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 “뮤지컬은 합심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력이다”
인순이 “뮤지컬은 합심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력이다”
클래식. 올해로 탄생 30주년을 맞은 뮤지컬 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압축적이고 적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젤리클 고양이들의 한바탕 축제를 담은 이 작품에서, 다양한 개성을 가진 각 고양이들은 여러 인간군상의 보편적 속성을 은유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토록 다양한 개성의 고양이들이 사랑과 용서라는 가치 안에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심에는 를 대표하는 아리아 ‘Memory’, 그리고 그 노래의 주인공이자 늙고 외로운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있다. 러닝타임 중 “15분만 집중력 있게 하는”(박해미) 역할임에도 그리자벨라의 캐스팅이 가장 화제가 되는 건 그래서다. 오는 9월 17일 서울에서 개막하는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TV 시청자들에게도 대중적인 얼굴인 뮤지컬 배우 박해미와 홍지민, 그리고 최근 MBC ‘나는 가수다’ 출연으로 존재감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는 가수 인순이가 그리자벨라로 트리플 캐스팅됐다. 외형적 이미지도, 경력도, 성격도 제각각인 이들은 과연 어떻게 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칠까. 지난 8월 31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 가지 색 그리자벨라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았다.

세 사람 모두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자벨라로서 본인들만의 강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홍지민: 젊음밖에 없다. (웃음) 인순이 선생님 같은 연륜과 내공도 없고, 해미 언니처럼 섹시한 카리스마도 없다. 가장 어리고 그래서 연습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고 가장 열심히 하고 있다. 두 분이 한 번 부를 때 천 번 만 번 불러 승부를 보겠다. 우선 지금으로선 두 선배님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인순이: 요즘 어딜 가든 선생님 계시고요, 전 막내고요, 이런 얘길 너무 많이 들어 썩 유쾌하진 않다. (웃음) 경쟁력이 무엇이라 말하긴 좀 그렇고, 기존에 사람들이 듣던 ‘Memory’의 감동과 연기로 보여주는 감동의 수위를 얼마큼 조절할지가 가장 관건이다.
박해미: (홍)지민 씨는 정말 젊음이 있어서 무대에 걸어 올라갈 때부터 에너지가 넘친다. 그리고 인순이 선배님의 경우 인생의 연륜이 있어서 연출이 하는 말을 바로바로 흡수하시더라. 아마 이번 작품에선 인순이라는 사람에게서 기대하는 다이내믹한 모습 대신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내 그리자벨라는 워낙 섹시해서… (웃음) TV에서는 그냥 그런 아줌마로 나오지만 무대에선 그런 게 나온다. 고양이털을 뒤집어쓰더라도. 그래서 지민 씨가 섹시한 카리스마라고 칭해줘서 기분 좋다. 여자로서 그런 게 필요하다. (웃음)

“후회에는 해본 후회와 안 해본 후회가 있다”
인순이 “뮤지컬은 합심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력이다”
인순이 “뮤지컬은 합심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력이다”
인순이의 경우 노래와 연기의 조화를 말했는데 비록 가 있지만 뮤지컬 경험이 별로 없다. 이런 도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인순이: 내가 생각해도 희한한 게, 남는 게 힘이다. 체력이 좋고, 일을 즐기면서 한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내게 이런 일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한다. 물론 도전하는 건 고민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나는 가수다’에 나가는 것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후회에는 해본 후회와 안 해본 후회가 있다. 전자는 결과가 있어서 미련이 안 남지만 후자는 미련이 남는다. 그건 때라는 것과 맞물린다. 역시 내가 지금 하지 않는다면 1년 후 다시 뮤지컬이 올라갈 때 나를 다시 불러줄까 싶었다. 앞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마음을 굳게 먹고 도전할 거 같다.
홍지민: 덧붙이면, 웜업이라는 수업을 한다. 즉흥적으로 고양이 흉내도 내고 그런 건데, 선생님이 1초도 망설임 없이 웜업을 하시더라. 그 유연하고 열띤 마음에 동료들이 탄복을 금치 못했다. 선생님은 스스로 ‘나는 매일 크리스마스’라고 하신다. 나는 항상 긍정적 에너지로 해피 바이러스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요즘 선생님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 많이 한다.

도전 자체의 의미만큼 그 분야가 주는 즐거움도 중요할 텐데.
인순이: 우선 우리 가수들은 함께 하는 게 거의 없다. 혼자 3분 40초에서 4분. 비록 주위 스태프가 있지만 무대 위에서 영광도 혼자 갖고, 실패도 혼자 갖는다. 그런데 뮤지컬은 같이 연습하고 의견도 개진하고 깔깔 웃으며 합심해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다.

반대로 다른 분야에 대한 도전만큼이나 한 분야를 꾸준히 지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인데 두 배우는 어떻게 뮤지컬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거 같나.
홍지민 이게 너무 좋으니까. 무대는 거짓말을 못하는 공간이다. 4년 전부터 방송과 병행하고 있는데 TV는 편집을 비롯해 상황에 따라 배우를 도와주는 장치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무대는 그런 게 한 치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스럽고 무섭다. 때문에 연습량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대라는 공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박해미: 정말 무대에서는 죽어라 한다. 무대를 성스러운 곳으로 생각하고, 그런 부분을 인정받아 작품에서 나를 찾아주시지 않나 생각한다. 다만 지민 씨처럼 연습을 열심히 하는 타입은 아니다. 아까 웜업 얘기가 나왔는데 나는 웜업 한 번도 못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못하겠는 거다.
홍지민: 저 언니는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연습 안 하는 거 같다. 중고등학교 때 만날 노는 거 같은데 성적 잘 나오는 사람 있지 않나. 그런 느낌이다. 이번에 이천 공연 보면서 배신감 느꼈다. 집에서 따로 연습하는 게 틀림없다. (웃음) 그리고 말은 저래도 변하는 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보컬 선생님에게 트레이닝도 받았다. 그건 박해미라는 사람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박해미의 그리자벨라가 기대가 됐고, 이천 공연 보고 놀랐지만 내 공연을 많이 보러 와 달라. (웃음)

