총체적인 상식 부재의 나라



<도가니>는 충격적이되 낯설지 않다. 성범죄 관련 뉴스는 끊이지 않고 정치인의 퍼포먼스에서 장애인의 인권은 당연하게 무시된다.
그러나 <도가니>는 충격적이되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최근 순천에서는 ‘좋은 이웃상’까지 받았던 60대 한약방 주인이 이웃집 초등학생 자매를 십여 년 동안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여자 축구부 코치가 선수를 수시로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산에서는 70대 독거노인이 16세 여자아이를 초등학생 때부터 4년에 걸쳐 성폭행해 온 혐의로 검거됐고, 서울고등법원은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 4명에게 “정황상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1심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이 모든 것들은 불과 지난 며칠 사이 드러난 대한민국의 일상이다. <살인의 추억>이 “강간의 왕국”이라 명명했던 사회는 <도가니>에 이르러 “발정 난 나라”라는 정체성을 확인한다.

“여기 일하다 보면 말이야, 어떻게 설명해야 알아들을지 모르겠지만, 그 상식이 말이야……그게……없어.” 소설 <도가니>에서 서유진은 말한다. 강간은 영혼에 대한 살인이라 불리지만 영화에서처럼 교육청 장학관과 시청 공무원이 “저희 소관이 아니라”며 사건을 떠넘기고, 가해자 측 변호인이 전관예우를 받고, 검사가 매수되고, 가난한 장애인인 피해자들의 부모가 다른 길을 찾지 못해 합의를 하고 마는 사회에 상식은 없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정체성이 한 겹씩 더해질 때마다 이들은 상식 너머로 한 발씩 더 밀려난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용산의 한 장애인 시설을 찾아 봉사를 하며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 12세 장애인 남자아이를 목욕시킨 것은 이러한 상식 부재의 단적인 예다. 여자아이라도 괜찮지 않다. 비장애인이라도 괜찮지 않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지 않을 그의 권리에 대해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섬뜩한 공포다.

다수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사회



개인의 무지, 혹은 몰상식에 비할 수 없는 것은 제도의 폭력성이다. 인화학교 가해자 중 교장은 이사장의 장남, 행정실장은 차남, 학생부장 및 시설 원장들은 모두 친인척이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족벌 운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07년 정부는 이러한 사회복지재단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을 제안했지만 한나라당의 반대로 17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공지영 작가는 최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 판사로부터 들었던 “프라이드 강하고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판사들이 벙어리 아이 하나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려고 하겠나.” 라는 말을 빌어 재판부의 어이없는 판결에 대해 비판했다. 기득권의 공고한 커넥션 아래, 다수의 평화롭고 안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의 ‘희생’이 외면당하고 묵인된다. 완벽해 보이는 유토피아가 비참하게 살아가는 장애아를 희생양 삼아 유지된다는 아이러니를 그린 단편 소설,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도가니>의 대한민국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행복을 내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하실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을 방기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결국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 있던 안락한 세상의 병폐로부터 눈 돌리지 않고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이 가는 곳은 우리 대부분이 이 행복한 도시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그 곳을 결코 제대로 묘사할 수 없다. 그런 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그리고 우리 역시 이 도가니를 떠날 때가 왔다. 투쟁이든 입금이든 투표든 감시든, 어떻게 떠나느냐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떠나고자 하는 의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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