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성인 연기로 합격점을 받았던 SBS <바람의 화원> 속 기생 정향이 매력적이었던 건, 엄청난 재력가인 김조년(류승룡) 앞에서도 자신을 취하려거든 전 재산을 내 놓으라 말하는 꼿꼿한 심지가 여성적인 얼굴과 말투에 드러나서였다. 그것은 최근의 캔디 캐릭터들에게서 드러나는 유사 남성적인 당돌함과는 다른 부드럽되, 그래서 더 강한 여성성이었다. SBS <찬란한 유산>의 승미가 흔한 악역의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저 옳고 그름 앞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줘서가 아니다. 사회에서 도태되고 싶지 않다는 승미의 태도에는 단순히 성격의 차원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강한 의지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캐릭터는 문채원의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형상화된다. 아직 연기적으로 결코 노련하다 말할 수 없는 이 배우에게서 미숙함이라는 단어보다는 가능성이라는 말을 읽어내는 건 그 때문이다. 그녀의 발전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음의 리스트는 그래서 더 각별할지 모른다. 기분 좋을 때 듣는다는 이들 음악을, 연기의 길 안에서 더 자주 듣기를, 이 길이 그녀에게 즐겁고 기분 좋은 길이길 바란다.
세령의 사랑에 대해 “가족을 배신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사랑은 포기 못 할 것 같다”고 말하는 문채원은 애절한 러브송인 라쎄 린드의 ‘C`mon Through’를 추천했다. ‘내 마음을 파헤치세요’라는 뜻의 이 노래는 MBC 시트콤 <소울메이트>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한데, 서로 엇갈리던 남녀가 상대방이 영혼의 짝임을 깨달을 때 흘러나오며 시트콤에 애절함을 더했다. 그와 한국의 인연은 <소울메이트>로 끝나지 않았는데, 첫 내한 공연 이후 자주 한국에 오던 그는, 아예 홍대 주변에서 자취하며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신촌 자취생이라는 별명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 덕분에 올해 그린 플러그드 페스티벌에도 초청될 정도로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고 있다.
두 번째 추천 곡은 설명이 필요 없는 메가 히트 넘버인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이다. 셀린 디온의 유명세와 곡 자체의 서정성, 그리고 영화의 흥행이 더해지며 가히 20세기 마지막 클래식의 위치에 오른 곡이다. “<달려라 고등어>의 오디션 전날 눈썹 부근에 화상을 입어 붕대를 감은 채 오디션장에 들어가 ‘꼭 하고 싶습니다!’ 라고 외칠” 정도로 당돌한 신인이었던 그녀가 역시 부잣집 공주님에서 주체적인 여성으로 변모하는 로즈(케이트 윈슬렛)의 이야기인 <타이타닉>의 주제곡을 고른 건 일견 이해할 만하다. 특히 조선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담대한 면을 보여주는 세령은 역시 보수적인 시대에 저항하는 로즈를 연상케 한다.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처럼 사운드트랙을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세 번째 추천 곡 역시 영화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 삽입으로 유명해진 터틀즈의 ‘Happy Together’다. 기분 좋을 때 듣는 음악이라는 이번 테마 속에서 어쩌면 기분 좋아지게 하는 음악에 가장 가까운 곡일지도 모르겠다. 차분하지만 조금씩 분위기를 고조하다가 ‘I can`t see me loving nobody but you for all my life’라는 후렴구에서 흥겹게 폭발하는 곡 구성은, 발표됐던 60년대 중반에도 큰 인기를 끌며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해피 투게더>의 왕가위 감독이 정작 삽입하고 싶었던 건 아방가르드 뮤지션인 프랭크 자파의 리메이크 버전이었다고.
“마음껏 뭔가 학생 특유의 젊음을 풀어내고 싶어” 막연하게 학원 드라마에 출연을 결정했던 의외의 시원스러움을 가진 그녀는 록 음악도 추천했다.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린, 하지만 아직까지도 재결성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 없는 밴드 오아시스의 곡 ‘Stand By Me’ 이다. 전작이자 아마 오아시스 최고의 앨범으로 기억될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의 대성공 이후 내놓은 앨범 < Be Here Now >에 수록된 곡으로 ‘Don`t Look Back In Anger’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느린 템포 안에서 흥겨우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를 뽑아내는 오아시스 스타일 로큰롤이다. 기타 사운드가 좀 더 정제되었던 전작에 비해 디스토션이 강해진 면이 있지만 리엄의 목소리는 여전히 쉽게 폭발하지 않아 더욱 힘 있게 느껴진다.
‘야자와 아이의 섬세한 그림체를 좋아하는’ 문채원은 그만큼이나 섬세한 멜로디의 곡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폭풍 속의 주’를 골라줬다. 최고의 보컬 그룹 중 하나인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비록 전문 CCM 팀은 아니지만, 이 곡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꼭 신앙인이 아니라 해도 누구나 귀를 기울일 만큼 서정적인 곡인데, 배경에 깔리는 건반은 철저히 보컬을 서포트하는데 주력하며 보컬 그룹으로서의 매력을 드러낸다. 특히 그들의 R&B적 스타일 자체가 흑인 음악에서 비롯된 것이고, 흑인 음악의 상당한 영역은 성가에서 비롯된 만큼 < The Wind, The Sea, The Rain >에 수록된 다른 곡들과의 위화감 역시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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