“그리자벨라는 여배우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인순이 “뮤지컬은 합심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력이다”
인순이 “뮤지컬은 합심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력이다”
인순이 “뮤지컬은 합심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력이다”
인순이 “뮤지컬은 합심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력이다”
보컬 트레이닝 이야기도 했지만 많은 관객들이 세 명의 그리자벨라에게 가장 기대하는 건 역시 ‘Memory’다. 어떤 식으로 준비하고 있나.
박해미: 27년 정도 전에 ‘Memory’를 듣고 심취해서 연습을 계속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노래가 지겨워지는 거다. 시적인 내용이라 이해도 잘 안 되고. 그래서 섭외가 들어왔을 때 나 ‘Memory’ 싫은데, 이랬다. 연출팀 상견례 때 불러보라고 해서 그냥 불렀는데 크게 부르라고 그러고 그래서 크게 불렀더니 작게 부르라고 그러고 그래서 더 싫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음악감독님 만나니 팽팽한 긴장관계도 생기고. 지민 씨에게 상의해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그것도 아닌 거다.
홍지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박해미: 그 때부터 홀로 싸우기 시작했다. 자존심 때문에 음악감독님 앞에서는 안 하고. (웃음) 연출팀에서 굉장히 걱정했는데 나중에 내가 들려주니 ‘서프라이즈’라고 하더라. 그러게 좀 기다려주지.
홍지민: 나는 ‘Memory’를 영어 버전으로 굉장히 많이 불렀던 사람인데 한글로 개사 작업하며 이렇게 부르기 어려운 곡이었나, 좌절도 많이 했다. 시적인 느낌과 철학적 메시지도 전달해야 하는데 가창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완급 조절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인순이: 인순이의 ‘Memory’를 기대하는 분들의 기대치를 알 것 같다. 웅장하고 고음이 팍팍 올라가는. 그런데 나를 비롯한 모든 그리자벨라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어려움이 허리를 피고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거다. 손을 약간 앞으로 내밀고 불쌍하게 부르는데 첫 음부터 ‘사일런~스’ 하며 고음으로 부를 땐 미칠 것 같다. 계속 고양이가 부르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몸을 세팅해야 하니까. 또 나는 가성을 쓰지 않는 타입이라 자연스럽게 첫 고음을 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나마 허락 받은 건 마지막에 ‘터치 미’라는 가사와 함께 지를 때 허리를 조금 펴도 된다는 거다. 내가 부르는 ‘Memory’에 대한 기대치만 너무 생각하면 극이 깨지고, 그렇다고 그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어 고민이 많다.

테크닉적인 부분 뿐 아니라 그 안에 담아내는 감정에 대한 해석도 각기 다를 텐데.
홍지민: 그리자벨라라는 캐릭터가 여배우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나는 예상보다 어린 나이에 그리자벨라를 시작하게 됐는데, 연기자로서 고민 많을 시기에 이 역을 맡아 배우 생활을 돌아볼 수 있어 참 감사하다. 좋은 타이밍에 좋은 작품을 만났다.
인순이: 사실 전에는 가 고양이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착각인 걸 알았다. 연출자에게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는 용서와 화해와 내려놓음과 치유가 들어있는 굉장히 철학적인 작품이다. 자신의 화려함만을 믿고 멀리 나가고 거침없던 그리자벨라가 이제 돌아오고 싶어 하고 다른 고양이들과 화해하고 치유하고 눈물 흘리는 걸 보며 결국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 느끼며, 그 내용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연기하겠다.
박해미: 앞서 노래가 시적이라 재미없게 느낀 적이 있다고 했는데 이제야 ‘Memory’ 뜻을 확실하게 알겠다. 마음을 열어라, 그러면 모두가 행복하다. 그것만 전달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홍지민: 배우끼리 그런 이야기를 한다. 는 배우들의 꿈이자 무덤이라고. 사랑하는 작품이지만 배우는 너무 힘든 과정을 거친다. 소품과 소도구가 너무 무겁고 올타이즈 복장이라 화장실도 못 간다. 우리 그리자벨라는 그래도 몸을 움직이는 부분에선 여유가 있지만 다른 30마리 고양이는 그렇게 뛰면서도 화장실 가고 싶을까봐 물도 못 마신다. 그리고 무대 구조도 한 마리 고양이라도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 같이 다칠 수 있는 구조다. 그런 노력을 조금은 알고 와주시면 좋겠다. 좋은 미술작품은 설명을 듣고 보면 더 좋은 것처럼 오시기 전에 내용에 대해 공부하고 오신다면 훨씬 값어치가 클 거라 생각한다.
인순이: 우리가 홍보 때문에 나왔지만 우린 주인공이 아니다. 나도 사실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그 수많은 고양이 중 하나일 뿐이다. 워낙 ‘Memory’의 팬이 많아 그리자벨라가 유명하지만 작품 안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이야기 중 더 감동적인 게 많다. 하나하나의 고양이가 다 주인공이다.

사진제공. 설앤컴퍼니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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